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까막눈 74세 우리엄마, ELS로 전 재산 날리게 생겼어요” [투자360]
“은행이 ‘손해 걱정말라’고 전예금 싹쓸이”
홍콩 H지수 연계 ELS, 내년 상반기 무더기 손실 예고
금융당국, 은행 내부통제 소홀 경책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내년 상반기 대규모 손실이 예고된 홍콩 H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공포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한 주식·투자 게시판에는 어떤 한 사람이 답답한 마음에 글을 남긴다며 사연글을 올렸다. 이 사람은 “저희 엄마가 3년 전 쯤에 OO은행 PB(프라이빗뱅커) 권유로 항셍H가 들어간 ELS를 가입했다”며 “녹인(원금손실구간)이 되었고 내년 4월 만기”라고 소개했다.

이 사람은 “74세, 글을 모르신다. 이름만 겨우 꼬부랑 글씨로 쓰신다”며 “그런데 그런 노인한테 ‘줄 서서 들어달라고 하는거다’, ‘손해볼 일 거의 없으니 걱정마라’, ‘예금이자 거의 없지 않냐’, ‘요즘 다 이거 한다’, ‘은행에 문제된 적 있음 팔겠냐’ 이러면서 1000만원 넘기고 전 예금 싹 쓸어 가입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70세 넘은 노인은 자식 등 지정인이 있어야 가입이 되는데, 그것도 교묘하게 지정인 또는 은행 상급자(?) 확인이 있으면 들 수 있게 해놨다”며 “대리 가입도 가능하다고 동생 명의로까지 들게 해서 동생이 안내 전화 받고 은행에 찾아 갔더니 이자 많이 받고 괜찮은거니 걱정 말고 가시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도대체 은행이 70세 넘은 노인 전재산을 공격적이고 위험도가 높은 적극투자성향으로 보고 권유·가입시키고 지정인 대신 확인하게 한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라며 “평생 힘들게 노동으로 한푼 한푼 버신 돈인데 그게 지금 반도 못 건진단 말에 엄마는 건강을 잃으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은 “멀고 저 사느라 바빠서 엄마 신경을 못 써드린게 너무 가슴 아프고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구글 금융 자료

ELS는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 가격 흐름이 사전에 정해놓은 조건을 충족했는지 여부에 따라 수익률을 결정하는 유가증권으로, 보통 홍콩 H지수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유로스톡스50, 코스피200 등이 지수형 ELS의 기초자산으로 많이 활용된다. 홍콩 H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 50개로 산출하는 지수로, 중국 관련 리스크가 불거지면 급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금융당국은 당장 "무지성", "면피"라는 격한 표현을 동원해 이 상품을 대거 판매한 은행권의 내부통제 소홀 탓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와 학계에서는 ELS 같은 고위험·고난도 상품의 판매를 제도와 행정력으로 관리·감독해야 할 당국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H지수 ELS' 실태조사와 관련한 언론 질문에 "묻기도 전에 (은행이) 무지성으로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마련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로 들린다"며 "자필(서명) 받았다든가, 녹취를 확보했다든가 (말)하는 게 불완전 판매 요소가 없다는 얘기 같은데,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의 원칙과 본질적 취지를 생각하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은행권이 예기치 못한 H지수 급락에 따른 대규모 ELS 손실에 당황하면서도, 과거 라임·옵티머스·DLF(파생결합펀드) 펀드 사태와 달리 불완전 판매 등 위법 행위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대한 직접적 비판이다.

현재 은행들은 금융소비자보호법,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표준영업행위 준칙 등을 적용해 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가입상품 위험등급, 원금손실 가능성 등에 대한 이해 여부를 고객으로부터 자필 또는 녹취를 받아 확인을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종 가입 의사를 확인한 이후에도 수일간 청약 철회 기간을 두고, 은행 본점이 다시 ELS 상품 가입자에게 전화로 상품 가입 의사와 판매직원의 설명 여부 등을 물어본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홍콩 H지수 ELS 발행량이 올해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거품경제 붕괴 이후 33년 만에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이하 닛케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발행 규모는 늘어 홍콩 H지수와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편입한 ELS는 4023억원 규모로 발행돼 9월(5137억원), 10월(4654억원)에 이어 석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연임에 대한 우려로 '차이나런'(탈중국)이 두드러졌던 지난해 10월에는 하루에만 지수가 6%나 빠졌는데, 이 당시를 기점으로 홍콩 H지수 ELS 발행량도 급감했다.

홍콩 H지수 연계 ELS 월별 발행 금액은 작년 10월 2966억원에서 같은 해 11월 902억원, 12월 654억원으로 매달 30% 넘게 감소한 뒤 올해 4월까지 8301억원까지 늘어났으나 다시 4000억원대로 떨어지며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증시가 오를 때 관련 ELS에 투자하는 것은 리스크를 확대하고 이익은 제한하는 투자 방식이라며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떨어질 때 원금 손실 위험이 커지는 만큼, 오히려 하락 구간에 있을 때 투자를 늘리고 가격이 오름세에 있을 땐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ELS는 손실은 최대 100%에 이르지만 수익률은 한 자릿수대에 그치는 상품이 많은 만큼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면 차라리 해당 기초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게 낫다고 증권가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무릎에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투자 격언은 ELS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시장이 급등할 때보다는 급락할 때 접근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gi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