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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우성 “인간이 정의로울 수 있나...의문을 던진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과 다섯번째 호흡
막연했던 캐릭터...감독 미쳤다 생각도
시사회땐 기 빨리는 느낌에 다리 후들

“주변이 온통 안개인 망망대해에서 육지를 찾는 기분이었어요. 김성수 감독이 ‘이게 이태신이야’라며 제 인터뷰 영상을 보내셨는데, ‘이 사람이 미쳤나? 나보고 뭘 찾으라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우 정우성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영화 ‘서울의 봄’에서 처음 접한 이태신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던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로, 김성수 감독이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정우성은 전두광(황정민 분)이 주도한 반란 세력에 맞서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분했다.

정우성은 이태신에 대해 그가 연기했던 인물 중 가장 ‘가장 막연한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태신은 작품의 모티브가 된 12·12사태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태신을 연기하기 위해 김 감독과 기나긴 논의가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김 감독은 정우성이 UN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할 당시의 인터뷰 영상을 참고용 자료라며 잔뜩 보냈다. 이태신이란 인물에 차분하고 강직한 정우성의 본래 성격을 투영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우성 자신은 그런 감독의 주문이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는 “감독은 내 인터뷰에서 의연하고 꿋꿋하게 임하는 태도를 본 것 같다”며 “타자의 이야기를 타자가 전할 때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신중함을 원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태신이 선(善)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립 구도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우성은 “이태신이 명분과 정의를 울부짖는 인간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자기 본분과 직무에 충실하고 책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라며 “사람은 정의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선택하고 행동하고 무리를 지어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작품이 전두광, 이태신 등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내재돼 있는 여러 캐릭터들을 꺼내 인간은 모두 무고하지 않다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인간 본성을 탐구한 영화라 좋았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전두환의 군사반란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요즘 세대가 이 사건을 모른다는 게 의아했다”며 “군사반란으로 인정된 사건이 뭔가 단절된 것처럼 알려지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정우성은 이번 영화를 통해 김 감독과 다섯 번째 호흡을 맞췄다. 김 감독은 영화 ‘비트’로 정우성을 스타덤에 올린 뒤 ‘무사’, ‘태양은 없다’, ‘아수라’ 등으로 인연을 이어갔다. 정우성은 김 감독에 대해 자신을 ‘배우를 넘어서서 영화인으로 만들어준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영화 경력이 얼마 안되는 저를 동료로 대했고, 배우 이상의 작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격려했다”며 “영화인으로서 확장된 꿈을 가지도록 용기를 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정우성은 평소 김 감독과 작업할 때 여러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편이지만 이번 영화 만큼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태신이란 캐릭처를 찾아가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작품처럼 김 감독한테 의지한 적이 없다”며 “김 감독의 집요함과 에너지는 해가 갈수록 갱신한다. 수없이 많은 인간 군상을 각 자리에서 빛나게 했지 않나”라고 말했다.

정우성은 ‘아수라’를 시사했을 땐 ‘야구공으로 한 대 맞은 기분’을 느꼈다면 ‘서울의 봄’은 ‘기 빨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사회 후)극장에서 일어나서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더라”며 “인간의 본성을 깊이 파고 들어가 고민 끝에 구현한 캐릭터들과 함께 전체적인 조화를 만들어 내는 걸 보니 기가 빨렸다”고 말했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과도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재회했다. 정우성은 황정민의 연기에 두 엄지를 치켜들면서도 ‘아수라’ 때와는 결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황정민 씨의 전두광 분장이 딱 끝나는 순간, 어마무시하다고 느꼈다”며 “ ‘아수라’에선 설득력 없는 폭주를 보였다면, 이번엔 설득력을 갖고 인간의 사심을 굉장히 잘 간파한 인물로 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황정민이) 연기할 때 에너지가 뚫고 나온다”며 “눈을 마주치고 기싸움하기 싫었다. 힘들지않나”라며 웃었다.

정우성은 올해로 어느덧 데뷔 30년 차를 맞았다.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도전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힌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나 지금이나 연기의 재미는 한결 같다고 했다.

그는 “배우는 사소한 감정일지라도 그 감정에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민하는 직업”이라며 “아직 그 과정이 참 재밌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젊은 시절엔 제 확신만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부여하는 의미는 사사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의미는 부여되는 것이지, 주는 게 아니더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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