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신현주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혁신위원장 행보에 본격 제동을 걸었다. 인 위원장이 ‘친윤계 험지 출마·불출마’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었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선을 그은 것이다. 이에 대통령실은 사실상 인 위원장의 발언에 공식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이 벌어질 조짐을 사전에 차단하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1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가 제안한 여러 발전적 대안에 대해선 존중하고 그것이 공식기구를 통해 잘 논의되도록 절차가 진행 중”이라면서도 “다만 당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울산에서 출마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당 대표의 처신은 당 대표가 알아서 결단할 것이다.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혁신위 타깃에 김 대표가 포함된 것이 명백해진 뒤 처음으로 나온 거취 표명이다.

이는 인 위원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앞서 인 위원장은 지난 15일 YTN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에게 만남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며 “(윤 대통령 측에서) ‘지금 하고 있는 임무를 소신껏 맡아서 국민의힘이 필요한 것들을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 ‘혁신안을 거침없이 진행해달라는 뜻이었냐’는 질문에 “맞다”며 “지적할 것은 지적(하라는 의미다. 긍정적으로 (혁신안에)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5차 전체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

당내에선 지난 3월 전당대회 때 친윤계가 김 대표 ‘라이벌’을 끌어내렸던 모습과 지금 상황이 유사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장제원 의원은 나경원 전 의원을 겨냥해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고, 이진복 정무수석은 안철수 의원을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 위원장과 친분이 있다고 전한 중진 의원은 “전당대회 때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이 김 대표의 경쟁자들을 대하는 방식도 (지금과) 비슷했다”며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인물을 내세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인 위원장이 윤심을 얻은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은 여당에 정치적 빚이 없다”며 “친윤계 의원들에게 불출마를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이는 친윤계 의원들이 거절할 수 있는 명분도 된다”며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의 신경전은 갈수록 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실은 재점화될 조짐이 보이는 ‘윤심 논란’과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 혹시나 윤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고 있다는 논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 위원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으면서 김 대표의 입장를 고려해 당 지도부와 혁신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분위기다.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와 내홍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논란은 지난달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의 사면과 연결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대통령실이 혁신위에 힘을 실어줬다’는 보도에 대해 “당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는 또 다른 이유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김기현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지도부 입장에서 인 위원장 발언은 ‘지도부 흔들기’밖에 안된다는 주장이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혁신위원장이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데 당연히 (윤 대통령이)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았겠냐”며 “윤 대통령의 격려차 발언을 친윤계 의원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데 쓰는 것은 엄연한 자기 정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