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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90% 흡수한 은행권
석달새 적립액 5배...5조 돌파
점유율 반토막 증권사는 울상
초저위험에 자금 쏠림 가속화

올 하반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본격 시행되며 적립액 규모가 석 달 만에 5배 가량 불어난 가운데, 대부분 자금을 은행권 상품이 흡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증권사 점유율은 ‘반토막’나며 자금 쏠림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도입 취지와 다르게 ‘초저위험’ 상품에 대부분 자금이 몰리며, 수익률 개선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취지와 다른 원리금 보장 상품을 적격상품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미리 정해둔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그간 금융권은 수익률 부진 원인 중 하나로 고객의 미진한 운용관리를 지적해왔는데, 이를 극복하려 마련된 수단 중 하나다. 디폴트옵션은 1년의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 7월 본격 시행됐다.

▶‘디폴트옵션’ 본격 시행...흥행 기대했던 증권사는 ‘울상’=1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전 업권 디폴트옵션 적립액은 5조1095억원으로 지난 6월 말(1조1018억원)과 비교해 석 달 만에 5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디폴트옵션 본격 도입과 함께 은행 적립금이 대폭 늘어난 데 따른 영향이다. 같은 기간 은행권에는 3조4073억원의 자금이 몰리며, 증가세를 주도했다.

다른 업권을 살펴보면, 증권사의 3분기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2188억원으로 지난 2분기 말(1033억원)과 비교해 두 배가량 증가했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적립액은 각각 1336억원, 667억원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의 디폴트옵션 점유율은 86%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증권사 점유율은 지난 2분기 말 9.4%에서 석 달 만에 4.2%로 쪼그라들었다.

애초 디폴트옵션 도입이 본격화되면 증권가로의 자금 쏠림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증시 부진과 함께 ‘안정성’ 선호 현상이 나타나면서 증권사 점유율은 점차 줄었다. 심지어 증시 회복세가 나타났던 지난 2분기에는 은행권 상품이 전체 수익률 1위를 차지하는 등 수익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점차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초저위험 상품에 90% 자금 몰려...“도입 취지 무색” 지적 계속=가장 큰 문제는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와는 별개로 ‘초저위험’ 상품에 자금 대부분이 쏠려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에 자금이 집중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수익률 개선을 위해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대부분 고객이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를 가진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택함에 따라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 3분기말 기준 ‘초저위험’ 상품 적립액 규모는 4조5639억원으로 전체 적립액(5조1095억원) 중 89.3%의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저위험(2892억원, 5.6%), 중위험(1674억원, 3.2%), 고위험(867억원, 1.7%) 등 순으로 쏠림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전체 퇴직연금 시장서도 90% 자금이 예적금, 주가연계채권(ELB) 등 상품에 집중된 것을 고려하면, 큰 변화가 없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디폴트옵션이 시행된 이후 증시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 영향이기도 하다. 올 상반기 6개월간 은행권 상품의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저위험 4.05% ▷중위험 5.92% ▷고위험 8.72% 등으로 초저위험(2.18%)보다 최대 4배가량 높았다. 반면 3분기 수익률의 경우 초저위험군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이에 전문가들은 ‘초저위험’ 상품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몇십 년간 관리할 장기투자 상품에서 낮은 수익률을 유지할 경우, 추후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에서 원리금 보장 유형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시중은행 PB팀 관계자는 “장기투자 상품인 퇴직연금을 정기예금 등을 중심으로 구성할 경우, 은행 통장에 저금하는 것과 차이가 없고, 수익성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없다”며 “실제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디폴트옵션에서 정기예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을 제외하도록 해, 수익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추후 고금리 상황이 마무리되고, 증시 회복이 이뤄지면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시중은행 PB팀 관계자는 “아직 디폴트옵션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투자 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에 이전 퇴직연금 시장의 성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결국 수익률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고객이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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