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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민수 “韓 음악 교육, 세계가 관심…임윤찬, 인연 될 것 같았다”
‘임윤찬 스승’ 피아니스트 손민수
음악가의 열정ㆍ교육자의 철학 공존
“세계가 관심 가지는 韓 음악 교육…
인구 대비 뛰어난 음악가 많은 나라”
피아노 앞에 앉은 손민수가 보여주는 행보엔 예술가의 열정과 교육자로의 철학이 공존한다. 손민수라는 음악가는 이 두 가지를 떼어 놓고는 온전한 설명이 어렵다 [포항음악제 제공]

[헤럴드경제(포항)=고승희 기자] 그 많은 음표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 건반 위에 오른 두 개의 손은 언제나 진중하고 진실했다. 세 살 때 피아노를 만난 이후 40년 넘게 음악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그는 매 무대마다 열정이 끊이지 않는 청년처럼 배우고, 감동한다. 지난 3일 포항음악제의 개막 연주회에서도 그랬다. 35년 만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무대에 선 첼리스트 톨레이프 테덴을 비롯해 호르니스트 김홍박,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김영욱 등 실력파 연주자들이 모인 포항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연주였다.

연주회를 끝내고 만난 손민수는 “너무나 놀랍고 새롭게 숨 쉴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이날 연주는 악단의 단원들이 모두 서서 연주하는 ‘스탠딩 오케스트라’였다는 점에서 보다 특별했다.

“오케스트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단원 모두 각자의 아이디어를 모아 하나로 만들어간다는 것에 굉장히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스탠딩으로 연주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솔로이스트로 연주했을 때의 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피아노 앞에 앉은 손민수가 보여주는 행보엔 예술가의 열정과 교육자로의 철학이 공존한다. 손민수라는 음악가는 이 두 가지를 떼어 놓고는 온전한 설명이 어렵다. 누군가에겐 최고의 ‘클래식 스타’인 ‘임윤찬의 스승’으로 더 익숙할 수 있으나, 예술가로 가져온 음악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지금의 ‘음악 교육자’ 손민수를 이끌었다. 지난 9월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부임,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피아니스트 손민수를 만났다.

피아니스트 손민수 [포항음악제 제공]
韓 음악가 넘어 교육도 관심…“세계가 스카우트”

“한국 음악 교육에 대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 사람으로서 굉장히 자랑스럽고 신기해요.”

피아니스트 손민수는 물론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59·인디애나음악원), 피아니스트 최희연(55·피바디음악원)까지…. 요즘 K-클래식 교육을 향한 세계 음악계의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임윤찬을 비롯한 재능있는 차세대 음악가들을 길러낸 손민수가 그의 모교이기도 한 뉴잉글랜드음악원으로 거취를 옮긴 것은 국내외에서 화제였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은 수십년부터 탁월한 재능을 갖춘 ‘소수의 연주자’를 중심으로 주목받았을 뿐, 지금에 이르게 한 음악 교육과 시스템이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없었다.

세계의 시선이 달라진 것은 지난 몇 년 사이다.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임윤찬(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하영(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양인모(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가 세계 유수 기악 콩쿠르의 우승자로 배출됐다. 올해는 바리톤 김태한(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지휘자 윤한결(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첼리스트 이영은·테너 손정훈(차이콥스키 콩쿠르) 등의 우승자가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국제 무대의 관심이 ‘콩쿠르 강국’의 영재 음악가에서 교육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교육자들이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손민수 교수를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피아니스트 최희연 등 한국의 교육자도 세계에서 스카우트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기분 좋은 일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음악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손민수는 가장 주목받는 교육자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지난 7월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2023 KNSO국제아카데미’의 ‘마지막 수업’ 격인 협연 무대를 통해 5대1의 경쟁률을 뚫고 19개국에서 모인 52명의 연주자와 만났다. 당시 아카데미에 참여한 베네수엘라 출신 앙헬 미구엘(30·첼로)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 음악가들을 워낙 많이 보며, 수준 높은 음악을 듣다 보니 한국 음악 교육이 궁금해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포항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악장인 토비아스 펠트만(32·독일 라이프치히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 음대 교수)도 “인구 대비 뛰어난 음악가가 제일 많은 나라로 한국”을 꼽기도 했다.

손민수는 “외국에서 한국의 음악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한국 음악가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한국 음악 교육의 강점으로 “‘엄격한 수련(discipline)’, ‘부모의 헌신’,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을 꼽는다.

“한국 음악가들은 어려서부터 악기를 배우며 몸에 밴 훈육으로 흔들리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꽃 피워 나가요. 이 세 가지가 더해지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죠. 흥이 많은 한국인의 DNA도 무관치 않고요.”

피아니스트 임윤찬 [유니버설뮤직 제공]
“임윤찬은 나와 비슷한 성향…인연 될 것 같았다”

손민수의 음악관은 그의 교육관이 돼 많은 제자들에게 이어진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는 그만의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선생의 역할은 그 실마리를 함께 발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나가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교육자 손민수가 가지는 최근의 고민과 우려는 달라진 세대가 접하는 음악 환경이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발매되는 음반은 물론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무수히 많은 음악에 노출된 것은 자라나는 음악가들에겐 일장일단이 있어서다. 손민수는 “학생들은 이미 20~30가지 버전의 연주곡을 접한 뒤 수업에 온다”며 “각각의 연주를 잘 소화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좋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의 연주에 귀가 파묻혀 자기 색깔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모든 연주를 듣고 온전히 소화하든지, 아예 듣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그의 교육관이 고스란히 묻어난 연주자는 단연 임윤찬이다. 임윤찬은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른 음악을 많이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좋았던 연주를 따라하게 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며 “과거의 음악가들은 인터넷이 안되니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악보에서 자기 것을 찾고, 자신의 생각에 깊이 들어가 더 독창적인 음악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임윤찬이 무작정 많은 음악을 듣기 보단, 인문학적 교양을 쌓으며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리스트 ‘순례의 해’ 중 이탈리아 제7곡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의 환상곡’(단테 소나타)의 연주를 위해 ‘신곡’을 탐독하기도 했다.

임윤찬을 직접 뽑아 한예종 예술영재교육원 시절부터 지도한 손민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윤찬이는) 나와 성향도 비슷해 인연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임윤찬 역시 스승을 따라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편입했다. 손민수는 “윤찬이는 연주 여행이 많아 조금 더 유연하게 스케줄을 관리하고 있다. 환경이 달라진다고 해서 음악을 공부하고 임하는 것이 달라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포항음악제를 마친 손민수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다시 23일 한국을 찾는다. 이날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광주에서 독주회를 통해 새로운 사색과 탐구를 이어간다. 2017년부터 5년간 베토벤에 집중한 그는, 지난해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에 몰두했다. 올해 그의 선택은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Études-Tableaux)’이다. 미국에선 NEC 총장을 지낸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의 85세 생일을 기념,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는 무대도 예정돼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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