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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알프스에서 사명대사와 표충사의 만남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③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 충혼 기리는 절
사찰은 불교라는 종교적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 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100곳의 사찰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 번째 방문지는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표충사입니다. 〈편집자 주〉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밀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전도연,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밀양’에서 남자주인공이 밀양과 닮았다고 묘사된다. 욕심과 속물성에서 벗어나 순진함을 간직하고 있기에 주변 삶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남자. 그래서 영화 속 밀양(密陽)은 ‘비밀스러운 햇빛’ 이었다.

경상도지역의 대표적인 통속민요가 ‘밀양아리랑’이다. 흥겹지만 어딘지 구슬픔도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엔 ‘독립군 아리랑’, ‘광복군 아리랑’으로도 개사해 불렸다고 한다.

두 개의 표충사가 밀양 한 곳에 있다. 밀양역에서 승용차로 40여분, 개천을 따라 좌우에 민박집들이 즐비하다. 표충사 (주차) 매표소 부근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유명조선국 밀양표충사 송운대사 영당비’ 다(송운대사는 법명은 유정, 법호는 사명당이다). 매표소를 지나 두 갈래 계곡이 하나 되는 홍제교 앞에 일주문이 기다리고 있다. 몇 개의 산봉우리가 주위를 감싸고 좌우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해자(垓字) 같은 계곡이 둘러싸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첫 번째 표충사(表忠祠),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영규대사 등 세 대사를 모신 유교적 사당이다. 양 옆엔 표충서원과 유물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수충루(酬忠樓)에 두 번째 표충사(表忠寺) 현판이 선명하다.

영남알프스와 천황산 그리고 재악산

우리나라에도 알프스(?)가 있다. 생각나는 이름들, 몽블랑(4807m), 융프라우(4158m)등의 빼어난 경관의 58개 고봉(高峯)들이 연봉으로 있는 알프스와 견줄만한 곳이 있다니.

천황산(1189m), 재약산(1119m)에서 시작, 가지산(1241m), 신불산(1159m), 영축산(취서산·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등 1000m 이상의 7봉과 그 옆의 운문산(1188m)과 문복산(1015m) 까지 9봉이 경남 밀양시, 청도군, 울산 울주군으로 연결되어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름 하여 ‘영남알프스’다. 수려한 산새와 풍광을 자랑하고 사자평, 신불평원 간월재, 고헌산 정상 부근등에 넓은 습지들이 형성되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고 억새군락지도 이루고 있다.

밀양 표충사 일주문엔 ‘재악산(載岳山)표충사’로 현판이 걸려있고 안내판은 재약산(載藥山), 좀 더 들어가니 표충사 설명판에는 ‘천황산(天皇山)표충사’를 쓰고 있다. 영남알프스 제1봉인 천황산과 2봉인 재약산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금강동천(천황산)과 옥류동천(재약산)등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합수지점에 표충사가 있으니 두 개의 산 이름을 혼용해 쓰는 것은 이해되나 갑자기 재악산(載岳山)이 등장하는 것은 왜일까.

표충사 경내

표충사엔 주지스님 진각스님이 계신다. 끊임없이 들어주시고 끊김 없이 차를 내려 주신다. 진각스님은 “천황산은 재악산 사자봉이요, 재약산은 수미봉이고, 재약봉은 별도로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다 한다. 일본왕을 칭송하기 위해 사자봉을 천황산, 수미봉을 재약산으로 바꿨기에 ‘재악산’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현재 이름 찾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기에, 표충사에서 먼저 사찰 일주문부터 재악산 표충사로 변경했나 보다.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일본 천왕 대정(大正)의 이름을 붙여 대정봉으로 바꾸고, 백두대간이 태백산맥으로 둔갑했던 것처럼, 천황산도 그런 것인가 보다. 산에 오르니 천왕산, 재약산, 사자봉, 수미봉 혼용되어 이정표들이 뒤죽박죽이다. 홍범도 장군에 의한 독립군의 첫 승리로 기록된 ‘봉오동 전투’ 영화의 마지막 부분 유골을 뿌리는 장면을 이곳 천황산에서 찍었다 하니 아이러니 하다.

사자평 억새밭 산행길

영남알프스를 시작하는 재악산 사자봉과 수미봉, 그리고 사자평을 보고 표충사로 가기 위해선 배내고개를 통해 능동산(983m)으로 이동해야 한다. 아니면 표충사에서 시작해 금강동천 계곡을 따라 내원암, 한계암, 서상암을 따라 사자봉 정상까지, 그리고 수미봉과 사자평 억새밭을 지나 옥류동천길을 따라 층층폭포, 흑룡폭포를 보며 다시금 표충사로 돌아오는 순환코스다.(순환코스는 매력적이지만 시간과 체력이 필요할 것 같다.)

필자는 밀양 얼음골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좀 더 짧은 코스를 택했다. 서울역에서 밀양 케이블카 상층부(1020m)까지는 3시간 30분이면 충분히 닿았다. 말로만 듣던 전국 최고의 억새군락지인 사자평(약 125만평)과 국내 최대 고산습지 산들늪(18만평)을 보고 싶었다. 해발 1000m 가까운 높은 지대에 산이 들과 넓게 퍼져 있다고 해서 산들늪이라 부르는데 광활한 분지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승병들을 훈련하고 숙식을 해결했을 것이다. 억새벌판을 이룬 가을철 사자평을 광활한 평원의 가을파도, 즉 ‘광평추파(廣平秋波)’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은빛 물결을 기대했건만, 시기를 놓친 내게 억새는 미안한 듯 수줍은 홍조만 띠고 있었다.

수미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사자평

케이블카 상층부에서 표충사를 가려면 사자봉(천황산)~수미봉(재약산)~사자평을 지나 생태탐방로(고사리분교터-층층폭포-표충사)로 하산하는 코스(4시간 30분가량)를 통상 이용한다. 케이블카 상층부에서 1시간가량, 해발 1189m 사자봉에 오르니 가지산,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등 해발 1000m 고봉들이 군웅할거 하듯이 펼쳐져 있다. 운무에 쌓인 듯 신령스럽기까지 하고 가슴마저 시원하다. 쉬운 길이다. 진달래, 철쭉의 봄, 그리고 억새꽃 흐드러지게 피는 가을이면 등산객들이 넘쳐날 듯했다.

사자봉에서 천황재를 지나 수미봉에 이를 때쯤 뒤돌아보니 표충사를 지키고 잇는 것처럼 밀양 쪽으로 사자한마리가 엎드려 있다. 천왕산이 왜 사자봉(사자바위)인지 이해가 된다.

수미봉을 오르는 마지막 코스는 정상을 쉬이 내주기 싫은 듯 암벽들이 갈 길을 자꾸 막아 선다.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수미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사자평도 장관이다. 표충사 부지라고 한다. 90년대 중반까지 고사리 마을 민박촌과 학교분교까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았지만 표충사에서 아랫 마을로 모두 이전시켰다고 한다. 사자평 방향으로 데크길을 내려오다 보니 보일 듯 말 듯 ‘진불암’ 가는 샛길이 보인다. 사자평원을 향해 한참을 내려가다, 진불암이 머리에 자꾸 어른거려 발길을 돌려 진불암 길로 방향을 바꿔 잡았다.

천황산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대원암과 내원암, 진불암(수미봉 밑)

높은 산중 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암자 느낌의 진불암에 가고 싶었다. 그 길로 가다 보면 내원암 들려 표충사를 가는 지름길 이겠구나, 라는 생각도 하며 한치 앞도 못 보고 발이 먼저 움직였다.

이미 접어든 길인데 심상치 않다. 조릿대 무성한 길을 30여분 남짓 갔을까. 띄엄띄엄 걸린 연등이 길을 안내 하고 따라가니 벼랑 위에 지은 듯 몇 채의 가옥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주인이 오랫동안 집을 비웠을까? 가옥들은 문을 굳게 닫고 우물도 말랐다. 진불암 현판이 붙은 가옥도, 산신각 안내판이 놓인 가옥도 요사채처럼 보이는 가옥도 헛헛하다. 해산스님 오도송(悟道頌)이 새겨진 해산바위 돌비석만이 눈에 밟힌다.

‘제왕이 그물을 던져 코 없는 짐승을 잡고, 능히 달팽이 뿔을 가지고 우는 아이를 달래더라. 금모 사자가 반은 땅에 걸처 앉았으니, 기운이 만장이나 높아도 범범이 오르기가 어렵더라.’

선승이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오도송(고승들이 부처의 도를 깨닫고 지은 시가)이니, 그냥 낭송해 볼 뿐 과객이 깊은 의미까진 헤아릴 수 없다.

내원암(왼쪽)과 진불암

진불암은 과거부터 스님들이 토굴에서 한철씩 생식하며 도를 닦는 유서 깊은 절이다. 통도사, 표충사 등의 조실로 계시다가 1980년에 입적한 해산스님도 진불암에서 정진할 때 쌀 한 숟가락을 물에 불려서 먹고 일주일 동안 변도 보지 않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진불암에서 2.1km 아래에 있는 내원암(표충사 바로위)에는 해산스님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내원암은 아무나 쉽게 접근을 허락하기 싫었나보다. 지도 상 거리는 2.1km 이지만 발가락은 아프고 가도 가도 암자의 염불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걱정이 든다. 넘어지면 안 된다. 2시간여 만에 반가운 내원암 지붕이 청기와 빛을 띠며 맞아준다. 해산스님이 정진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가르침을 전했던 곳이다. 내원암에는 해산스님의 부도와 스님의 행장을 기록한 비가 있다. 여기서 천황산 방향으로 1.3km에 한계암이, 1,5.km 가면 서상암이 있다는 이정표다. 표충사 입구 홍제교 우측엔 비구니 암자인 대원암이 있다. 거기엔 부엌(공양간)을 지키는 신 조왕을 그린 ‘조왕도’ 도 있고 화려함도 갖추고 있다는데 이번엔 방문하지 못했다. 다음 인연을 고대해본다.

만남과 인연 : 사명대사 표충사(表忠社)와 고승 도량 표충사(表忠寺)

내원암 쪽에서 내려오다 보니 부도전에 큰바위 위에 바위를 올린 파격적인 부도탑이 눈길을 끈다. 대한불교조계종 초대종정을 하셨던 효봉대종사다. “내가 말한 모든 법은 다 군더더기”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부도전에서 절로 들어오니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서래각(西來閣) 선방(禪房)이다. 법정스님과 시인 고은의 은사이기도하며 해방 후 통합조계종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셨던 효봉스님이 기거하다 입적한 곳이다. 내부엔 1860년에 월암선사가 만일의 기도 끝에 이룩한 건물이라 해서 만일루(萬日樓) 라는 H형의 독특한 구조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담장 너머로 살펴봐야 했다.

서래각 앞마당에 삼층석탑과 석등을 두고 불자들이 탑돌이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인 654년 원효대사가 재악산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 절을 세운 후 죽림사(竹林寺)라 칭했다. 이후 흥덕왕 4년(829년)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가 다섯색깔 구름을 본뒤 3층 석탑을 세우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마침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을 치료하려고 신령스러운 산과 약수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선사의 법력으로 약수를 마시고 완쾌했다. 이때부터 신령한 약수가 있다 하여 ‘영정약수’라 칭하고 사찰이름도 ‘재악산 영정사’라 고쳤다.

고려 충열왕 때에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국사가 승려 1000여명을 모아 불교를 크게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임진왜란 화재 등으로 소실되어 중건된 적도 있다. 전란 중에도 삼층석탑은 수많은 유물(출토유물 34점)을 품고 끗꿋이 자리를 지켜와 보물로 지정됐다.

삼층석탑 앞마당에는 오래된 백일홍 두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전설 속의 영험한 약수물인 영정(靈井)약수에 객들이 목을 축인다. 몇계단 오르니 우측면에 대광전이 좌측면에 우화루와 마주하고 있다.

표충서원의 경내 모습

제약산을 뒤배로한 정면에 관음전과 명부전이 대신하고 있다. 대웅전이 정면이 아닌 측면에, 배산임수 풍수지리 때문일까. 의구심은 뒤로 하고 사명대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고 신령스러운 우물이라는 고영정(古靈井)이라는 편액도 걸려있는 넓은 정자 우화루(雨花樓)에 앉아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눈을 들어 앞산을 보니 능선이 한복의 치마폭처럼 아름답다. 향로봉(979m)이라고 주지스님이 알려주신다. 그 누군가가 재물을 불러오는 능선이라고 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난간에 기대어 한참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백일홍 활짝 필 때, 우연한 기회로 인해 하룻밤 절에 신세를 졌던 적이 있다. 잠을 깨운 산사의 새벽 종소리에 이끌려 예불에도 참여했고 뭄이 움직이는 대로 108배도 했다. 만남은 우연이었고 우연은 인연이 되어 다시 찾았고 느낌은 여전했다. 호국정신이 깃든 절 표충사는 그랬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셨던 자승스님이 소신공양(燒身供養)했다. 그 저간의 사정이야 일반인들이 헤아리고 판단할 순 없겠지만 몇해 전 동안거 기간 동안 100일 천막 결사정진을 함께 하셨던 주지스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밀양 무안면 영축산 백하암에 세워져 있던 사당 표충사(表忠祠)를 1839년(현종 5) 이곳으로 옮기면서 기존의 영정사를 표충사(表忠寺)라 고쳤다. 이때 경내에 사명대사의 제향을 올리는 서원과 사당이 함께 하므로 불교와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특이한 사찰이 되었다.

표충서원은 사액(임금이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내림)이 걸려 있고 유물관에는 사명대사의 가사와 장삼 등 유품 300여점, 표층사 삼층석탑 출토유물 34점(보물), 청동향로에 무늬를 새기고 그 속을 은실로 메워 장식한 청동은입사 향완(국보)등이 있다.

표충사의 4계는 ‘밀양 8경’ 중 3경에 속할만큼 어느 계절에 와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소나무숲, 상사화, 백일홍, 진달래, 억새평원, 물이 풍부한 계곡 등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 그리고 고승들이 계셨던 곳인데 안내판 하나가 가슴을 여미게 한다.

‘이 곳 대한불교조계종 표충사는 1980년 발생한 10·27법난의 피해 사찰입니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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