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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스 연광철 “시골 동네 거닐며 부르던 ‘고향의봄’…온전한 나의 이야기”
첫 한국 가곡 ‘고향의 봄’ 음반 발매
英·日·獨 등 3개 국어 번역…전세계 공개
첫 한국 가곡 음반을 낸 연광철 [풍월당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아무런 반주도 없이, 담담하게 읊조리던 음성에 옅은 떨림이 내려앉는다. 커다란 콘서트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58)이 모든 기교를 내려놓고 들려준 ‘고향의 봄’. 그의 목소리엔 오래 전 시골길을 뛰어놀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제 고향이 충주 산골이에요. 전기도 들지 않는 시골에 열세살 때까지 살았어요. ‘고향의 봄’은 어린시절 시골길을 다니며 늘 흥얼거리던 곡이었어요. 이 곡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이야기예요.”

베이스 연광철이 첫 한국 가곡 음반을 냈다. 최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연광철은 “사실 한국 가곡을 부르는 마음이 참 무거웠다”며 “30년 동안 외국에서 활동하며 그들의 작품과 음악, 문화 속에 살면서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사실 나의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겪은 긴 시간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연광철은 한국 성악계가 낳은 최고의 신화다. 그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지만,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궁정 가수’ 칭호를 받았다. 충북 청주공고를 나와 석 달간 독학으로 공부해 청주대 음대를 갔고, 1993년 오페랄리아 국제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30여년 간 독일을 비롯한 세계 유수 오페라 극장의 주역으로 섰으나 그의 가슴 한켠엔 언제나 ‘이방인’이란 그림자가 있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으면 사람마다 떠올리는 그림은 다를 거예요. 제가 산골에 살면서 바라본 보름달과 독일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길의 허허벌판에서 본 달은 같은 달이지만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전 오랜 시간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전달하려 노력했던 이방인이자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항상 내가 전달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50대 후반이 돼 부른 우리 가곡은 그래서인지 연광철에게 남다르다. 그는 “이번엔 온전히 한국인으로 내가 본 그 달빛과 시골길을 떠올리며 노래할 수 있었다”며 “우리 가곡을 부를 땐, 정말 온전히 내 것을 부르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첫 한국 가곡 음반을 낸 연광철 [풍월당 제공]

음반에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내에서 사랑 받은 ‘고향의 봄’, ‘비목’, ‘청산에 살리라’, ‘그대 있음에’ 등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가곡들이 담겼다. 연광철이 직접 선곡했다. 그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배운 가장 기본이 되는 곡을 담았다”고 전했다. 작곡가 김택수가 쓴 ‘산속에서’(2023)와 같은 신작 가곡도 실었다.

서양의 언어로 노래하던 연광철은 우리 가곡을 부르며 한국말의 아름다움도 새삼 알게 됐다. 그는 “우리나라 말은 굉장히 노래하기 좋은 언어”라며 “열린 모음들로 서양의 모든 언어를 발음할 수 있어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녹음했다”고 말했다. 연주는 피아니스트 신미정이 했다.

연광철의 ‘고향의 봄’은 클래식 음반사인 풍월당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낸 첫 기획 음반으로, 유니버설뮤직코리아가 유통해 전세계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한국의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980308’이 음반의 표지로 자리했다. 영어, 일어, 독일어 등 3개 국어로 번역해 함께 담기다 보니 음반이 한 권의 책처럼 두툼해졌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고민하던 중 한국인의 정서를 세계에 알린 박서보 선생님을 떠올렸다”며 “생전 만나뵈었는데, 그 때도 선을 긋고 계셨다.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음반의 표지로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서보 선생님 생전에 리마스터링 직전의 음반을 보내드렸는데 아마도 들어보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광철은 앨범 발매와 함께 다음 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음반 발매 기념 연주회를 연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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