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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출산율은 바닥인가? [박세환의 빡센경제]
노동시장 내 성별 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로이터]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합계출산율 하락세가 예상보다 가파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이 올해 2분기 0.7명까지 떨어졌다. 통계 작성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년 동기보다 0.05명 줄었으며 전분기(0.81명)보다 0.11명 감소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04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6년 동안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OECD 회원국 38개 나라 중 우리나라를 빼고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건 스페인이다. 그런데 스페인도 1명이 넘는 1.16명이니, 유일한 0명대이면서 가장 낮은 나라는 우리나라다. 미국의 한 명예교수가 한국 출산율 수치를 듣고 머리를 부여잡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수준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의 바닥일까?

올해 합계출산율 0.7명도 위태로운데 내년에는 더 떨어져 0.6명대일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은 3년 전만 해도 내년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바닥을 찍고 내후년부터 다시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금 추세라면 출산율 반등은 커녕 바닥도 알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통계청 조사에서 지난해 청년 3명 중 1명만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실제 결혼을 안 하는 비율도 크게 늘었는데 25세부터 49세까지 남성 중 미혼 비율은 10년 전만 해도 35%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 47.1%까지 늘어났다. 결혼적령기 남성 중 절반이 독신인 셈이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유를 보면 ‘경제적 불안정’이 가장 많다.

남성 기준으로 소득이 많을수록 혼인 경험 비율이 올라가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적어지면 노동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게 되고, 급격한 고령화로 은퇴하는 사람이 늘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대에 0%대로 추락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저출산이 인구문제뿐 아니라 국가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노벨경제학상 클로디아 골딘 교수의 경고

노동시장 내 성별 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Claudia Goldin)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한국의 기업문화가 세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골딘 교수는 “20세기 후반 한국처럼 빠른 경제 변화를 겪은 나라는 드물 것”이라면서 “노동시장은 이런 변화를 빠르게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세대와 남성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변화가 단시간에 이뤄지긴 어렵다”면서 “기존 세대, 그들의 딸보다는 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골딘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저출산과 남녀 성별 임금격차가 OECD 회원국 중 꼴찌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수세기 동안 여성의 소득과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여성 소득과 노동시장 참여의 변화 원인, 남아 있는 성별 격차의 주요 원인을 밝혀내는 데에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그의 연구는 여성의 경제적 참여와 관련 정책,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골딘 교수는 주로 역사적 고찰을 통해 현재 이슈들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 성별 소득 격차, 여성 노동력, 소득불평등, 기술 변화, 교육, 이민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왔다. 국내에도 출간된 ‘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이라는 골딘 교수의 저서는 그가 평생 연구해온 성별 소득 격차라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면서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 따르면 20세기부터 여성의 교육 수준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에서 이제 남성보다 높은 수준에 이른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골딘 교수는 이런 여성의 노동 참여 확대 요인으로 ‘피임’이 경력 연장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여성 고용률의 상승에도 여성과 남성 간 임금 격차는 오랫동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교육과 직업 선택의 차이로 설명됐지만 골딘 교수는 같은 직업인 여성 간에도 차이가 발생한다면서, 그 원인을 첫아이 출생에서 찾았다. 여성이 직장 일에 몰두하는 데에 육아가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골딘 교수는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남녀 사이에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요인을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로 꼽았다.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서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일자리에 주로 남성이 남고, 여성은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 사무실을 떠날 수 있는 유연한 일자리(일정 조정이 자유롭고 보수는 적은)에 머무는 ‘분업’을 하게 되면서 소득 격차가 커진다는 설명이다.

골딘 교수는 지난 한 세기간 미국 대졸 여성을 시기별로 ▷집단 1 : 가정 또는 커리어(대학졸업 연도 1900~1920년) ▷집단 2 : 일자리, 그다음에 가정(1920~1945년) ▷집단 3 :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1945~1965년) ▷집단 4 : 커리어, 그다음에 가정(1965~1978년) ▷집단 5 : 커리어와 가정 모두(1978~2000년) 등 다섯 개 집단으로 나눠 분석했다. 성별 소득 격차를 추적한 후 소득 격차의 3분의 2가 남녀 간 직업 차이가 아닌 같은 직업 안에서 발생하고, 주요 요인이 ‘출산’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노벨위원회가 여성 노동시장 연구에 대해 높이 평가한 것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성 노동시장의 정확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야코브 스벤손 노벨경제학상 선정위원장은 “노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에 중요하다”면서 “클로디아 골딘의 획기적인 연구 덕분에 우리는 이제 근본적인 요인들과 미래에 해결해야 할 장벽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의 이미지컷
영화 ‘팟 제너레이션’에 담긴 직장여성의 장애물


실제로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일자리와 커리어의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임신한 여성은 신체와 심리 변화를 겪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사회적 입지마저 흔들릴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들은 임신·출산의 과정을 건너뛰고 어딘가에서 ‘짠’하고 아이가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팟 제너레이션’(감독 시비 바르트)은 일하는 여성에 있어 임신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뤄 관심을 끈다.

주인공 레이철(에밀리아 클라크 분)은 거대 기술기업 페가수스에서 인정받는 직원이다. 식물학자로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남편 앨비(추이텔 에지오포 분)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레이철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다. 중요한 승진을 앞두고 상사가 그녀를 불러 “가족을 늘릴 계획이 있느냐”고 물은 것. 상사는 “올해 잘하고 있는데 추진력을 잃으면 참 유감일 것 같다”며 자회사인 ‘자궁센터’에 계약금을 내주는 회사 특전을 소개한다. 임신과 출산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지 말고 달걀 모양 인공 자궁인 ‘팟’을 통해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 남편 앨비는 이에 반대한다. 하지만 “수천년간 출산의 고통을 여자 혼자 떠안았고, 임신 중 나타나는 증상은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돼왔다. 이젠 멈춰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설득에 결국 ‘팟 아기’를 낳기로 한다.

앨비는 의외로 ‘팟’과 자연스레 교감을 시작한다. 끈을 이용해 팟을 배에 메고 다니면서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한다. 괴로운 건 레이철이다. 팟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아이와 남편에게서 소외감을 느끼고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진다.

‘팟 제너레이션’은 ‘아이를 알에서 키워 낳을 수 있다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어떻게 바뀔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영화다. 아이를 낳는 일이 남녀가 동등하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이 되면서 전통적인 성(性) 역할이 전복되는 점이 흥미롭다. 임신과 출산,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힘 잃는 여성·가족 정책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여성가족부 기능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면서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는 것으로 돼 있다. 행안부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이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교섭본부와 같이 장관과 차관의 중간 위상과 예우를 받는 독립된 본부라고 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때다. 2022년 한국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2021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젠더격차지수(GGI)는 156개국 중 102위다. 2020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4973명 중 81.4%가 여성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합계출산율이 16년 동안 OECD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도 예산안에서 성평등·청소년 정책 예산은 쪼그라들었다. 정부가 8월 의결한 여가부 예산 중 양성평등 지원예산은 2407억원으로, 2.5% 줄었다. 청소년 정책은 전년 대비 6.9%가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성인지 교육사업과 청소년 근로권익보호사업 등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 조직을 어떤 형식으로 재편하든 여성·가족·청소년 정책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가족·청소년 정책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을 위한 정책으로 총 280조원을 썼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선거를 위한 선심성은 아니었는지,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과 고민이 동반됐는지는 다시 물어야 한다.

정부는 골딘 교수가 지적한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출산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법과 기존 세대·남성의 인식 변화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 출산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정책을 우선으로 펼쳐야만 내리막을 타고 있는 합계출산율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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