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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인’의 성과…장현은 왜 길채에게만 헌신할까?[서병기 연예톡톡]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MBC 금토드라마 ‘연인’이 이번 주말인 18일 21화로 종영한다. 장현(남궁민)과 길채(안은진)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두 회를 남긴 ‘연인’은 17세기 조선 사회를 정치사회사적으로 잘 조망한 사극으로 평가된다. 거기에 절절한 멜로를 담았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다룬 휴먼 역사멜로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당초 30부작으로 기획돼 20부작으로 조정되었다가 1부가 연장됐는데, 24부작 정도로 편성해도 충분히 밀도가 있는 구성이다.

‘연인’은 조선 사회 내적인 문제를 넘어 동아시아적인 질서와 맥락에서 파악했다는 게 최고의 성취다. 이 시기를 다룬 전작들 대부분은 조정의 신하들이 ‘청나라와 싸울 것인가, 화해할 것인가?’, 다시 말해 척화파와 주화파의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하지만 ‘연인’은 좀 더 유연하고 넓은 시각에서 당시 조선의 대내외적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구조적이고 입체적으로 사안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학교에서 배운 한국사만으로는 이런 시각을 가지기는 어렵다. 지역사(local history)와 국가간 관계사를 거의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히 ‘오랑캐’라 불리는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이해도가 극히 낮다. 가장 잘 알아야 될 이웃을 너무 모른다. 이들이 야만적이라고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이번에 ‘연인’을 통해 홍타이지, 용골대, 도르곤 등 여진족(만주족)을 좀 더 알게 됐다. 여진족 리더들에게도 꽤 많은 대사를 줘,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공교롭게도 KBS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MBC ‘연인’은 조선과 여진의 전쟁을 각각 다루고 있다. 거란은 송나라를 무릎 꿇린 유목민족이고, 여진은 조선을 무릎 꿇리고, 명나라까지 멸망시켰다.

그래서 한족의 중국은 북방 오랑캐의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그래서 중국은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전략으로 지배한다. 동북공정, 서북공정 등이 그 실천전략이다. 어떤 민족이건 중국 영토 안에 들어와 있으면 모두 중국역사로 편입시킨다는 것.

‘연인’은 건주여진을 통합한 누르하치부터 홍타이지-순치제(섭정왕 도르곤)-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강건성세(康乾盛世)’라는 청 전성기의 출발점에 대한 기본 인식을 가지게 했다.

후금(청)의 1차적 목적은 조선이 아니라 명나라였다. 그래서 1회에 원숭환 장군 이야기가 나온다. 누르하치는 명나라를 노렸으나 만리장성의 산해관 앞에 있는 영원성을 지키는 원숭환 장군에게 막혀 패퇴한다.

‘연인’1회에서 조선 신하들이 명(明)이 청(淸)을 이길 것이라며 빨리 명으로 사신을 보내라고 하자, 이장현(남궁민)이 “오랑캐가 명을 이긴다는 생각은 안해봤나”라면서 명 말기의 명장 원숭환을 거론한다.

홍타이지는 원숭환을 이길 방법이 없자 적을 이간시키는 반간계(反間計)로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해, 모반 혐의를 받은 원숭환을 능지처참되도록 만들었다. 만리장성을 반간계로 뚫었던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청나라는 명에 비해 적은 수의 군대지만, 빠른 기동력으로 명과 대항할 수 있었다.북방에는 다양한 유목민과 반유목민들이 살았는데, 어떤 민족이건 실력만 있으면 병사로 차출돼 장군도 될 수 있는 다민족 군대 ‘팔기군’(八旗軍)을 누르하치가 운영한 것도 승리의 이유다. 팔기군은 청나라 말기로 오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지만, 청나라 초기에는, 성과만 내면 그에 맞는 보상이 이뤄지는 유연한 스타트업 군대라고 할 수 있다.

몽골말은 장기전에 강하다. 유럽말의 원산인 아랍말은 스프린터라 수백킬로 거리는 약하다. 청나라는 홍타이지 선발대가 압록강에서 한양까지 ‘직도(直擣)’ 전략으로 6일만에 기습한다. 당시 소현세자 피난 행렬이 숭례문 근처에 왔지만, 홍제원 직전까지 청의 선발대가 당도했다는 말을 듣고 목표인 강화도와 정반대 방향에 있는 남한산성으로 갔다. 인조는 강화도로 향하는 파천이 저지당해 남한산성에 갇혔다.

청나라는 명이 쓰던 홍이포를 업그레이드시켜 무기를 개량했다.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홍이포는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명나라에 전해진 대포다. 사정거리가 임진왜란때 조선이 사용하던 가장 큰 대형화포인 천자총통의 거의 3배에 달하는 9㎞나 된다. 지금으로 치면 ICBM급이지 않을까 싶다.

청나라는 명나라 기술자를 잡아 이들을 통해 홍이포를 개량까지 하고, 병자호란때 남한산성 앞에서 뻥뻥 쏘아대자 인조가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를 알아야 전쟁에서 지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적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조선사회는 병자호란 후에도 혹독한 댓가와 시련을 맞아야 했다. ‘연인’이 포로, 환향녀 등의 문제를 간단하게 마무리 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짚어나간 것도 이 때문이다.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든 장면까지 보여줘가며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책임지지 않고 의심병과 불안증세를 보이는 인조, 그런 인조에게 ‘입안의 혀’처럼 굴어 높은 자리나 차지하려는 기회주의 신하들, 한명씩 인조 곁을 떠나는 인조 브레인들을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백성들의 생명력과 불굴의 의지로 조선 사회는 유지될 수 있었다고 ‘연인’이 말하는 듯하다.

반정공신 심기원이 몰래 사병을 훈련시킨다며 역모죄를 씌워 처단하는 인조를 본 유학자 장철이 제자인 성균관 유생 연준(이학주)에게 “우리 전하가 겁에 질렸다. 겁에 질린 자는 잔인해진다”고 했다.

왕과 몇몇 신하, 소위 지도층의 판단미스로 전쟁이 일어나도 어느 정도 만회할 시간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것도 통한을 금할 수 없다. ‘연인’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징비’(懲毖)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그 속에서 장현과 길채의 이야기는 단순히 멜로를 넘어 인간성으로까지 확장한다. 장현은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에 합류해 오랑캐들을 물리친다. 오늘날 같으면 정부로부터 은관훈장 정도는 받을만한데, 장현은 숨어버린다. 청나라에서 속환되는 조선 포로들을 구하는 데도 장현은 큰 공을 세웠지만 역도의 수괴라는 누명을 쓰고 죽음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구원무 종사관(지승현)은 공을 별로 세우지 않고도 종 6품 종사관이 된다. 이렇게 ‘연인’은 인사문제를 간접적으로 지적한다. 구 종사관은 아내였던 길채가 생명을 보전하기 힘든 위기에 처했음에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 장가를 간다.

구 종사관은 아내를 찾아나설 때부터 장현이 길채를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 의심부터 했다. 청에 도착해서도 “조선에서 잡혀 온 여인은 이미 볼 것 다 봤을 것”이라는 현지 관리자의 말을 듣고 부인 구하는 일을 포기하고 돌아와버렸다.

반면 장현은 홍타이지의 딸인 각화(이청아)의 유혹과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거부하고 오로지 길채에게만 헌신한다. 길채를 만나기 위해서는 만신창이가 되는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을 보면 눈물이 나고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다.

그럼 장현이 이토록 ‘가난한 길채, 돈 많은 길채. 발칙한 길채, 유순한 길채. 날 사랑하지 않는 길채, 날 사랑하는 길채’를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길채만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랑하는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본성, 예(禮)와 의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현의 아버지로 유학자 장철(문성근)을 설정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장철은 한번 원칙과 소신을 세우면 절대 꺾이지 않는다. 그러니 인조에게 “전하, 저들은 사병이 아닌, 우리의 백성이고 포로입니다. 내수사에 억류된 포로들을 금부로 내보내소서-”라고 목숨을 걸고 상소한다. 이런 DNA를 물러받고 가르침을 받은 자식이라면 옳은 일에 모든 걸 걸 수 있다.

당시 성리학원리주의자들인 사림(士林)들이 붕당을 형성해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실천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유학자 장철에게서 임진왜란 직전에 활동하며 실천을 강조하는 ‘경의’(敬義) 사상을 설파한 남명 조식 등등 몇몇 선비들이 오버랩된다.

수백억원을 장학금 등으로 기부하고도 몸을 숨기는 ‘어른 김장하’도 그런 학통을 이어받았다. 우리는 지금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뭘 몰라서 일을 잘 못하는 게 아니다. 이장현, 장철, 김장하 같은 분들이 가진 ‘예(禮)와 의(義)’의 정신이 부족해서다. 그래서 원칙이 많이 무너졌다. 이는 수시로 나오는 인사청문회 뉴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장현이 ‘연인’에서 나랏님도 외면한 조선포로를 구하기 위해 홀로 나서고, 오로지 유길채에게만 헌신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장현은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와의 친했던 관계가 끊어져도 심양에 남겨둔 포로들과의 약속과 양천(최무성) 형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떠났다.

물론 그런 이장현을 알아보고, 이 한 사내를 진심으로 연모하면서, 능군리 애기씨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변화하는 유길채(안은진)도 대단한 인물이다. 유길채의 사랑은 가시밭길, 천신만고 ‘3D’ 그 자체지만 오히려 밝은 미소로 이장현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

남녀간 사랑중 가장 멋있는 게 계산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 사랑은 많이 없어졌다. ‘나는 솔로’ 등 연애 프로그램에서 남녀의 첫인상 선택과 직업, 신상을 공개한 후 선택이 많이 달라진다.(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장현과 길채의 사랑은 가히 으뜸이라 할만하다.

많은 배우들이 캐릭터를 잘 표현했지만, 특히 남궁민과 안은진은 열연을 펼쳐 ‘연인’에 대한 몰입도를 크게 높여주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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