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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현대차 연결 해외에 맡길 수 없죠” 틈새 노리는 한국의 팹리스들 [K-파운드리가 미래다④]
팹리스 업계 화두로 떠오른 엣지 디바이스 NPU
고비용·초고성능 GPU 아닌 저전력·저비용 앞세워
향후 활용처 넓어질 NPU 기술 선점 공략
박재홍(왼쪽) 보스반도체 대표와 짐 켈러(오른쪽) 텐스토렌트 대표. [보스반도체 제공]

[헤럴드경제=김민지·김지헌 기자] “짐 켈러(텐스토렌트 CEO) 대표랑 예전부터 잘 알고 지냈죠. 우리는 신경망처리장치(NPU) 설계자산(IP)이 필요하니까 올 초에 연락해서 같이 협력해보자 했는데, 잘 된 거죠.”(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체할 제품을 만드는 건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수요가 커질 가능성이 높은, 일종의 ‘틈새 시장’인 엣지 디바이스 관련 NPU를 공략하는 겁니다. 엔비디아 GPU보다 훨씬 낮은 전력·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는 기술을 갖췄으니까요.”(김녹원 딥엑스 대표)

최근 한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계의 최대 화두는 엣지 디바이스 NPU다. 엣지 디바이스란 PC, 가전,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IT기기 등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포괄한다. 불모지와 다름 없는 국내 팹리스 업계가 기술로서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블루오션’ 시장으로 꼽힌다.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AI 데이터센터 관련 GPU보다 낮은 비용과 전력을 요구하며, NPU를 필요로 하는 제품이 많아 확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은 팹리스가 국가산업의 전략지 요충지라고 평가한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글로벌 톱급의 완성품(셋트) 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그 제품들 안에 탑재되는 AI 반도체 기술은 국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공백’으로 남아있는 팹리스 업계에서 성공 사례를 쌓아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포부다. 이르면 내년부터 신생 팹리스 업체들의 성과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전략적 요충지인데 비어있다”…차량용 팹리스 ‘공백’ 채우는 보스반도체’

불모지와 다름 없는 팹리스 산업 중에서도 차량용 반도체 전문 분야는 특히 성공 사례가 드문 곳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창업 2년만에 현대차그룹 등으로부터 100억원 이상의 누적 투자를 받으며 화제가 된 곳이 있다. 바로 보스반도체다.

보스반도체는 이달 캐나다 소재의 AI 반도체 회사 ‘텐스토렌트’와 차량용 SoC(시스템온칩) NPU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텐스토렌트는 ‘반도체 전설’로 꼽히는 짐 켈러가 CEO로 있는 회사다. 보스반도체는 텐스토렌트의 NPU 코어 기술 IP를 라이선스해, 자사가 설계하는 차량용 SoC 제품에 적용할 계획이다.

신생 한국 팹리스 스타트업이 유명 AI 반도체 회사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재홍 대표의 이력이 있다. 1965년생인 박 대표는 모토로라, IBM을 거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시스템LSI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을 역임하며 30년간 탄탄한 네트워킹을 쌓았다.

박 대표는 “짐 켈러 CEO와는 삼성에 있을 때부터 잘 알고 지냈다”며 “올 초에 연락해서 ‘우리(보스반도체)와 같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했는데 얘기가 잘 됐다”고 말했다.

판교 실리콘파크에 위치한 보스반도체 사무실에서 박재홍 대표(두 번째 줄 오른쪽 여섯 번째 하늘색 상의)를 포함한 임직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보스반도체 제공]

박 대표는 지난 2022년 5월 보스반도체를 설립했다. 30년 넘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종사했던 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현대차-삼성’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팹리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회사를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악순환을 끊고, 대표적인 팹리스 성공사례를 만들어 선순환을 이끌어보겠다는 포부다.

그는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SDV)이 중요해지면서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 시장을 두고 글로벌 기업들이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며 “ 중요한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공백’과 다름 없는 분야더라”라고 말했다.

장연호 보스반도체 COO(경영지원실장)도 “특히, 한국은 현대차를 선두로 자동차 산업이, 삼성전자를 선두로 반도체 산업이 잘 되고 있는데, 이 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며 “국가 산업 차원에서도 차량용 팹리스 업계에 해외 기업만 있다면 전략적으로 좋을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보스반도체는 최근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 체결로 시리즈 프리-A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이 주요 투자사다. 현재 자율주행용 NPU를 개발 중인데, 내년 말 샘플이 양산될 예정이다. 삼성 파운드리의 5나노 공정을 이용할 계획이다. 2027년에는 보스반도체의 SoC가 탑재된 상용차가 출시될 전망이다.

박 대표는 “차량용 반도체는 안전성 등의 이슈로 다른 산업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필요한 분야”라며 “내년부터는 우리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규(왼쪽부터) 텔레칩스 대표와 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텔레칩스,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제공]
텔레칩스 차량용 칩 로드맵[텔레칩스 IR 자료]
‘저전력’ NPU 강점 살린 텔레칩스, 오픈엣지와 협력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통해 출력되는 인포테인먼트 분야의 칩 시장 위주로 개척해온 텔레칩스도 엣지디바이스 관련 NPU가 적용한 칩으로 시장 확대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미래 전략 중 하나인 전동화 기술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다. 차세대 인포테인먼트(IVI)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돌핀(Dolphin)5’와 NPU를 활용한 고성능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칩 ‘엔돌핀(N-Dolphin)’을 선보였다.

텔레칩스는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로 전환한 이래 인포테인먼트용 AP 사업에 집중해왔다. 이에 따라 '돌핀플러스'를 기점으로 돌핀3, 돌핀5로 확장해 온 제품 라인업을 소개해 왔다. 신규 ADAS인 '엔돌핀'은 올해 3분기 양산 준비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 엔돌핀에 들어가는 NPU는 국내 기업인 오픈엣지테크놀로지가 제공하고 있다. 텔레칩스가 채용한 이 NPU의 강점은 ‘저전력’이다. 차량용 NPU로서 갖춰야 할 고성능 기능을 확보하면서도 전력 사용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오픈엣지의 NPU는 이를 위해 ‘4·8 비트 혼합 양자화’를 통해 소비 전력의 효율성을 높였다.

비트란 데이터들의 저장 크기이다. 비트 수가 높으면 연산의 정확도는 높아지지만, 처리 속도는 그만큼 더디게 된다. 기존 NPU들은 연산을 처리할 때 8비트 크기를 기본으로 한다. 즉 0과 1의 8자리를 통해 데이터를 관리하고 처리한다.

그런데 오픈엣지는 8비트 처리만으로 끝낸 게 아니라 연산에 따라 4자리만으로 가능한 것들을 찾아내 적용했다. 오픈엣지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8자리로 처리하던 연산을 4자리로 줄여 하게 되니,다른 회사 NPU보다 전력 효율성이 5.5배 가량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8비트로 처리하던 NPU 연산의 70%를 4비트로 대체해도 정확도는 불과 1% 수준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차량용 칩에 적합한 저전력 경쟁력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반도체의 기본 뼈대가 되는 메모리시스템 IP 역시 NPU와 함께 제공해 차량용 칩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텔레칩스 칩은 저전력 NPU를 바탕으로 차량용 팹리스 기업으로서의 강점을 부각하고 있다.

넥스트칩의 ‘아파치5’ 칩과 김경수 넥스트칩 대표[넥스트칩 제공]
넥스트칩, 동시연산 수준 글로벌 최고인 NPU와 손잡아

카메라 이미지 센서와 영상 처리 분야에서 기술력을 보유한 넥스트칩은 헝가리 기업인 ‘에이아이모티브’에서 NPU를 공급받는다. 넥스트칩의 현재 양산 칩인 ADAS용 시스템온칩(SoC)인 아파치5(Apache5)에 해당 NPU가 공급되고 있다. 이후 모델인 아파치6 역시 개발 후 샘플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아파치5와 아파치6는 모두 자율주행 레벨 2~3단계 수준의 ADAS 기능 구현을 노린 칩이다. 레벨 3 단계에선 고속도로 같은 일부 조건에서 자동차가 주도권을 갖고 스스로 운행할 수 있다. 운전자의 손과 발 그리고 눈은 자유를 얻게 된다. 운전자가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영화를 볼 수도 있는 수준이다.

넥스트칩은 차량용으로 ‘ISO26262’(3.5t 미만의 승용차 내 안전 관련 전기·전자 장치에 적용되는 기능 안전성 표준)의 국제표준을 준수했는지 살펴본 뒤, 연산 성능에 중점을 두고 NPU를 선택했다.

구체적으로 넥스트칩은 ‘사용량(utilization)’ 지표를 보고 NPU 성능을 판단했다. NPU가 차량을 조율하기 위해 하는 연산은 NPU 칩 안의 '코어'라고 불리는 부분에서 일어나게 된다. 특히 코어 안에도 연산을 수행하는 부분이 여러개가 있는데, NPU마다 연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수준이 제각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NPU 안의 특정 코어 안에 연산을 하는 부분이 100곳 있어도, 같은 시간에 그 100곳 중에 어떤 NPU는 20곳만 동시에 연산하고 어떤 NPU는 80곳에서 동시 연산을 한다. 80곳 동시 연산이 20곳 동시 연산보다는 ‘사용량이 높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넥스트칩이 탑재한 NPU는 전세계에서 가장 이 사용량 수준이 높은 NPU로 알려져 있다.

또 차량 칩에는 NPU뿐 아니라 관련 소프트웨어도 얹혀져야 한다. 해당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시간도 ADAS 칩 제작사 입장에선 비용인데, 에이아이모티브가 자율주행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후문이다.

딥엑스, “저전력 NPU가 대세…엔비디아의 30분의 1 가격 구현”

자동차와 함께 주요한 엣지 디바이스로 꼽히는 가전 시장에서도 국내 팹리스 업체들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엣지 디바이스 NPU 전문 팹리스 기업 ‘딥엑스’가 대표적이다.

딥엑스는 현재 4개의 NPU 제품을 글로벌 고객사에 시제품 형태로 공급하고 있다. 내년 양산이 시작된다. 오는 2025년 딥엑스 NPU를 탑재한 가전 등 셋트 제품들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딥엑스 NPU 제품들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데이터센터에서 구현하는 성능과 비슷한 수준을 매우 경쟁력 있는 단가에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엔비디아의 GPU 가격이 적게는 1500달러, 많게는 3만 달러에 육박하는 것과 달리, 딥엑스 NPU는 100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비슷한 인공지능 연산처리 성능을 구현한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 [딥엑스 제공]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GPU 기술은 전력 공급이 풍부하고 진보된 쿨링(냉각)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에서는 AI 연산 처리를 완벽하게 실행하고 있지만, 배터리로 구동돼 발열 및 전력 공급에 제약이 있는 엣지 디바이스에서는 그 위력을 잃어버린다”며 “딥엑스는 엣지 디바이스에 대량으로 AI 기능을 탑재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 정책을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딥엑스의 목표는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엣지 디바이스 NPU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것이다.

권태휘 딥엑스 부사장은 “예정된 로드맵을 기반으로 중장기 플랜을 짠 결과, 5년 뒤인 2028년에는 전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3%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IDC 리포트에 따르면, 오는 2026년 중국 IT기기의 56%에 AI 엔진이 탑재될 것으로 분석된다”며 “글로벌 시장의 엣지 디바이스 NPU 기술에서 독보적 수준의 격차를 10~15년을 지속하기 위해, 4종의 제품 출시 이외에 차세대 제품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및 로봇 관련 신규 AI 반도체 개발을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jakmeen@heraldcorp.com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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