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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만 100명” 난독 폭증에 치료센터 ‘오픈런’, 지원중단 속출 [문해력 붕괴 세대]
코로나 시대 거치며 초등학생 난독증 3년 새 9배 폭증
교육청들 예산 동나 치료 차질…치료 횟수 줄이고 조기중단도
전문가 “치료 시기 놓치면 복구 불능”· “사회 이탈 가능성도”
난독증 학생이 치료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혜원인지학습발달센터 제공]

[헤럴드경제=박혜원·안효정 기자] #1.“엄마, 나 한글을 배울 이유가 생겼어. 이제는 소방관도 되고 싶고, 버스 운전기사도 되고 싶어.” 난독증 치료를 받은 서울 소재 초등학교 2학년 A군은 이제 자신의 꿈을 말할 수 있게 됐다. 통상 난독증은 학습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우울증이 되기도 한다. A군은 난독증 치료 1년여만에 이젠 자신의 장래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됐다. 자신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A군이 내년에도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예산 부족이 이유다.

#2.초등학교 3학년 B군은 난독증과 함께 발음이 제대로 안되는 조음 문제까지 겹친 사례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난독 치료 지원만 가능하다고 했다. 학부모가 “자비로 두 문제를 함께 치료하겠다”고 했지만 교육청 방침에 막혔다. 지원금보다 학부모 금액이 커지는 상황을 막는다는 목적이다. 자비를 쓰려면 다른 기관에서 받으라는 교육청 안내에 B군은 결국 조음 치료는 포기했다. 이마저도 2차시(2차 교과과정)에서 지원이 끊겼다.

“대기만 100명”… 난독증 치료 문의 빗발, 예산 ‘동났다’
올해까지 난독증 치료지원을 받은 초등학교 2학년 A군이 치료 평가지에 그린 장래희망. [본인 제공]

난독증 치료 지원사업이 위기다. 치료 문의는 폭증하는 반면 예산이 부족해서다. 치료 조기중단은 예사고 신규신청은 (서울 기준) 대기만 100명이 밀렸다. 사업 주관 기관인 교육청엔 “진단 검사만이라도 받게 해달라”는 학부모 문의가 쏟아지지만 이미 진행 중인 지원조차 중단 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자연스러운 언어습득 기간을 놓친 아이들이 치료 ‘골든타임’마저 지나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육청 난독증 치료지원사업 예산이 올해 ‘조기소진’ 됐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지역학습도움센터 18%가 지난달, 55%가 이달 들어 예산을 다 썼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신규 신청 접수를 중단하고, 추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기존 학생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난독증 학생에 치료를 최대 4차시까지 지원한다. 차시당 치료 횟수는 30회 안팎이다. 올해 10월까지는 총 958명이 지원을 받았다. 각각 1차시만 지원을 받았다고 해도 총 19억1600만원이 드는 규모다. 그러나 올해 관련 예산은 난독증과 경계성지능 치료사업을 합해 25억원에 그쳤다.

부실해진 치료…주1회로 줄이고 조기중단 속출

예산이 동나며 치료도 부실해졌다. 일부 센터는 주2회 진행하던 치료를 주1회로 줄였다. 치료를 2차시만에 중단하는 경우도 늘었다. 연말 방학기간엔 치료를 쉬기도 한다. 한 언어치료센터 관계자는 “경과가 비교적 괜찮으면 2차시만에 치료가 끝나기도 하지만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점으로 상태가 돌아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난독증 치료현황을 총괄하는 서울학습도움센터 난독학습지원사 역시 계약직이다. 2명이 정원이지만 올해 내내 1명만 근무했다. 박사급의 학력 수준을 요구하면서 일자리는 불안정한 탓에 지원자가 없다.

지원이 중단되면 치료도 그대로 끝난다. 자부담으로 치료를 이어가기도 하지만 이는 극소수다. 회당 최대 10만원, 매주 수차례 진행되는 치료비 부담에 경제적 여력이 없는 학부모는 센터 발길을 끊는다. 다른 치료센터 관계자는 “심각한 경우 10년에 걸쳐 치료를 받기도 하는데 이대로라면 지원의 의미가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결국 일부 치료센터는 신규 치료신청 접수를 지난 9월 중단했다. 그러나 관련 민원이 잇따르면서 11월 접수를 재개해, 현재까지 100건이 밀렸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선착순이라 상당수는 내년 하반기에나 지원이 가능하다고 안내했지만, 사실 하반기도 불투명하다”며 “추가경정예산으로 예산을 더 받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코로나의 ‘그늘’… 난독 지원 3년 만에 9배↑
난독증 때문에 아이들은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123RF]

이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 수년새 난독증 치료문의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2020년 112명이었던 서울시교육청 난독증 지원은 2023년 10월 기준 958명으로 8.5배 늘었다. 치료 대상 대부분은 초등학생으로, 올해 기준 92.1%(883명)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면 수업 기간 학교에서 온라인으로만 학생들을 관리하며 난독증 치료에 조기 개입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 학교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난독이 개선될 수 있던 아이들도 전문 치료가 필요한 수준으로 심화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디지털 기기를 기반으로 한 교육 시간이 늘면서 책을 읽지 않고, 이는 기본적인 어휘와 의미를 구성하는 생각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방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대비 치료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에선 서울까지 난독증 원정 치료를 오기도 한다. 서울의 한 치료센터 관계자는 “부산, 대전에서부터 치료를 받으러 온다”고 했다. 지방 소재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생은 많고 인력은 제한돼 있는 데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치료센터는 따로 있어 대기가 밀리고, 정작 치료는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지원 기간이 끝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조기 치료 못하면…“우울증, 천천히 사회 이탈”

‘조용히 뒤쳐진다.’ 서울 송파구 소재 혜원인지학습발달센터 황리리 원장(교육학박사)은 난독증 치료 사각지대인 아이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난독증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자이지만, 진단 기준이 까다로워 인정을 받기 어렵다. 특수학급에 들어가더라도 장애학생 등에 가려져 세밀한 관리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일반학급에선 학습능력이 크게 뒤쳐진다.

황 원장은 “난독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 결국 특수학급에서도, 일반학급에서도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뒤쳐진다”며 “학습부진으로 인한 우울증이 심화돼 결국 학교 현장이나 나아가 사회에서도 서서히 이탈하게 돼 조기진단과 제대로 된 치료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창현 유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학습을 하며 배움의 의지를 생성하는 기간인 저학년에서 학습에 흥미를 잃으면서 장기적으로 자존감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진단과 치료, 교육과 재정지원까지 하는 종합적 지원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klee@heraldcorp.com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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