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정부 정책 믿다 전직원 퇴사” 날벼락 맞은 종이빨대업체 [일회용품 규제 완화]
환경부 플라스틱 빨대 사실상 전면허용
업계 “창고 상품 쓰레기 됐다”아연실색
대체품시장 오락가락 정책에 성장 발목
환경부가 돌연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계도 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하면서 종이 빨대 등 대체품 업계는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사진은 가동을 멈춘 종이 빨대 공장. [업체 제공]

“떨리는 가슴 부여잡고 정부 발표만 기다렸는데, 이제 틀렸습니다. 직원 전부 다 퇴사하기로 했어요.”

종이 빨대를 생산하는 A업체 대표 B씨는 목소리가 떨렸다. 8일자로 11명 뿐인 직원이 모두 퇴사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 이후로 발주가 뚝 끊기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한 지도 스무 날을 넘겼던 상황이었다. A씨는 “이미 구매한 종이 빨대를 환불할 수 없느냐는 문의까지 쇄도하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이 업체를 존망의 기로에 세운 건 다름 아닌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다. 카페나 식당 등 식품접객업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금지되면서 대체품으로 종이 빨대가 각광받았다.

그러나 환경부가 돌연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계도 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하면서 종이 빨대 등 대체품 업계는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A업체가 현재 보유한 종이 빨대 재고는 3000만개 가량. 연간 1억~2억개씩 주문하는 대형 카페 프랜차이즈에 맞춰 일 120만개 수준으로 생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B씨는 “플라스틱 빨대 퇴출이 기정사실이었던 지난해만 해도 열흘이면 다 풀릴 양”이라며 “당시엔 종이 빨대가 부족해 공장 앞에 줄을 설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C업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표 D씨는 “창고에 쌓인 종이 빨대 1500만개는 쓰레기가 됐다. 내일부터 당장 이자 낼 돈도 없다”고 토로했다.

하루아침에 종이 빨대의 위상이 급변했다. 플라스틱 빨대는 일회용품 규제 품목 중 하나로, 2021년 11월 24일부터 원칙적으로 사용이 금지됐으나, 계도 대상으로 남아있었다. 지난해 계도 연장이 1년으로 제한되자 카페와 음식점들은 플라스틱 빨대 퇴출 현실화에 발맞춰 대체품 찾기에 나섰다.

당시 환경부에서 플라스틱 대신 매장 내 사용을 허용한 빨대는 쌀·유리·종이·갈대·대나무·스테인레스 등이었다. 특히 종이 빨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으면서 종이 빨대 수요는 급증했다.

하지만 돌연 환경부가 플라스틱 빨대를 사실상 전면 허용하기로 방침을 선회하면서 종이 빨대는 물론, 조금씩 성장하던 대체빨대 시장은 오히려 전보다 악화될 조짐이다.

환경부가 앞세운 가장 큰 명분은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이다. 환경부는 “대체품 가격이 2~4배 비싸 음료 가격이 인상될 수 있으며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플라스틱 빨대 대체품의 산업 육성을 통한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업체 대표 D씨는 “종이 빨대는 개당 13~16원으로 플라스틱 빨대 가격(9~10원)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플라스틱 제품과 친환경 대체품을 가격으로 비교해 판단하는 것 자체가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물론 종이 빨대가 최상의 대안이 아니란 문제제기도 많다. 쉽게 눅눅해져 음료를 빨아들이기 어렵다는 소비자 불만이나, 플라스틱으로 코팅하거나 인체에 유해한 접착제를 사용하는 종이 빨대는 오히려 환경오염이 크다는 연구도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일선 현장에선 이번 환경부 발표 이후로 종이 빨대를 포함, 대체품 생산 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사실상 허용된 만큼 가격을 합리화하고 품질을 개선할 동력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또 오락가락한 정부 정책은 향후 기업들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각인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계도 기간 종료에 맞춰 오히려 의욕적으로 시장 공략을 준비할 때 정부가 하루아침에 시장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라며 “누가 이런 상황에서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환경부 관계자는 “종이 빨대 업체들이 영세한 곳부터 규모가 다양하다 보니 별도로 (연락하지) 못했다”며 “플라스틱 빨대 대체로 종이 빨대 사용을 권장한 건 아니다”고 헸다. 주소현 기자

address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