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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로 생활 되겠나”…지역 대학선 1년치 월세 한번에 ‘연세’ 관행
지역 대학가, ‘깔세’ 일종인 ‘연(年)세’ 굳어져
공실률 최소화 위한 임대인 고육지책
지역의 대학가 인근에서는 깔세의 일종인 연(年)세가 관행으로 통한다고 한다. [독자 제공]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17~18평 짜리 원룸을 2년에 전세 8500만 원에 계약했어요. 월세를 아끼려고요. 근데 학교 근처 전세 매물이 6~7개 밖에 안 나와요. ‘연(年)세’로 내면 방이 10~12배 이상 많아지거든요. 전세 구하는 데 경쟁이 심했어요.” (대전대 재학생 23세 박형준 씨)

지역의 대학가 인근 원룸에서는 깔세의 일종인 연(年)세 관행이 자리 잡힌 지 오래다. 깔세란 보증금이나 권리금 없이 몇 개월 치 월세를 한 번에 내고 계약하는 방식이다. 대학가 인근에서 연세는 통상 10개월 단위로 끊어진다고 한다. 대학가 근처라도 직장인 등의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다르게 대학생이 아니면 세입자가 없어 공실이 발생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지역의 대학가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연세가 아니면 매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대전광역시 대전대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보증금 30만~50만 원에 신축 원룸은 10개월 계약에 600만~700만 원 사이로 형성된다”며 “보통 대학생들이 개강을 하는 3월부터 12월까지 학생들 스케줄에 맞춰 10개월간 계약을 한다”고 했다. 다음 해 재계약을 하면 방학기간인 1월, 2월을 공짜로 살게 해주는 곳도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 원광대, 군산시 군산대 인근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연세가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직장인 등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다르게 대학생 외 다른 유형의 세입자가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실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세가 발달된 것이다. 원광대학교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최모(39) 씨는 “다른 지역의 경우 대학교 인근에 일자리가 있어 세입자 중에서 직장인도 섞여 있어 공실률이 적지만, 원광대 인근은 98%가 학생”이라며 “그마저도 방학 때는 대학가에 남아있지 않고 집으로 내려가다 보니 연세가 아니면 공실이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부분 노후 자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임대업을 하는 집주인의 상황도 이와 맞아 떨어졌다. 원광대 인근에서 임대업을 하는 60대 중반 김모 씨는 “학생들이다 보니까 월세를 밀리는 경우가 있는데, 최대 1년까지도 밀려봤다”며 “1년 밀리면 300만 원을 못 받는 셈인데, 연체 부담이 없으니까 연세를 선호한다”고 했다.

목돈을 받아봤자 쓸 곳이 없다는 임대인의 고충도 있다. 군산대 인근에서 임대를 하는 60대 B 씨는 “만약에 전세를 받더라도 은행 예금에 넣는 게 다 인데, 금리가 높을 땐 모르겠지만 2% 정도 일 때는 한 달에 10만 원 꼴 밖에 안 된다”며 “연세를 받으면 한 집 당 1년에 300만 원을 받는데, 먹고 살기 위해서 임대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수익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전대 인근 한 부동산. 연세를 받는다고 적힌 매물이 다수다. [독자 제공]

대학생들은 대부분 연세에 만족한다고 했다. 저렴한 보증금 때문이다. 보증금 30에 연세 300만 원을 내고 4평 원룸에 살고 있다는 대전대생 권우진(24) 씨는 “보증금이 커지는 경우 분쟁이 있을 수 있는데, 보증금이 저렴하다 보니 분쟁 걱정도 없고 목돈을 마련하지 않아도 돼서 부담이 적다”고 했다.

반면 선택권이 적어진다는 단점도 있다고 한다. 대전대생 김다혁(19) 씨는 “10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관행이 굳어져, 방학 때는 거주하지 않으려고 6개월 단위로 짧게 계약을 하는 경우 안 해 주려는 집주인이 많다”고 했다.

보증금이 저렴한 탓에 월세보다 연세가 더 비싸지는 경우도 있다. 연세를 월세보다 월 4만 원 꼴로 비싸게 받고 있는 대전대 인근 집주인 C 씨는 “아무래도 연세보다 월세가 보증금이 비싸다 보니 연세를 월세보다 비싸게 받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일수록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연세가 퍼지게 된 배경으로 꼽았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도권의 경우 세입자를 구하기 쉬운 반면 지역은 사람이 없어 방이 잘 안 나가다 보니 한 달, 두 달 깔세를 놓다가 기간이 1년으로 길어진 것 같다”고 했다. 연세와 같은 깔세가 불황의 아이콘이라는 설명도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경기가 좋으면 계약이 끝나서 세입자가 나가더라도 금방 구할 수 있을텐데, 지역 대학가 원룸의 경우 사람이 없다 보니 집주인도 돈에 쫓기니까 연세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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