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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론] 보온병에서 산다면

보온병 또는 텀블러에 담긴 뜨거운 물은 잘 식지 않는다. 얼음도 잘 녹지 않는다. 왜일까?

열은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전달된다. 보온병에는 최고의 단열재인 진공층이 있어 열이 전달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는다. 열이 내외부로 움직이기 어려워 뜨거운 물이나 얼음이 잘 유지되는 것이다.

난데없이 보온병 얘기를 하는 이유는 국제적인 에너지 공급 문제로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냉난방비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집을 보온병처럼 만든다면 겨울에는 온기를 품고 여름에는 냉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집의 벽체 4면과 바닥, 천장을 첨단 단열재로 감싸주고 잘 밀폐시키면 가능하다. 다만 보온병과 다르게 집은 사람이 쾌적하게 살아야 하므로 추가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람이 숨을 쉬려면 오염된 공기는 배출하고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야 한다. 문제는 환기할 때 공기를 따라 열도 이동한다는 것이다. 열회수환기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겨울에는 따뜻한 실내 공기를 이용해 외부의 찬 공기를 데워서 내부로 공급한다. 반대로 여름에는 배출되는 공기의 냉기로 더운 외부 공기를 식혀 내부로 공급한다. 이러면 항상 신선한 외부 공기가 공급되면서도 실내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쾌적한 생활에는 적절한 채광이 유지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두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겨울에는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넓은 창호가 필요하다. 햇볕은 통과시켜 집을 따뜻하게 하지만 실내의 열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여러 장의 유리 사이에 열전도율이 낮은 기체를 채운 특수 단열창호가 필요하다.

반면 여름에는 햇볕이 집에 못 들어오도록 가림막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부에 설치된 가림막은 태양 복사열로 달궈지므로 실내온도를 높인다. 따라서 가림막은 반드시 외부 설치 후 이를 내부에서 제어할 수 있도록 전동화해야 한다.

외부 전동가림막, 단열창문, 열회수환기장치가 설치된 보온병 구조건축물이 ‘패시브 건축물’이다.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40%를 건물 냉난방에 사용한다는 점을 중시해 2001년부터 보조금 지급 등 패시브 건축물을 장려해왔다. 2007년부터는 법률로 첨단 단열공법을 적용한 건축만 허가를 내주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건물 사용 에너지의 90% 이상을 줄일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1979년 최초로 시행된 단열 기준이 꾸준히 상향된 결과 건물의 에너지 사용량은 감소 추세다. 그러나 독일 등 유럽 건축물 에너지효율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다. 정부에서 세제 혜택, 법률 강화 등 강력한 의지로 패시브 건축물 보급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건물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한 건물의 냉난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기 어렵다.

패시브 건축물 보급이 더딘 이유는 보통 주택보다 높은 건축비다. 패시브 건축물은 일반 건물보다 비용이 30~50% 이상 더 들어간다. 그러나 일 년 내내 신선한 공기 공급과 일정한 온도의 쾌적한 거주환경, 에너지 소비를 90% 이상 줄임으로써 온실가스 감축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패시브 건축물이 더 이익일 수 있다. 냉난방비 걱정이 없는 쾌적한 패시브 건축물에서 텀블러에 담긴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최영민 한국화학연구원 부원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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