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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이킴·안중근·장발장까지…민우혁 “뮤지컬은 나의 나침반” [인터뷰]
로이킴, 안중근 이어 장발장까지
지난한 무명 딛고 뮤지컬 배우로 만개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스타가 된 민우혁이 ‘레미제라블’로 다시 돌아왔다. 배역이 달라졌다. 8년 전엔 혁명군 앙졸라였지만, 이번엔 장발장이다. 이 작품은 민우혁의 “인생을 바꾼 작품”이었다. [이음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터질 듯 말듯, 못 다 핀 꽃이었던 때가 있었다. 무척이나 뜨거웠던 10~20대의 민우혁은 좌절과 포기를 반복했다.

“전 뭘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야구도 10년을 했지만 포기했고, 뭘 할까 고민한 끝에 가수도 했지만 나오는 음반마다 잘 안되더라고요. 10년을 하다 또 포기했어요.”

사실 유망주는 아니었다. 전북의 야구 명문 군산상고 출신의 투수. 2003년 LG트윈스에 들어갔지만, 프로야구 선수로의 성공을 하진 못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10대를 바친 꿈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곁에서 헌신하던 부모님의 마음도 타들어갔다. ‘얼굴 없는 가수’로도 활동했고, 2007년 4인조 남성그룹 포코스의 메인 보컬로 데뷔했으나 이 역시 잘 풀리진 않았다.

반복되는 실패와 지난한 무명의 시기에 그를 지탱한 건 가족이다. 민우혁은 “포기하는 것이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믿음 때문”이라며 “나를 믿어주는 가족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뮤지컬 무대는 민우혁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 2013년 ‘젊음의 행진’으로 데뷔해 2014년 ‘김종국 찾기’, ‘풀 하우스’, ‘총각네 야채가게’, 2015년 ‘레미제라블’…. 도전의 시간은 필요했지만, 뮤지컬계에서 마침내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팬들도 생겼다. 그의 첫 공식 ‘퇴근길’(공연을 마친 배우와 팬이 한 줄로 서서 1대1로 만나는 자리)은 무려 2시간 40분.

‘레미제라블’로 스타가 된 민우혁이 ‘레미제라블’로 다시 돌아왔다. 배역이 달라졌다. 8년 전엔 혁명군 앙졸라였지만, 이번엔 장발장이다. 이 작품은 민우혁의 ‘인생을 바꾼 작품’이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우혁은 “요즘 눈물을 아끼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하지만, 작품을 끝낸 뒤 후회없이 오열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민우혁 [이음엔터테인먼트 제공]
로이킴 신드롬…“어르신 팬들이 퇴근길 기다려”

드라마가 처음은 아니다. 2012년 ‘뱀파이어 검사2’(OCN) 이후 5편 가량 출연했다. ‘뮤지컬 스타’가 안방극장에서도 만개한 작품은 ‘닥터 차정숙’(JTBC)이다. 결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돼 주부로 살다 의사가 된 차정숙을 한없이 지지하고 응원하는 로이킴은 일약 신드롬을 일으켰다.

민우혁은 “뮤지컬은 보통 20~30대 관객이 대부분인데, 요즘 어르신들이 많이 보러 오신다”며 “퇴근길에서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난생 처음 뮤지컬을 보러 오셨다고 해서 무척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최고 시청률 18.5%의 ‘대박 드라마’에서 ‘백마 탄 왕자’ 격인 서브 남주(남자 주인공)의 위상이 엄청났다. ‘닥터 차정숙’과 예능 프로그램인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민우혁을 알게 돼 뮤지컬을 보러 온 ‘늦덕’(늦게 입덕한 팬)이다.

“최근엔 일본에서 팬미팅을 했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가장 어린 친구가 17세였고,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 71세였어요. 어르신이 저한테 울먹이면서 ‘감동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울컥하더라고요.”

든든한 지원군인 아내 이세미(그룹 LPG 출신)는 ‘로이킴’ 남편을 둔 부러움의 대상으로 통한다. 아내는 기막힌 ‘명언’을 내놨다.

“주변에서 아내한테 로이킴과 같이 살아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너네한텐 로이킴이지만, 나한텐 남편이야. 나도 로이킴이 필요해. (웃음)”

민우혁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레미제라블’ 앙졸라와 장발장…“아직은 벽을 넘는 중”

“아직은 할 때마다 벽에 부딪혀요. 그 벽을 깨부수고 넘으려 하고 있어요.”

마침내 ‘꿈의 역할’을 만났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역할이 장발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오디션 과정은 험난했다. ‘장발장’ 역할을 따내기 위해 민우혁은 ‘자고 일어난 상태 그대로 양치만 하고’ 오디션장에 갔다. 당시 제작자인 매킨토시가 “이 친구는 빵을 훔쳐먹게 생겼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1차에서만 무려 4곡, 1시간 넘게 오디션을 봤다. 총 기간은 8개월에 달한다.

합격 통보를 받고 뛸 듯이 기뻤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지난 2015년 앙졸라 역에 캐스팅 됐을 당시엔 서울에서 용인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내 눈물을 쏟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너무나 커져버린 부담감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레슨을 받으며 수없이 준비했다.

장발장은 워낙 어려운 역할이다. 민우혁은 “모든 뮤지컬 배역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을 거라 생각한다”며 “남자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브링 미 홈(Bring me home)’은 “필라테스처럼 속근육을 써야 하는 곡”이라며 민우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더블 캐스팅으로 200회에 달하는 공연을 소화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8년 전 앙졸라 역을 맡으며 성대 결절이 온 민우혁은 레슨을 이어가며 지속가능한 뮤지컬 배우로의 방향을 모색했다.

“이번엔 성악, 실용음악 발성 레슨을 남녀 4명의 선생님께 받았어요. 이 작품은 목소리를 아낄 수가 없어요. 거친 야수의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이전 레슨에선 성대를 아끼는 소리를 추구했죠. 좀 더 다양한 코칭이 필요했어요.”

레슨의 효과가 좋았다. 앙졸라 역을 할 때는 공연 중에 이비인후과만 스무 번도 넘게 가며 고생했는데, 현재는 “성대결절도 불사하겠다”는 각오이나 건강하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민우혁 [이음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은 나의 나침반…가족은 배우로 서게 하는 힘”

최근 몇 년 새 무대 위 민우혁은 ‘정의의 아이콘’이 됐다. ‘닥터 차정숙’이 방영될 때 무대에선 안중근(뮤지컬 ‘영웅’)이었고, 안중근을 내려놓자 마자 장발장이 됐다.

그는 “40대에 접어들며 40대인 내가 잘할 수 있는 모습도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예전엔 성격도 급하고 열정이 넘쳤다면 지금은 조금 차분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유가 생기며 이런 역할도 나를 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역할이다 보니, 평소의 언행도 달라진다. 배우로의 사명감 때문이다. 그는 “배우는 단순히 재밌고 멋진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을 만큼 감동을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며 “무대에서처럼 무대 아래에서도 긍정적인 절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두 아이의 아빠로서, 뮤지컬 배우로서의 책임감도 커지고 있다. 민우혁은 ”아들이 학교에서 뮤지컬 수업을 하는데, 언급되는 작품마다 ‘이거 우리 아빠가 했다’고 이야기한다“며 ”뿌듯하기도 하지만, 더 큰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민우혁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민우혁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메시지가 ‘사랑’이라고 봤다. 그는 “‘레미제라블’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식민지, 혁명의 시대에서 우리를 살아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사랑이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요즘 민우혁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장발장 연기하더니 장발장 다 됐네”라는 말이다. 그는 “장발장을 연기하며 더 따뜻해졌고, 장발장을 통해 아빠의 모습을 배운다”고 했다.

그의 모든 연기의 근간엔 가족이 있다. 유달리 각별하고, 돈독하다. 3대가 모여 사는 민우혁의 가족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이는 모습 그대로 사랑이 넘친다. 지금도 바쁜 날들이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며 “가족과 함께 할 때 늘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어요. 하지만 누구보다 부자라고 생각하고 자랐어요. 그 정도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가족의 신뢰와 지지, 사랑이 배우로의 활동을 지탱하게 해요.”

이제는 민우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가족을 넘어 팬들, 관객까지 배우 민우혁을 신뢰한다. 그는 “믿음에 보답하고, 더 많은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1분, 1초에도 마음을 담고 있다”고 했다.

“뮤지컬은 제 인생의 나침반이에요. 주변 환경에 따라서 마음가짐이 달라질 때도 있고 부정적인 상황이 생길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맡은 역할이 저를 인도해줘요. 그런 과정이 저를 성장하게 하는 것 같아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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