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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당은 되고, 경기장은 안 되고?…헛갈리는 정부의 일회용품 줄이기 정책[세종백블]
종이컵, 규제에서 제외…플라스틱 제품 계도기간 무기한 연장
24일부터 운동장·공연장 플라스틱 제품 사용 금지
소상공인·자영업자 “환영” vs 환경단체 “산업계 입장만 대변”
[123RF]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정부가 일회용 제품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후폭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는 식당이나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를 철회하고, 식품접객업 등에서의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 금지에 대해선 계도 기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했다.

지난 7일 환경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일회용품 소상공인 부담 해소하며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감량’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차관이 직접 브리핑까지 진행했다.

이날 발표 내용은 정부가 사실상 일회용품 줄이기 정책을 포기한 것과 다름 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소상공인 부담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1년 계도기간에도 공동체 내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또 하나 짐을 지우는 건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설명에는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 등을 감안하면 일회용품 규제 조치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나 식당 종이컵 사용 규제 방침이 정해진 건 2019년 11월. 이미 4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만 호소했다. 종이빨대 생산 기업 등 이번 정책 방향 선회로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책금융, 우대금리 제공 등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2019년 11월 발표한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에서 제시한 2018년 기준 연간 일회용컵 사용량은 294억개.

당시 정부는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고, 컵 보증금제를 도입해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 일회용컵 사용량을 84억개에서 55억개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식당 등에서 종이컵 사용 금지와 컵 보증금제가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시행됐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커피나 음료를 일회용컵에 담아 판매할 때 소비자로부터 300원의 보증금을 받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

[123RF]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보증금제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 중인 광역자치단체는 세종특별자치시와 제주도특별자치도 2곳. 특히 관광객으로 일회용품 수요가 많았던 제주도 내에서는 애초 보증금제에 반대해온 일부 매장에서 ‘새로운 정책 시행 시까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며 ‘사용하신 일회용컵을 분리수거해 버리라’는 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제주도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속해서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전국적인 확대 시행이 미뤄지자 시범사업을 향후 어떻게 정착시켜 갈지를 놓고 고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식당과 카페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에 대한 규제가 각각 영구적·잠정적으로 풀린 셈이지만, 야구장에서의 플라스틱 응원 용품과 백화점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우산 비닐 등은 예정대로 오는 24일부터 단속 대상이 된다. 편의점에서 봉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행위도 단속 대상이다. 체육시설에서 가수가 공연하는 경우에도 해당 가수가 플라스틱 응원 용품 금지 조치를 지켜야 한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와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규제 완화에 반발하며 플라스틱 생산을 줄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환경회의·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은 “정부는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려면 생산부터 줄여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듣지 않고 산업계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며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와 로드맵을 설정하고 생산을 줄이기 위한 강력한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질타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 문제 때문에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과 관련한 규제를 오래 논의해 왔는데 너무 무책임하다”며 “환경부가 정말 환경부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친환경 정책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며 “어느 정부의 정책이 됐든 신뢰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번 규제 완화가 내년 총선을 겨냥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표를 의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조치가 실제 표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시민의식이 상당 수준으로 올라와 있음을 정부가 고려하지 못했다는 사후평가도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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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백블]은 세종 상주 기자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에 대한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은 물론, 정책의 행간에 담긴 의미, 관가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연재물입니다.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무원들의 소소한 소식까지 전함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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