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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전쟁과 오판

역사를 보면 전쟁은 언제나 오판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판에 의해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걸어간 경우도 있고, 오판 때문에 치명적 기습을 당한 경우도 있다. 때로는 상대를 과소평가해 전쟁을 막지 못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위협을 과대평가해 두려움의 포로가 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전쟁이 터진 경우도 있다.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이 하마스로부터 충격적 기습을 당한 것은 명백한 ‘정보 실패’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모사드(해외)와 신베트(국내)가 하마스의 전면전 도발을 그 직전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 놀랍다.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이스라엘 8200부대가 1년 전부터 하마스 무전기에 대한 도청을 중단한 것이 잘못으로 지적되기도 하고,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인간정보에 허점이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저지른 치명적 실수는 더 넓게 보면 하마스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오판에 있다.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부터 핵심 참모들까지 모두 하마스가 전면적 도발을 하지 않을 거라고 과소평가했다. 이스라엘에 비해 절대 열세에 있는 하마스가 침공이라는 무리수를 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언제나 사건이 터지고 나면 그제야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마스의 도발도 마찬가지다. 15년 동안의 봉쇄로 ‘지붕 없는 감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생각한다면, 가자지구에서 문제가 터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과격한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평온한 국경’ 상태를 유지하는 유화책으로 돌아섰다는 판단도 너무나 낙관적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사우디의 평화협상 동향도 하마스의 임계점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화해 무드가 계속될 경우 하마스 조직의 존재이유가 위협받는다고 본 것이다.

나치 독일의 팽창 기도를 좌절시키지 못해 발생한 세계2차대전은 전형적인 ‘억제의 실패’ 사례다.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하는 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하는 우를 범했다. 히틀러가 거기서 멈출 것으로 믿었고, 이로써 유럽의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폴란드에 대한 전면 침공으로 체임벌린의 양보에 답했고, 이때부터 외교에서 유화정책은 답습하지 말아야 할 더러운 표현이 됐다. 2023년 하마스 기습을 허용한 실수처럼 1938년 유럽에선 독일의 확고한 의지를 과소평가했던 과오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세계1차대전은 위협의 과대평가와 강경 대응이 ‘의도하지 않은 전쟁’을 촉발한 사례에 속한다. 빌헬름 2세가 통치하는 신흥 강대국 독일이 긴장을 조성하고 있었지만 1914년 당시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을 원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었다. 사라예보 암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응징, 즉 제3차 발칸전쟁 정도가 불가피한 충돌 규모였다. 그렇다면 왜 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는 대전쟁이 발발한 것일까? 그건 상대의 의도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과 힘을 통해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전면전으로 몰아갔던 데 이유가 있다. 위협에 대한 과소평가와 유화책이 2차 대전의 원인이라면 1차대전에선 과대평가와 과잉 대응이 오히려 문제였던 것이다.

태평양전쟁도 기습과 정보 실패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1941년 12월 7일, 나른한 일요일 오전 진주만의 미 태평양함대는 무방비 상태에서 일본에 기습을 허용했다. 16척의 함정이 격침됐고, 항공기 164대가 대파됐으며 인명 피해도 사망자만 2403명에 이르렀다. 당시 미국은 대서양의 전투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태평양 방면에서 일본과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막거나 최소한 늦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무성이 금수조치를 취하면서 일본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려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팀슨 전쟁성 장관, 애치슨 국무성 차관보 같은 대일 강경론자들은 일본을 과소평가하며 전면적 석유 금수조치를 밀어붙였다. 자원과 영토 등 모든 국력 면에서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일본이 자살적 행동을 감히 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에 처한 국가는 절박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석유가 없으면 어차피 일본은 오래 버틸 수 없었고, 그럴 바에야 위험한 도박에 국가의 운명을 걸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진주만 기습은 ‘예방 전쟁’의 전형적 사례였다.

최근 9·19 군사합의 폐기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특히 하마스에 기습을 허용한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가 폐지론을 자극하고 있다. 9·19 합의가 규정한 비행금지구역이 정찰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전술적 정보 판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대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처다. 모든 전쟁은 제각각의 정보 실패, 전략 상황 오판, 그리고 정책 실패의 산물이다. 어느 하나의 사례가 다른 상황에 대한 처방이 될 수는 없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교훈이 정보 실패라는 좁은 관점에만 머무르기보다 한반도 전략 상황 오판과 대북 정책의 실패를 경계하는 데까지 확장됐으면 하는 것이 중동의 비극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전 국방부 기조실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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