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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영업 주문은 씨가 말랐어요”…달력 주문도 양극화
연중 최대 대목 맞은 을지로 인쇄골목 가보니
“자영업자 달력 주문은 없어요… 찬바람 불어”
총천연색 탁상용 달력은 기업고객 주문 회복
근로자 구하기 난항…“외국인 없으면 안 돌아가”
6일 찾은 을지로4가 인근 인현동 인쇄골목 모습. 좁은 도로에서 오토바이와 지게차, 트럭이 커다란 종이 묶음을 이리저리 나르고 있어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민경 기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내년도 달력 주문을 받아 대부분 납품을 끝낸 을지로 달력 제작 업체들은 올해 영세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자영업자들이 마케팅의 ‘고전’ 격인 달력 주문을 안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영업 업계 전체에 ‘찬바람’이 불고있다는 의미로 보인다는 것이 달력업계 인사들의 분석이다.

6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을지로 인현동 인쇄골목의 ‘카렌다(Calendar)’ 집들은 1년 중 가장 큰 대목을 막 끝내고 정산 영수증 작성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연세가 지긋한 사장들은 거래 장부와 영수증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금액을 한 자씩 입력했다. 한 글자라도 틀릴까 꼼꼼히 숫자를 확인키 위해 두꺼운 돋보기 안경도 썼다.

이 자리에서 20년째 달력 등 인쇄업을 이어온 한 사장은 “가장 바쁜 11월을 보내고 지금은 거의 다 납품이 완료되어서 돈 받을 시기”라며 “항상 물건을 먼저 주고 그 다음에 돈을 받지만 한번도 돈을 떼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연말연시 선물로 제작하는 달력을 주문하면서 서로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않는 미덕이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처음 거래하는 고객은 아직 ‘신용’이 쌓이지 않아 예외지만 두 번째 일을 맡기는 고객부터는 단골로 대우한다고 말했다.

을지로 인쇄골목 곳곳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카렌다’집들. 이곳에서 주문을 받아 파주 등 외곽에 있는 공장에서 달력을 생산한다. 소매 고객이 소량으로 구매할 수도 있다.[이민경 기자]

아직 정산이 다 끝나지 않아 올해 매출을 정확히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대략만 봐도 코로나 3년의 침체기보다는 높을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다만, 뚜렷하게 감지되는 트렌드가 있었는데, 그것은 단가가 싼 달력 주문이 고급 달력 주문에 한참 못 미쳤다는 것이다.

그는 “식당, 미용실에 걸어두는 얇은 재질의 벽걸이 달력있지요? 그걸 우리는 ‘서민용 달력’이라고 부르는데, 단가가 1000원 꼴인데도 올해 주문량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탁상용 달력은 3000원, 빳빳하고 두꺼운 재질의 벽걸이 달력은 5000원이라 3~5배 비싼데도 중소기업 이상 기업체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수입 화장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국내 한 코스메틱 회사는 이 업체에 총천연색의 탁상용 달력 5000부를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도 자영업자지만 얼마나 한계상황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많은 지 절감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카렌다집 사장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종이 달력 및 다이어리 수요가 크게 꺾였지만 장년층 이상에서는 여전히 종이 달력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가게에 장년층 손님 몇몇이 들러 주변에 선물할 용도로 다이어리와 탁상용 달력 8만원치 상당을 사가기도 했다. 그는 “좋은 선물 되시라”며 덤으로 벽걸이 달력을 끼워줬다.

10년전과 비교해서 인쇄골목은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젊은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달력을 보고, 각종 디지털 기기로 메모와 필기를 하니 종이 다이어리가 설 곳이 없다”며 “옛날엔 1000부 이하 달력 주문은 소량이라 취급을 안했는데, 요즘은 대부분이 500부, 300부, 심지어는 100부 단위”라고 밝혔다.

달력업계의 큰 손인 시중은행들은 을지로 인쇄골목의 업체들과는 그닥 인연이 없다고 한다. 경쟁입찰 구조이므로 최저가 경쟁을 하다보면 영세업체 입장에선 남는 것도 없고, 수량 감당도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인쇄업계에선 일할 사람을 구하는 일도 점점 더 어려운 형편이라고 전했다. 파주에 있는 공장에서 올해 일할 한국인 직원을 구하지 못해 몽골인을 고용했다. 그는 “(몽골 직원이)말이 잘 안 통해서 잔실수가 많지만 대체로 성실하고 힘이 좋아서 만족한다”며 “우리가 그만두고 나면 을지로 영업점에서도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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