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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예과1년 우울증 탓 투신 충동까지” “로펌 입사도 바늘구멍”[상위 0.1%의 그늘]
입시 후에도 의사·변호사 되기 위한 경쟁 부담
막대한 학업량에 대형 로펌·특정과 쏠림 현상
“로스쿨도 내신 경쟁”, “폐쇄적 분위기에 상담 포기”
번아웃 증후군, 성공우울증 분석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박혜원·안효정 기자]#.“전국 성적 상위 0.1%만 들어간다는 의대에 재수 끝에 입학했습니다. 원하던 길이었고 모두가 ‘대단하다’라고 칭찬했어요. 그런데 입학 3개월이 지나고 우울증이 시작됐습니다. 앞에 놓인 더 큰 장벽들이 보였습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밤을 샌다는 본과 생활, 3주간 매일 치른다는 본과 3학년 메이저 시험, 국가고시, 매주 100시간씩 근무한다는 인턴과 레지던트… 고3과 재수 생활을 뛰어넘는 문제들이 계속 지속될 거라 생각하니 ‘삶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 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 A씨(31)는 예과 1학년, 처음으로 우울증이 발병했다. ‘돌아오는 일요일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이라는 계획까지 세웠다. 3개월의 우울증 악화 시기(에피소드)가 끝난 뒤에도 고통은 지속됐다. 방학을 앞두면 우울증이 찾아올까 두려워 불안한 마음에 혼자 울기도 했다. 우울증은 심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며 10년 동안 이어졌다. A씨를 괴롭힌 것은 끊임없는 경쟁이 예상되는 미래였다.

#.“로스쿨에 입학 할 때는 큰 꿈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오니 변호사 시험도, 대형 로펌도 만만치 않더군요. 대형 로펌에서 일하고 싶은데 성적이 안 되고 야망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성공이 좌절되니 무기력,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랑 친한 선배도 대형 로펌 인턴을 했는데 컨펌(취업 확정)이 안되니 바로 휴학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던 선배였는데 말이죠.”

서울 소재 로스쿨에 재학 중인 B(23)씨는 입학 직후 3개월 동안 불안 증세로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직접 “우울증이 있다”고 고백하는 로스쿨 동기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어느 정도의 우울감은 공유한다. 시험 기간에는 불면증 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입학 후 체감한 로스쿨 내부 경쟁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심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 진료를 받은 인원은 100만744명으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20대는 18만 5942명(18.6%)으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20대 우울증 증가 원인으로는 청소년기 입시부터 취업까지 이어지는 ‘무한 경쟁’이 꼽힌다.

입시 경쟁의 ‘승자’로 꼽히는 의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숨 막히는 입시 경쟁을 뚫고 입학한 이들의 앞에 놓인 길 역시 경쟁이다. 수백 페이지 전공 서적을 ‘1회독’도 못했다는 좌절감, 원하는 과·로펌에 들어가기 위해 친구를 꺾어야 한다는 부담감,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정신과 치료 기록이 지금까지 쌓아온 ‘성공의 성’을 무너뜨릴까 두려워 쉽게 병원을 찾을 수도 없다. 지금 이들은 우울증에 갇혀 있다.

입시 끝·지옥 시작…“번아웃, 성공우울증”
[123rf]

서울 소재 한 의과대학이 운영 중인 의대생 상담 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0년 20명, 2021년 30명, 2022년 35명, 2023년(11월 기준) 30명 등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이 센터는 지난 2020년 처음 문을 열었다. 물론 모두가 우울증을 진단 받은 학생은 아니다. 학교 생활이나 학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상당수지만,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막막한 의대생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의대나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이 입학 후 가장 먼저 마주치는 벽은 압도적인 공부량과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시험이다. 올해 로스쿨에 입학한 C(31)씨는 “시험 기간에 1회독도 못하고 들어가면 내가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었나?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면서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게 된다”며 “학창시절 늘상 상위권을 차지하다 중하위권 성적으로 떨어지다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자아가 파괴되면서 겪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변호사 시험을 치른 D씨는 “로스쿨 커리큘럼은 교수들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로 무리하게 짜여 있다. 사법고시 시절로 치면 4~5년의 수험 기간과 사법연수원 4학기까지 6년 동안 배울 내용을 3년 만에 수료해야 한다”며 “3년 동안 학기 중간·기말 고사, 3학년에는 3번의 모의고사와 변호사 시험까지 끊임없이 실력을 테스트 당한다. 일부 로스쿨은 자체적인 유급 시험과 모의고사까지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지방대 치의예과 본과 2학년인 E씨(24) 또한 학업 스트레스를 우울증의 1차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E씨는 “이틀에 한 번씩 시험을 보는데 범위가 300~400쪽짜리 책 한 권이다.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해도 숙지할 수 없고, 수업 진도는 계속 나가는 데다 실습도 많다”며 “사실상 모든 범위를 곱씹고 보는 것은 포기한다. 친구들과 매번 ‘이렇게 공부해서 면허 딸 수 있을까?’하는 말을 한다”고 했다.

최준호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과 성공 우울증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번아웃 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성공 우울증은 의학적 개념은 아니지만 최 교수가 가까이서 의대생들을 살펴보며 내린 결론이다. 그는 “우울증의 심리적 기제 중에 ‘상실’이 있다. 입학이라는 목표 달성(성공)이 목표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입학에 몰두한 나머지 성취한 이후에 목표가 없어 방황하게 되고, 입시가 끝나면 해결될 줄 알았던 경쟁의 고통이 지속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로스쿨도 내신 싸움”…경쟁 또 경쟁
변호사시험 수험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

더 좋은 곳을 향한 경쟁은 의대, 로스쿨에서도 반복된다. 이상규 한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내부 경쟁이 예전보다 심해졌다. 예전에는 모든 과를 골고루 다 지원했지만 요즘에는 선호하는 과가 분명하다”며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고등학교 내신이 중요한 것처럼 의과대학에 와서도 좋은 과를 가기 위한 경쟁이 심하다”고 말했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선호과로 학생들이 쏠리면서 학업 스트레스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로스쿨생 B씨는 1~2학년때 정해지는 로펌 ‘컨펌(confirm)’ 관행을 내부 경쟁이 심화하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형 로펌은 로스쿨 1~2학년 방학 기간 ‘채용 전제형 인턴’을 뽑는다. 인턴 중 일부는 변호사 시험 합격을 전제로 입사를 미리 ‘컨펌(확정)’ 받는다. 인턴 선발 과정에 자기소개서, 로스쿨 성적서 등을 제출하다보니 ‘1·2학년 성적’에 압박감을 느끼는 로스쿨생들이 많다. 일종의 내신 경쟁인 셈이다.

B씨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채용 과정이 진행돼야 하는데 사실상 1~2학년때 정해진다. 내신 성적만 보는 데다 학교별로 소수만 된다”며 “동기 120명 중 30명 정도가 컨펌을 받는다. 남이 붙으면 내가 떨어지는 구조라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스쿨생들은 컨펌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10대 로펌’에 들어갈 수 없다고 본다. 대형 로펌 대부분이 인턴 중에서 신입의 80% 이상을 뽑고, 일부 로펌은 인턴 경력을 입사 조건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 때문에 ‘내신’ 시험에 필요한 자료를 서로 공유하지 않고 심지어 뺏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기록 남으면 불이익”…힘들어도 숨는다

우울증을 자각하더라도 실제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울증 진단 이력이 취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 직무 채용 시 정신과 치료 내역을 요구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판사 임용 필수코스로 꼽히는 재판연구원이 대표적이다. 법원 재판연구원은 지난 7월 공지한 ‘2024년도 재판연구원 임용계획’에서 정신과 치료·상담 내역을 지원자 요구자료로 명시했다. 법무부 역시 검사 채용 때 정신과 치료이력을 요구해왔지만 지난 2021년에야 인권위원회 권고로 폐지됐다. 로스쿨 재학생 B씨는 이와 관련 “정신병력이 채용 때 실질적인 불이익이 되기 때문에, 정신건강 관련한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치대생 E(24)씨는 “학업량이 많은 데다 분위기도 폐쇄적이라 상담을 받기 어렵다. 학교 내 상담센터도 알아보고 신청 직전까지 갔지만, 혹시라도 기록이 남아 불이익이 생길까 걱정돼 포기했다”고 했다. 서울 소재 한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생을 위한 상담센터를 따로 운영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학생들이 찾기 어렵고 공부에 치이느라 정작 이용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선 ‘정신과 상담 기록 안 남는 법’이 팁으로 떠돈다. 지방 소재 로스쿨 재학생 F(23)씨는 “로스쿨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정신과 상담글은 꾸준히 올라오는 소재”라며 “대부분 ‘비보험으로 처방받아라’는 조언을 한다. 하지만 비보험으로 (처방을) 받으면 10만원 이상 (돈이) 깨지는데, 꾸준히 내원하기는 부담스럽다. 결국 돈 없는 사람들은 참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안경찬PD]
[영상=안경찬PD]
park.jiyeong@heraldcorp.com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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