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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절망 속에서 희망 피워내는 인생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 폴 고갱, 보스턴 미술관) [헤럴드DB]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일까요? 인생의 흐름에서 죽음을 맞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으나 두려움은 피할 수 있답니다. 그게 바로 지혜로운 것이지요. 보는 이를 한층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림입니다.

인생의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은 이 그림은 우리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종교학책이나 철학책의 제목같이 길고 심각한 제목을 가진 이 그림은 고갱 스스로가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하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고갱은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남미의 페루에서 살았습니다. 청년시절에는 선원이 돼 배를 탔고, 30대에는 주식 중개상으로 돈도 제법 모았다지요. 하지만 평생에 걸친 꿈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으니 결국 직장과 가족을 모두 버리고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홀로 떠나버립니다. 거기서 13년을 보내며 죽을 때까지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도 문명과 물질을 초월한 사람이 떠올릴 만한 제목 같지 않습니까? 그림은 제목처럼 세 가지의 내용으로 나누어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맨 오른쪽에 세 명의 젊은 여인이 아기를 데리고 앉아 있지요. 이들은 인생의 출발, 즉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부분에 자리한 사람들은 노동하고 음식을 먹는 등 그야말로 ‘생활’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 중간 부분은 ‘우리는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맨 왼쪽으로 오면 죽음을 앞둔 노파가 시든 표정으로 흰 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흰 새는 모든 인연의 단절을 뜻하는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말이 됩니다. 왼쪽의 뒤편에는 푸른색 신상이 보이는데, 이 이상한 신상은 알 수 없는 이승의 저편, 즉 저승을 상징합니다. 고갱은 후기 인상파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두꺼운 붓 터치와 선명한 색감이 인상파의 특징인데요, 여기에 감정적이고 표현주의적 요소까지 들어 있습니다. 때문에 훗날 야수파나 입체파의 탄생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지요.

동양화와는 달리 서양화는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이동하며 봅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선 왼쪽에 노인이, 오른쪽에 아기가 위치합니다. 마치 죽음에서 생명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하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노인과 청년과 아기가 동등한 무게중심으로 화폭을 채우고 있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이 놀랍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생명의 끝이 헛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탄생과 일상, 그리고 죽음이 자연의 섭리임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우리는 정녕 자연의 섭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걸까요? 고갱은 분명 그렇다고 대답할 테지요. 그러나 현대의학은 새로운 대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바로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사계절’이라는 연작 그림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그림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콘셉트를 나누어 인간의 늙어가는 인생을 순서대로 표현했습니다. 정물화이면서도 초상화인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 그림에서 사계절의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사계절 가운데 ‘봄’은 화사한 봄날에 피어나는 꽃들로 청년의 얼굴을 그리고 있고, 가슴은 연녹색 잎과 싱싱한 풀잎들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여름’은 믿음직한 장년의 남자입니다. 풍성한 과일과 채소로 만들어진 건강한 남성을 보니 태양이 이글거리고 온갖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여름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가을’은 오곡이 무르익는 수확의 계절인 만큼 그림 속 주인공도 중년의 남성입니다. 반면 ‘겨울’의 인물은 껍질이 다 벗겨져 흉측한 고목으로 변해버린 노년의 남성입니다. 추운 날씨에 거적까지 두른 노년의 남성은 침울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흔하게 넘쳐나던 과일과 채소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이런 겨울을 미리 예감하지 못한 회한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피워내지요.

겨울 노인의 모습에서 여러분들은 혹시 희망을 발견하셨나요?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죽은 고목의 가슴이지만 거기에서 무언가 뚫고 뻗어 나온 것이 눈에 띕니다. 그곳에서 탐스럽게 열린 노란 레몬과 오렌지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추운 겨울을 인내하면 반드시 희망의 봄이 다시 찾아온다는 자연의 섭리를 말해주는 것이라 믿는다면,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아르침볼도가 묘사한 사계절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이 우리네 인생도 간단 없이 변화를 거치게 됩니다.

아르침볼도는 이 자연의 섭리를 신기한 정물초상화로 그려 우리에게 삶의 영원한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자연의 순리가 이렇습니다. 청년이 노인이 돼가는 대자연의 순환은 그 누구도 예외이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의 신체도 호르몬의 시계에 맞춰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삶을 봄으로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암담하기 짝이 없는 노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요. 우리에게 다가온 겨울을 을씨년스러운 마음으로 맞이하지 말고, 자연의 섭리를 호르몬의 섭리로 연결해 건강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메바 유글레나 같은 원생동물도 그리고 식물들도 호르몬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호르몬은 불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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