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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에게 다시 한국 나이로 가르쳐”…멀고먼 ‘만나이’
‘만 나이 통일법’ 시행 100일 넘었지만
“'한국식 나이 말해야지’ 핀잔 듣기도”
실생활에서는 혼선 여전해
[123RF]

[헤럴드경제=정목희·김빛나 기자] #1. 만 네 살인 아이의 학부모인 김모(35) 씨는 아이에게 처음엔 만 나이를 알려줬다가 다시 한국식 세는 나이로 말할 것을 가르친다. 김씨는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의 6살 또래 친구들이 동생으로 대하며 형, 누나라고 부르라고 해서 다시 6살로 말하라고 했다”며 “아이들은 만 나이라는 개념을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또래 친구보다 어려지고 싶어하지 않아서 대부분 안 쓰는 것 같다”라고 했다.

#2.인천 부평구에 사는 여성 전모(28) 씨는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된 이후로 나이를 물어보면 만 나이로 대답한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그럼 쟤(한 살 어린 동생)랑 동갑이야?”라며 헷갈려하곤 한다고. 만 나이로 대답했다고 하면 “여기 한국이잖아. 한국식 나이 말해야지”라는 어른들이 핀잔이 돌아온다고 한다.

만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및 민법 일부 개정법률)’이 시행된지 100일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실생활 정착이 요원하다. 정부는 지난 6월 28일부터 나이 계산법을 혼용해 생기는 사회·행정적 혼선과 분쟁을 막기 위해 만나이 통일법을 시행중이다.

정부는 “새해가 아닌 생일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라며 만 나이 홍보에 힘쓰고 있다. 법령·계약·공문서 등에 표시된 나이 또한 ‘만’이라고 표시하지 않아도 만 나이를 뜻한다. 각 지자체도 법률 개정만으론 부족하다고 보고, 자체 조례·규정을 정비해 만 나이 사용을 독려 중이다. 한국 나이를 끈질기게 쓴다는 방증이다.

서울 금천구에 거주하고 있는 정모(32) 씨는 “아직 다들 만 나이로 말하면 어색해 하기도 해서 익숙해지려면 2~3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나는 또래들한테도 그냥 한국식 나이로 말한다. 6월 이후에 한 번도 만 나이로 말한 적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연금 수급 시점, 근로자 정년, 경로자 우대 등에 적용되는 나이는 기존 만 나이를 적용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청소년 보호 범위와 구제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성범죄·성매매 피해자 청소년에게도 만 나이를 적용하기로 했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 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이 되면 보호 대상인 청소년에서 제외됐었다. 만 나이 통일법에서 제외된 경우는 크게 네 가지인데, 취학 연령, 주류 및 담배 구매, 병역, 공무원 시험 연령 등이다.

일부 업종에서는 당분간 연 나이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결혼정보회사의 경우 고객의 연령 정보가 중요하므로, 기존에 가입했던 회원들과 나이를 다르게 기입하면 혼란이 있을 우려가 있어서 기존처럼 연 나이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도 우측통행을 헷갈려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만 나이도 실생활에 정착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숫자를 0부터 세는 서구 문화와 달리 1부터 셌던 동양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이로 서열을 세우는 문화는 한국밖에 없으며, 만 나이 통일법은 친구라는 개념이 같은 년생으로만 한정 지어지는 기존의 나이 계산법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0이라는 숫자의 개념이 도입되기 전부터 있었던 관습이 몇 백년 동안 그대로 유지해 온 것이기 때문에 만 나이가 익숙해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mokiya@heraldcorp.com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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