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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9.19 군사합의와 안보딜레마의 질곡
북한군이 GP 내에 무반동총과 고사총 등 중화기를 반입한 모습(위)과 북한군이 목재로 구조물을 만들고 얼룩무늬로 도색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한반도 안보가 다시 출렁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2일 9.19 군사합의 가운데 비행 금지 구역 설정 조항에 대한 효력 정지를 선언했다. 북한이 하루 전 군사 정찰 위성을 발사하자 예고된 대응 수순을 밟은 것이다. 9.19 군사합의가 우리 군의 대북 감시정찰 활동을 제약한다는 그간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조치였다. 북한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 국방성은 23일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한다”고 발표하며,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북한이 언급한 ‘군사적 조치’는 지상·해상·공중 전 영역을 아우를 것으로 예상된다. 9.19 군사합의에서 금지한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을 재개하거나, 완충 수역으로 설정되었던 동·서해 수역에서 포사격과 해상 기동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북한 국방성이 공언한 “신형 군사 장비들의 전진 배치”가 주목을 끌고 있다.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신형 단거리 미사일(KN_23, 24, 25)을 대거 전방 지역에 배치하거나, 신형 152㎜ 자주포, 240㎜ 방사포, 그리고 신형 전차, 장갑차 등을 전방 기계화 부대에 배치한 뒤 MDL 근처에서 대대적 화력 훈련을 감행하는 우려스러운 시나리오 때문이다. 북한의 강경 반응에 우리 군도 대비 태세 격상과 대응 행동으로 맞서고 있다. K-9 자주포의 전투 대기포를 늘리는 등 전방 지역의 화력 대기 상태를 격상시켰고, 이지스함 및 탄도탄 감시레이더를 추가 운용하는 등 감시 및 대응 태세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NLL 이남으로 포사격을 할 경우 우리 군도 K-9 자주포 사격훈련을 재개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한마디로 2018년 9.19 군사합의에서 설정한 모든 적대행위 금지와 완충 구역 설정이 전면 해체 수순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이 시점에서 군비통제와 안보의 관계를 다시 한번 집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발언대로 정부의 효력 정지 조치에 대해 ‘이익은 1조 원, 손실은 1원’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할까? 9.19 군사합의는 우리 안보에 득이었는가, 실이었는가? 안보를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를 압도하는 확고한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는 것이다. 월등한 군사력을 건설하고 어떤 장애도 없이 최상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자 하는 접근이다. 정치적, 군사적 본능에 가까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자위적 행동이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자신의 안보를 높이려는 행동이 상대의 대응 조치를 불러옴으로써 결국엔 내 자신의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안보딜레마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바로 군비통제다. 무익한 군비경쟁을 멈추고 더 낮은 군사력 균형 수준에서 전략적 안정을 달성하며, 위기 불안정을 제어하기 위해 군사력 운용 태세에 자발적 제한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군사력 동결·축소를 다룬다는 점에서 ‘구조적 군비통제’라 하고, 후자는 군사력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운용적 제한만 가한다는 점에서 ‘운용적 군비통제’라고 부른다. 9.19 군사합의는 구조적 군비통제보다는 덜 야심적인 운영적 군비통제에 속한다. 즉, 한반도 위기 불안정을 통제하기 위해 남북이 군대 운용상의 제약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9.19 군사합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비행 금지 구역’(서부지역, MDL 부근 20㎞) 설정이라는 운용적 제한이 우리 안보에 위해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를 향해 질주하는 마당에 우리만 군비통제에 손발이 묶여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물론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가 우리 군의 눈과 귀에 얼마나 치명적 제약을 가하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단·군단급 무인기를 제외하면 우리 군의 감시정찰 자산은 비행 금지 구역(서부지역, MDL 기준 20㎞)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설령 일부 감시정찰 활동에 제약이 있다 하더라도, 그 손익 판단은 위기 안정성 확보라는 9.19 군사합의의 순기능과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보면 군비경쟁이 치열할수록, 위기 불안정이 깊어질수록 군비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과감한 군축·군비통제 합의가 도출된 경우가 많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고 난 후 케네디 대통령의 촉구로 미-소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이 합의된 것이나, 1983년 나토 훈련 후 냉전의 열기를 식히려고 결심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체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군비통제는 안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하는 전략적 결단을 뜻한다. 전술적, 작전적 수준에서만 생각한다면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비 태세 강화라는 전술적 요청은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성이라는 큰 전략적 맥락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MDL과 NLL 부근의 완충 지역이 없어지고 군사력 전진 배치와 무력시위의 고삐가 풀려가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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