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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안 주면 시너 뿌린다” 개인 불법추심도 기승 [불황의 그늘]
전문가 “폭행·협박 처벌 강화해야”

#. “돈 주지 않으면, 신나(시너)를 뿌리든가 인분을 뿌리겠다.” 2021년 지인에게 800만원을 빌려준 A씨는 이듬해 5월, 상환을 독촉하기 위해 피해자 남편이 운영하는 매장을 찾아가 1시간가량 난동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매장에 있던 손님 2명이 급히 도망을 쳤다.

#. “아줌마 몇 시에 들어와요? 난 준비 됐는데....” 올초 직장동료에 160만원을 빌려준 B씨는 이를 돌려받지 못하자, 동료의 어머니의 집앞에 찾아갔다. B씨는 동료 어머니에게 주거지 사진과 함께 협박성 문자를 보낸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채권추심법 12조는 채무자 또는 가족 등 관계인에게 채권추심을 강요하는 행위에 대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경제 불황의 그늘이 이어지면서 개인 간 채무관계를 둘러싼 범죄도 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불법 사채업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가운데, 전문가는 개인이 저지르는 불법추심 처벌 수위 역시 높여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추심 범죄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14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들어 8월까지 발생한 불법추심은 513건으로, 이미 지난해(558건) 수치에 근접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266건 ▷2019년 373건 ▷2020년 397건 ▷2021년 384건이다. 5년(2018~2022년) 새 증가율은 106%에 달한다.

여기에는 흔히 알려진 불법 사채업체 측의 조직적인 추심뿐 아니라 개인 간 분쟁에서 발생하는 사례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게 관련 기관 전문가의 이야기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불황이 이어지는 데다 은행권 대출금리가 오르며 대출을 받기도 어려워지면서 개인 간 채권관계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폭행 같은 범죄를 동원한 불법추심 상담사례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가 서민을 타깃으로 삼는 불법사채업체 근절을 선포한 가운데, 개인 간에 발생하는 불법추심 역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대출이 문턱이 높아지며 늘어난 개인 간 채권관계가 각종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럴드경제가 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을 통해 살펴본 사례들에 따르면 개인이 저지른 불법추심에 대한 처벌 수준은 높지 않았다. 피해자가 운영하는 매장에 찾아 협박을 한 A씨는 지난 8월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이밖에도 대부분이 벌금 등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C씨는 2018년 지인에게 8000만원을 빌려준 이후, 피해자로부터 원금과 이자를 받아오던 중 상환이 늦어지자 2년에 걸쳐 수차례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며 “그냥 다음달부터 880만원씩 이자 찍어”라고 요구했다. C씨가 이 혐의로 받은 처분은 벌금 400만원이다.

전문가는 개인의 불법추심 역시 불법업체와 동일선상에 두고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채권추심법은 폭행·협박 등을 동원해 추심을 시도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양형 기준은 이보다 낮다. 법무부 양형위원회 기준을 보면 채권추심법 기본 형량을 징역 4~10월로 두고 폭행 정도가 미약하거나 심신미약자일 경우 감경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약탈적 범죄에 엄단하는 것과 같은 논리를 개인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9일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불법사채업과 관련해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불법사채로 얻은) 범죄 수익은 차명 재산까지 모조리 추적해 환수하라”고 주문했다. 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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