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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붕어빵 적정가는 얼마?…명동 4000원 vs 회기동 200원
“서민 간식 붕어빵이 금테 둘렀나”
“이 가격에 팔아서 남는거 있어요?”
대부분 노점 형식…원가는 비슷한데 가격차 왜?
유동인구 지출 능력따라 상인들이 적정선 감지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찾은 옛날 가격 그대로의 붕어빵. 1마리당 2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길 가던 행인들이 멈춰서 홀린 듯 구매 대기줄에 선다.[박지영기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사건팀] 손 시린 겨울이 시작됐다. 흰 종이봉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 몇마리를 담아 걷노라면 조금이나마 온기가 돈다. 길가다 간혹 보이는 붕어빵 가게를 찾아 천 원 한 장을 내밀어본다. 상인이 내미는 봉지 속 붕어의 수는 지역마다, 점포마다 달라 비교하는 재미를 준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같은 듯, 다르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나흘간 헤럴드경제가 서울의 영등포구, 강서구, 마포구, 중구, 강동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양천구, 종로구, 용산구 소재 붕어빵 가게를 들러 취재한 결과, 2023년 12월 서울의 붕어빵(어른 손바닥 3분의 2 크기) 시세는 ‘3마리 2000원’이 ‘국룰(국민룰·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일반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마리 당 가격으로 치면 666원이다.

양천구 목동에서 구매한 3마리 2000원짜리 붕어빵. 서울 시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격대다.[이세진기자]

붕어빵 평균 가격은 600원대지만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관광 1번지로 불리는 명동에서는 크로아상 반죽을 사용한 붕어빵을 무려 한 마리당 4000원에 팔고 있었다. 붕어빵을 파시는 분에게 왜 이렇게 가격이 비싼지 물었다. 그는 “일반 밀가루 반죽과 다르다”라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 고객이지만 한국인들도 많이 사먹는다”고 말했다. 명동에선 일반 붕어빵도 3마리를 4000원에 팔고 있다. 한 마리당 가격이1000원이 넘는다.

관광객들이 돌아온 명동은 다시금 관광지 물가를 뽐낸다. 일반 붕어빵 3마리가 4000원에 팔리고 있다. 한 마리당 1000원이 넘는 셈. 크로아상 반죽을 이용한 붕어빵은 무려 1마리당 4000원이다.[김용재기자]

명동에선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1000원을 가지고 동대문구 회기동과 강서구 화곡동을 가면 붕어 한 아름을 안고 나올 수 있다.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3년째 겨울 붕어빵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김모(60)씨의 붕어빵 매대 앞에는 손님 6명이 줄 서 있었다. 김씨는 ‘팥붕’(팥붕어빵)은 5마리 1000원, ‘슈붕’(슈크림붕어빵)은 4마리 1000원에 판다. 명동의 가격과 비교하면 무려 20분의 1 가격이다.

김씨는 작년엔 6마리 당 1000원이었는데, 올해는 4마리당 1000원으로 가격을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균 시세보다 한참이나 저렴한 ‘군침도는 가격’을 알아본 손님들은 김씨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인 오후 7시께, 그는 “6시간만에 1.5㎏짜리 팥 앙금을 5통째 비우고 있다”며 점점 늘어나는 줄을 보면서 뿌듯한 어조로 말했다.

강서구 화곡동 까치산역 인근 붕어빵 노점. 작년 5마리 1000원에서 올해 4마리 1000원으로 올렸다. 싼 가격으로 최대한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이다.[이민경기자]

화곡동 까치산역 인근에서도 팥붕 4마리를 1000원에 살 수 있었다. 중국 심양에서 왔다는 50대 중국 동포 상인은 손님들과 대화도 놓치지 않으면서 바쁜 손으로 쉴 새 없이 붕어빵을 찍어냈다. 계속해서 손님이 밀려왔지만, 1000원 짜리 한 장을 내밀고 4마리를 사가는 손님이 대다수였다.

이렇게 팔아 남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밀가루 반죽 1㎏ 치를 팔면 순수익으로 만원 정도 남는 꼴”이라며 “정확히 얼마를 버는지는 비밀”이라며 웃었다. 그는 “여기는 서민 지역이라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끊긴다. 그래서 내 목표는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이라며 박리다매 전략을 밝혔다.

서울 지역의 붕어빵 가격은 지역마다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를 보였지만 주관적인 ‘맛’의 차이는 가격의 차가 최대 20배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를 느끼진 못했다. 대부분 노점 형식이고, 비슷한 빵틀을 사용해 사이즈도 거의 통일돼 있으며, 사용되는 재료도 밀가루, 팥, 슈크림으로 대동소이하다.

편의점 샵인샵으로 운영중인 붕어빵매대. 편의점으로 손님을 모으는 집객 효과를 톡톡히 한다.[이민경기자]

대부분 노점상에서 판매해 건물 임대료를 내지도 않고, 밀가루·팥·빵틀 가격 역시 시장가로 수렴하는 반면 서울 내 붕어빵 한마리의 가격이 많게는 20배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 분석 결과는 붕어빵을 파는 해당 지역 유동인구의 지출 능력 또는 지출 의향이 어느 정도가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상인들 역시 구매자들의 반응과 매출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격 전략’을 펴는 셈이다.

예컨대 명동에서는 기념 삼아 한국의 붕어빵을 사먹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 타깃이기에 마리당 4000원이라는 가격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주택가 단지에 위치해 동네 주민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용산구 후암동의 한 노점 상인은 “2개 1000원에 팔다 3개 2000원으로 올린 것도 노령 손님들이 뭐라고 해서 더는 못 올린다”고 말했다.

용산구 후암동 주택가에서 2000원에 붕어빵 3마리를 팔고 있다.[박혜원기자]

한 마리 500원 남짓한 붕어빵은 어엿한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양천구 목동 CBS 사옥앞에서 15년째 붕어빵을 파는 80대 노부부는 “올해 장사 개시한 지 2주일째인데 잘 팔려서 기분이 좋다”며 “젊었을 때 못 벌어놨으니 나이 들어서도 벌어야 해 부지런히 나온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 붕어빵 노점 상인은 대략 하루에 최소 10만원의 매출을 낸다고 말했다. 3마리를 2000원에 파는데 장사가 안되는 날에도 최소 50봉은 판다는 것이다. 한국인 보다는 외국인들이 한번에 2봉 이상을 구입하는 ‘큰 손’이라고 귀띔했다.

편의점, 과일가게, 도넛가게에서는 불황을 맞은 본업보다 ‘샵 인 샵’ 부업으로 하고 있는 붕어빵 장사가 더 잘 되는 사례들도 숱하다. 영등포역 1번출구 근처 편의점주는 입구에 붕어빵 간이 천막을 세웠다. 붕어빵 손님들이 편의점 입구를 막는 ‘영업방해’가 반갑다. 그는 “20명이 줄을 서서 입구가 꽉 찰 때가 있다”며 “손님들이 이렇게 붕어빵을 사는 김에 편의점에서도 하나씩 집어든다”고 말했다.

강서구 마곡나루역 인근 한 도넛 가게는 20대 알바생들이 붕어빵 장사에 총동원됐다. 도넛 가게 안은 한산한데 반해, 가게 바깥으로 붕어빵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매장 포스기는 잠잠한데 반해, 현금통은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커피 등 제조음료보다 붕어빵이 더 잘 팔린다는 요즘 여의도 카페들 근황[이민경기자]

경쟁이 포화상태에 다다른 카페업계에서 미니 붕어빵은 차별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동여의도 금융가에서는 붕어빵 노점 대신 작은 개인카페들이 미니 붕어빵으로 직장안들의 출출한 배를 유혹한다.

분명 카페에 바리스타로 취직했는데, 눈 떠보니 붕어빵을 굽고 있다는 한 아르바이트생의 귀여운 토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붕어빵을 단체로…너무…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붕어빵의 속재료는 팥과 슈크림 오리지널을 고수하는 곳이 대다수였지만,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매장은 불닭, 피자, 누텔라초코 등 호빵에나 들어갈 법한 재료를 붕어빵에 접목시켰다.

관악구 낙성대역 근처에서 3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사장은 “피자나 불닭은 한 마리에 2000원하는데도 학생들이 식사 대용으로 생각하고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디저트업계는 유행을 심하게 타는 편인데, 붕어빵은 클래식이라 부침이 없는 것 같다”며 “내년에 불닭 붕어빵이 안 팔리면 오리지널 팥이랑 슈크림으로만 팔면 된다”고 덧붙였다.

think@heraldcorp.com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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