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尹대통령까지 나섰는데…기업 발목 풀어줄 해결책 끝내 좌절? [킬러규제의 늪]
규제 혁신 법률 55.4%, 아직도 국회서 ‘발목’
화평·화관법 등 ‘킬러규제’, 상임위도 통과 못해
경제형벌 규정 개선 법안, 대다수가 잠자는 중
총선 앞 법안 논의 불투명…내년 5월 자동 폐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서울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12월 임시국회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킬러규제’ 혁파는 지지부진하다. 여야는 법안 논의를 위한 본회의를 오는 28일, 내년 1월 9일 열기로 했지만 ‘이태원 참사 특별법’, ‘김건희 여사-대장동 의혹 특검법(쌍특검)’ 상정을 둘러싼 정쟁에 민생·경제 법안들은 뒷전이 된 지 오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킬러규제’를 언급하며 “총성 없는 경제전쟁에서 한시가 급한 우리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각종 규제개혁 법안이 번번이 국회 문턱에서 가로막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급기야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이대로라면 자동 폐기될 직전에 놓여 있어, 한국이 내년에 더욱 ‘킬러규제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국회에 제출된 전체 규제혁신 법률은 222건이지만 이 중 통과된 법률은 99건으로 절반에 못 미치는 44.5%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123건(55.4%)이 계류돼있다.

특히,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산업입지법),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환경영향평가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킬러규제’ 혁파 법안 5건은 아직까지 소관 상임위원회 논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산업입지법은 개발계획 변경 없이 토지용도 전환이 가능한 면적 규모를 확대하고 복합용지 신설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외국인고용법은 외국인 유학생의 외국인 근로자 활용을 허용하고 외국인 근로자 장기근속 특례 도입을, 환경영향평가법은 긴급 재난대응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는 내용이다.

화평·화관법은 윤 대통령이 직접 ‘킬러규제’로 지목했던 법이기도 하다. 화평법은 신규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할 때 유해성 정보 등을 등록하는 기준을 현행 100kg에서 1t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1개 물질을 등록하기 위한 비용이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등 유해성 정보를 등록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돼 업계서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반면, EU와 일본은 1t 이상, 미국은 10t 이상일 경우에만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화관법 개정안은 화학물질 위험도에 따라 관리 규제를 차등화하고 국민이 일상 소비생활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유해화학물질 취급 기준의 일부를 적용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석유화학업계는 유럽연합(EU), 일본 등에 비해 등록 기준이 과도해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한다. 획일적인 유독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규제가 산업계에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화관법과 화평법에 중복된 규제로 폐기물 처리 등 과정에서 이중 관리를 해야 하는 불편 등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여야는 이날 환노위에서 ‘킬러규제’로 꼽힌 화평·화관법을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처리를 미뤘다. [연합]

‘킬러규제’ 뿐만 아니라 계류된 123건의 법안 중 대다수가 정부가 1, 2차에 걸쳐 경제형벌 규정 개선을 건의한 법안들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는 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에 과도한 형벌규정이 적용되는 경제형벌 법률 조항을 일제 점검해 지난 1월과 5월 140건의 과제를 담은 법안들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7일 ‘경제형벌 개선 법률안 조속입법 건의’를 통해 “국회에 제출된 1~2차 경제형벌 과제 중 본회의를 통과한 과제는 1건에 불과하다”며 21대 국회 임기 중 처리를 촉구키도 했다.

한국무역협회(KITA) 역시 지난 22일 열린 ‘기업하기 좋은 대한민국을 위한 규제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9대 규제를 제시하고 조속한 개선을 촉구했다. KITA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꼽았다.

또, 글로벌 스탠다드 대비 과도한 규제로는 ▷노동3법(근로기준법·파견법·기간제법) ▷중대재해처벌법 ▷다중대표소송제 ▷화평·화관법 ▷플랫폼산업 진입 규제(온라인플랫폼법·타다금지법) 등을 들었다.

이밖에도 기업결합 신속심사 위한 신고의무 면제 등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메타버스 산업 중복규제를 없애는 가상융합산업진흥법, 풍력발전시설의 이격거리 상한선을 마련하는 신재생에너지법, 대형마트 영업휴무일에 온라인 배송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한 AI 기본법 등 경제법안 다수가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

여기서 더 우려되는 점은 이들 규제 개선 법안의 연내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들이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숙려 기간과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본회의를 차례로 거쳐야 하는 만큼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평·화관법 개정안의 경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여야가 평행선을 달린 끝에 처리가 미뤄졌다.

만약 내년에 다시 임시국회가 열리더라도 이들 법안의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12월 임시국회가 끝나고 나면 여야는 본격적인 총선 모드에 들어가는데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법안 논의가 어렵고, 오는 5월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계류된 법안들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사실상 12월 임시국회가 법안 통과의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규제 개선 법안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야 모두 표심을 얻기 위한 법안들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기업 관련 법안들은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yuni@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