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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앗, 아파” 근육질 아기가 빨아들인 모유…뻥 걷어차고 싶었지만[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헤라클레스 편]
<동행하는 화가>
틴토레토
안니발레 카라치
노엘 쿠아펠
.
편집자주
〈후암동 미술관〉은 그간 인간의 세계를 담은 예술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제 시간을 크게 앞당겨 신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명화와 함께 읽어봅니다.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지난 이야기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산에 묶인 채 독수리에 간이 뜯기는 형벌을 받았다. 그런 그를 구해주는 이가 있었으니, 괴력의 남자 헤라클레스였다. 사슬을 푼 프로메테우스에게 헤라클레스는 대뜸 "내가 당신을 도왔으니 당신도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헤라클레스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걸까. 이제 헤라클레스의 생을 처음부터 추적해볼 때다.

틴토레토, '은하수의 기원(일부 확대)'
사자가 아니었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눈앞에 보이는 건 사자 무리였다.

굶주린 듯 침을 뚝뚝 흘렸다. 긴 송곳니로 무엇이든 뜯어먹을 기세였다. 헤라클레스는 녀석들과 대치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그의 가족이 위험했다. 헌신적인 아내 메가라, 이제 막 병정놀이에 재미를 붙인 아들들이 습격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괴력의 헤라클레스에게 사자 몇 마리를 제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먼저 달려드는 암사자의 목부터 꽉 쥐고 거칠게 내던졌다. 그다음은 전의를 잃은 채 떨고 있는 새끼 사자들이었다. 몽둥이를 쥐고 사정없이 패대기쳤다.

"제발 살려주세요!"

애원하며 도망치는 마지막 녀석은 활로 쏴 죽였다. 그러고는 혼이 빠진 채 늘어져 있는 암사자를 마구 짓밟았다. 그렇게 다 죽였다. 헤라클레스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옷에 묻은 핏방울을 훌훌 털었다. 그런데…. 사자가 어떻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지? 헤라클레스가 이런 의문을 품은 순간,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는 잠에서 깼다. 모두 꿈이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광기에 젖은 헤라클레스가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장면(도자기).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고고학 박물관

영 찝찝했다.

무엇보다도 환영이 아닌 진짜 사자 무리를 때려잡은 듯 팔다리가 욱신거렸다. 헤라클레스는 뒤척이기를 멈추고 눈을 떴다. 옆에 메가라가 누워있지 않았다. 침실 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서둘러 바깥 문을 열었다. 차라리 이 또한 꿈이기를 바랐다. 눈앞에 보이는 건 짓밟힌 채 축 늘어진 아내, 몽둥이와 활에 맞아 죽은 자식들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피가 덕지덕지 묻은 자기 손바닥을 볼 수 있었다. 설마, 내가…? 그는 절규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고고학 미술관에는 기원전 4세기경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헤라클레스 그림이 있는 도자기가 있다. 초점을 잃은 헤라클레스가 어린 아들을 죽이려는 모습이다. 오른편에 선 메가라는 이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집안 모든 물건은 이미 다 깨지거나 부서졌다.

"…아직 멀었어."

결혼과 가정의 신 헤라가 울부짖는 헤라클레스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사실은 모두 헤라가 벌인 일이었다. 그녀가 헤라클레스에게 찰나의 광기를 심은 것이었다. 미쳐버린 헤라클레스가 가족을 사자 무리로 착각하고 때려잡은 것이었다. 피눈물을 쏟은 헤라클레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씩씩대며 째려봤다. 그 또한 헤라의 소행임을 알고 있다는 듯.

헤라의 분노
프란체스코 데 로시, 'The Three Fates'

"기간테스(Gigantes)가 올림포스를 침공하리라. 녀석을 막기 위해선 위대한 인간 영웅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다."

제우스는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Moirai)의 경고를 잊지 못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낳은 기간테스는 인간의 상체, 뱀의 하체를 갖는 괴력의 괴물 무리였다. 제우스에게는 올림포스의 모든 신이 한꺼번에 덤벼도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 힘이 있었다. 그런 그도 기간테스만은 두려운 존재였다. 그가 불안을 잠재울 방법은 하나였다. 모이라이가 말한 인간 영웅을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 세상을 둘러보던 제우스의 시선은 테베에서 멈췄다. 미케네 왕 엘렉트리온의 딸, 지금은 미케네에서 테베로 망명한 알크메네를 찍었다. 그녀는 메두사를 죽인 영웅 페르세우스의 손녀였다. 최강의 전사를 잉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혈통이었다.

제우스는 알크메네의 남편 암피트리온으로 변했다.

진짜 남편이 타포스로 원정을 간 사이 그녀와 사흘 내내 동침했다. 그렇게 해 아기를 배게 했다. 알크메네는 곧 우람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눈치를 봤다. 제우스가 기간테스만큼 무서워한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이는 헤라였다. "저기…. 올림포스를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소." "그걸 핑계로 또 바람을 피웠군요." 헤라는 여전히 그를 째려봤다. "이번에는 다른 상황이오. 당신을 위해 저 아이 이름을 '헤라의 영광(Hercules)'으로 짓겠소." "필요 없어요." 헤라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제가 저 녀석을 가만히 둘 것으로는 생각하지 마세요."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뱀을 죽이는 어린 헤라클레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공방, '뱀을 죽이는 어린 헤라클레스'
조슈아 레이놀즈, '어린 헤라클레스'

헤라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헤라는 독사 두 마리를 풀었다. 이 뱀들은 어린 헤라클레스가 있는 요람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에게 이는 흥미로운 장난감일 뿐이었다. 헤라클레스를 물어 죽이려고 한 뱀은 아기 장사의 손에서 몸부림치다 외려 죽고 말았다. 15~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그림 '뱀을 죽이는 어린 헤라클레스'를 보면 헤라클레스는 이미 어릴 적부터 완전체의 모습을 갖춘 듯보인다. 굵은 목과 두꺼운 팔다리를 자랑하는 이 아기의 풍채에 뱀이 불쌍해 보일 정도다. 1640년께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공방에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그림 '뱀을 죽이는 어린 헤라클레스'는 보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 아기도 벌써 근육 윤곽이 선명하게 보인다. 자기를 귀찮게 구는 뱀을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에 힘을 주는 모습이다. 끝으로 18세기 잉글랜드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의 작품 '어린 헤라클레스'도 있는데, 이 아기 또한 뿜어내는 분위기가 분명 범상치 않아 보인다.

제우스는 불안했다.

뱀 따위 손쉽게 제압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헤라클레스는 아직 핏덩이였다. 굴욕감까지 맛본 헤라가 곧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헤라클레스를 죽일 것 같았다. 제우스는 꾀를 부렸다. 땅에 내려간 그는 헤라클레스를 안고 올림포스 산으로 돌아왔다. 몰래 헤라의 침실로 들어갔다. 잠든 그녀의 젖을 아기에게 먹였다. 헤라의 젖을 먹은 인간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덕에 헤라클레스 또한 필멸자에서 불멸자가 될 수 있었다.

틴토레토, '은하수의 기원'
페테르 파울 루벤스, '은하수의 기원'

헤라클레스가 힘껏 빨아들인 젖은 우주까지 튀었다.

은하수가 지금껏 '밀키웨이(milky way)'로 불리는 이유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는 그림 '은하수의 기원'을 통해 이 장면을 표현했다.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의 얼굴에 냅다 젖을 갖다대고 있다. 헤라클레스가 빨아들인 헤라의 젖은 별이 돼 사방으로 튀고 있다. 루벤스도 이 대목에 영감을 얻었다. 그는 헤라가 헤라클레스에게 선뜻 모유를 주는 것으로 그렸다. 실제로 헤라가 아기 헤라클레스를 보곤 귀여움에 미움을 누그러뜨렸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젖을 너무 강하게 빨면서 고통을 줘 악감정이 되살아났다는 말이 따라온다.

헤라는 큰 통증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이 아기를 당장 걷어차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돼 있었다. "죽일 수 없어도 괜찮아요. 그 대신,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할 만큼 시련을 주겠어요." 헤라는 머쓱해하는 제우스에 대고 선언하듯 말했다.

케이론의 가르침
조반니 바티스타 치프리아니, '아킬레우스에게 활을 가르치는 케이론'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도 어린 자식의 남다름을 충분히 인지했다.

이들은 아들의 능력치를 극대화할 최고의 선생을 찾았다. 켄타우로스 케이론이었다. 인간의 상반신, 말의 하반신을 가진 켄타우로스들은 원래 장난이 심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종족이었다. 그러나 케이론만은 달랐다. 그는 천재이자 현자였다. 검술과 궁술, 웅변과 설득, 노래와 문장 등 모든 면에서 정점을 찍었다. 온화한 성격의 케이론은 남에게 자기가 아는 바를 가르치는 능력도 특출났다. 그의 별명은 '영웅들의 스승'이었다.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치프리아니는 그런 케이론이 어린 영웅에게 활쏘기를 가르치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작품 속 그가 지도하는 아이는 훗날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다.

과연 케이론이었다.

혹독한 가르침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나날이 늠름해졌다. 타고난 재능에 피나는 노력까지 더한 그는 전투 실력으로는 이미 인간 중 최강자였다. 다만 악기 연주는 어려워한 듯 하다. 헤라클레스는 음유시인 영웅 오르페우스의 형제 리누스에게 리라를 배웠다. 그는 리누스에게 계속 지적을 받자 격분해 리라로 그의 머리를 쳤다. 힘 조절에 실패했다. 머리뼈가 깨진 리누스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헤라클레스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헤라가 일부러 분노를 불어넣었다는 설도 있다. 헤라클레스는 당연히 살인죄로 재판받았지만, 운 좋게 정당방위가 돼 빠져나왔다.

"앞으로도 곤란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너는 네 힘만큼의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는 헤라클레스에게 당부했다. 말로만 끝내지 않았다. 이들은 헤라클레스를 키타이론(Cithaeron) 산에 데려다 놓았다. 양치기가 돼 수백마리 양을 돌보게끔 했다.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참았다.

지롤라모 디 벤베누토,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
안니발레 카라치, '헤라클레스의 선택'

어느 날, 두 여인이 산꼭대기까지 찾아왔다.

"나를 따르면 향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삶을 주고." 화려한 차림의 여성이 말했다. 그녀는 쾌락의 여신 카키아였다. "나를 따르면 파란만장하지만 끝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주마." 수수한 차림의 여성이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미덕의 여신 아레테였다. "당신을 따르지요." 헤라클레스는 아레테를 골랐다. 그리고 아레테는, 그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지롤라모 디 벤베누토는 그림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를 통해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오른쪽에 선 여인은 카키아로 보인다. 그녀 뒤에는 나체로 자유롭게 뛰어노는 남녀 무리가 있다. 왼쪽에 있는 여인은 아레테일 것이다. 그녀 뒤에는 험준한 산과 사나운 맹수가 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헤라클레스의 선택'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몸을 반쯤 벗은 카키아는 가까운 속세의 세상으로 유혹한다. 단정한 차림새의 아레테는 멀지만 더 영예로운 세상으로 갈 것을 설득하는 모습이다.

인간병기가 되다

헤라클레스가 생애 처음으로 때려잡은 괴수는 키타이론 산을 근거지로 둔 사자였다. 그가 열여덟 살 때였다.

테스피아이(Thespiae)의 왕 테스피오스가 각별히 아끼는 소 떼를 잡아먹는 육중한 야수였다. 거대한 덩치, 날렵한 움직임으로 왕의 군대까지 농락하던 짐승이었다. 하지만 웬만한 신도 때려잡을 만큼의 괴력이 있는 헤라클레스에게는 귀여운 상대였다. 슬쩍 다가가서 맨손으로 입을 찢어버렸다. 끝이었다. 사자는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죽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사티로스 커플에게 부축받는 술에 취한 헤라클레스'

테스피오스에게도 이 짧고도 강렬한 이야기가 닿았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궁에 초대했다. 당시 테스피오스는 여러 부인 사이에서 쉰 명의 딸을 뒀다. 그는 헤라클레스의 기개가 좋았다. 그래서 오십 일간 머물게 하면서 쉰 명의 딸과 동침하게끔 했다. 테스피오스는 저녁마다 헤라클레스에게 술을 잔뜩 권했다. 매일 밤 만취한 헤라클레스는 동침 상대가 쉰 명이 아닌 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헤라클레스가 하룻밤 사이 쉰 명의 딸과 동침했다는 설도 있다. 루벤스만큼 술에 취한 헤라클레스를 적나라하게 그린 화가는 많지 않다. 루벤스의 그림 '사티로스 커플에게 부축받는 술에 취한 헤라클레스'를 보면 영웅이 이렇게나 망가져도 될지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를 부축하는 사티로스는 인간의 상체, 염소의 하체를 가진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이다.

궁에서 할 일을 모두 마친 헤라클레스는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테베였다.

"공물로 소 백마리를 어서 바치시오." 돌아온 그가 처음 본 건 옆나라 오르코메노스의 사신이 테베의 관료를 협박하는 장면이었다. "강대국과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오." 사신은 오만했다. "그대들의 왕에게 전하시오." 참지 못한 헤라클레스가 사신에게 달려들어 그의 한쪽 귀를 쥐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공물은 이것밖에 없다고 말이오." 헤라클레스가 손가락에 힘을 줬다. 사신의 귀가 그대로 똑 떨어졌다. 헤라클레스는 고통에 데굴데굴 구르는 사신의 손에 잘린 귀를 쥐여줬다.

얼마 후 저 멀리서 흙먼지가 일었다.

격분한 오르코메노스의 왕 에르기노스가 손수 몰고 오는 군대였다. 헤라클레스는 홀로 몸을 풀었다. 손으로는 칼을 쥐고, 어깨에는 활과 화살을 건 채 내달렸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꼬마들의 전쟁 놀이에 끼어든 듯했다. 그의 칼질 한 번에 수십 명의 목이 떨어졌다. 이 기세에 용기를 얻은 테베의 병사들은 함성과 함께 전장에 나섰다. 헤라클레스는 기회를 포착했다. 망설이지 않고 칼을 던졌다. 이는 에르기노스의 가슴팍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인간병기를 상대하는 일로도 모자라 왕까지 잃은 오르코메노스의 병사들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헤라가 준 고통

노심초사한 테베의 섭정(攝政) 크레온은 헤라클레스의 미친 활약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크레온은 헤라클레스와 자기 큰딸 메가라와의 결혼을 주선했다. 둘 사이에는 아들 셋이 태어났다. 고향의 영웅,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자식…. 더 바랄 게 없는 삶이었다.

광기에 젖은 헤라클레스가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장면(모자이크 패널). 포르투갈 리스본 국립 고고학 박물관

헤라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모든 것을 얻었을 때 모든 것을 빼앗는 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었다. "…자네 집에 사자 떼가 들어왔어." 헤라가 모습을 감춘 채 헤라클레스에게 속삭였다. "저기 모여있는 녀석들 말이야. 자네 가족이 위험할 수 있겠는데." 그러고는 그의 정신을 흐리게 했다. 이제 헤라클레스는 다정하게 놀고 있는 메가라와 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먹이를 찾는 암사자와 새끼 세자 세 마리만 보일 뿐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무슨 일이냐며 다가오는 메가라, 그의 눈에는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오는 암사자를 때려잡았다. 울고 있는 세 아이, 그의 눈에는 꼬리를 내린 채 빈틈을 보고 있는 새끼 사자들도 다 죽였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렇게 이끌리듯 침실로 간 후 깊게 잠든 것이었다. 얼마 후 꿈에서 깬 그가 본 광경은 지옥이었다.

그는 헤라의 젖을 먹은 불사의 몸이었다. 이대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찾았다. 신탁을 듣고 싶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가족을 몰살한 죄를 떨칠 수 있을지 물었다.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에게 가거라." 이 또한 신전의 여사제인 척 분장한 헤라가 한 말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를 신탁으로 받아들인 채 혈혈단신으로 하릴없이 걸었다. 겨우 에우리스테우스를 만날 수 있었다. "어, 어서 오시오." 에우리스테우스는 짧은 인사말도 더듬거리면서 했다.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 자꾸 천장을 쳐다봤다. 이 또한 헤라일 것이었다.

노엘 쿠아펠, '헤라와 헤라클레스'

"자네는 십 년간 열 개의 노역을 해야 해. 그러면 속죄할 수 있어."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노역들은 말이야…." 에우리스테우스는 말을 하다 말고 또 천장을 올려다봤다. "머, 먼저 네메아의 괴물 사자를 사냥해야겠어." 그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대로 전해주는 듯했다. 당연히 헤라일 터였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노엘 코이펠은 헤라와 헤라클레스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 '헤라와 헤라클레스' 속 헤라는 헤라클레스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에는 여유와 광기가 함께 묻어있다. 무슨 짓을 하든 내 손바닥 안이라는 듯한 자세까지 보인다. 헤라클레스는 그런 헤라가 두렵고도 혐오스럽다는 표정이다. 헤라의 괴롭힘은 이제 시작이었다. ▶헤라클레스의 노역은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
르네상스 3대 거장과 어깨를 견주는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제자. 베네치아에서 천을 염색하는 장인의 아들로 출생했다. 본명은 야코포 로부스티지만, '어린 염색공'이라는 뜻의 별명인 틴토레토를 자기 이름처럼 썼다. 작업실 벽에 '미켈란젤로의 드로잉과 티치아노의 색채'라고 써붙이고 이를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틴토레토는 르네상스의 마지막을 장식한 최후의 거장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매너리즘 양식의 대표자인 엘 그레코에게 영향을 줬다.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1560~1609)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가 가문 카라치가(家)에서 가장 재능과 실력이 뛰어난 화가였다. 카라바조와 함께 후세 화가들에게 바로크 양식의 영감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은 10년에 걸쳐 그린 이탈리아 파르네세 궁전 프레스코화. 그림 작업 말고는 깊이 관심을 두는 게 없어 옷차림 등 행색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노엘 쿠아펠(Noel Coypel·1628~1707)
니콜라 푸생과 샤를 르 브룅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받은 프랑스 태생의 화가. 역사와 신화의 여러 극적인 장면을 즐겨 그렸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눈에 들어 튈르리, 루브르, 베르사유 궁을 장식하기 위한 회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말년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로마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학장으로 연단에 섰다.

〈참고자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웅진지식하우스

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이디스 해밀턴, 현대지성

〈후암동 미술관 작품 편 읽는 순서〉

1)“내 딸이 얼어죽을뻔 했어!” 식은 욕조에 女모델 뒀다가 소송갈 뻔한 사연[후암동 미술관-존 에버렛 밀레이 편] - 오필리아 (2023. 9. 2.)

2)“그녀 남친을 제가 죽였어요” 짝사랑 훔쳐보던 괴물, 무슨 짓을 벌였나[후암동 미술관-오딜롱 르동 편] - 키클롭스 (2023. 9. 16.)

3)“몸값만 900억원 이상!” 13명 품에 안긴 男실종사건…정말 화형 당했나[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가셰 박사의 초상 (2023. 9. 30.)

4)“그남자 목을 주세요” 춤추는 요부의 섬뜩한 유혹…왕은 공포에 떨었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모로 편] - 유령(환영) (2023. 10. 14.)

〈후암동 미술관 신화 편 읽는 순서〉

1)“독수리가 간 쪼아도 참는다” 최악고문 받는 男, 무슨 사연[후암동 미술관-프로메테우스 편] (2023. 9. 9.)

2)“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2023. 9. 23.)

3)“네 엄마 뼈를 던져라” 화들짝 놀란 명령…울면서도 할 수밖에[후암동 미술관-데우칼리온 편] (2023. 10. 7.)

4)“앗, 아파” 근육질 아기가 빨아들인 모유…뻥 걷어차고 싶었지만[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헤라클레스 편] (2023. 10. 21.)

〈후암동 미술관 현대미술 편 읽는 순서〉

1) “벌거벗은 女로 우릴 조롱” 욕이란 욕 다 먹었다[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최초의 모더니스트(모더니즘①) (2023. 6. 24.)

2)“11살 연하女와 비밀연애, 자식도 낳았다고?”…10년 숨겼다 ‘들통’[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현대미술 창시자(모더니즘②) (2023. 7. 1.)

3)“나체女에 웬 아프리카 가면?” 얼빠졌다 조롱당한 그의 ‘반전’[후암동 미술관-파블로 피카소 편] - 희대의 반항아(입체파) (2023. 5. 20.)

4)“무자비한 짐승男인 줄 알았는데” 쫙 빼입은 신사 등장, 모두 놀랐다[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행복의 야수(야수파) (2023. 8. 26.)

5)“내 이름은 로즈” 여장남자된 30대男 전말…‘빅픽처’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르셀 뒤샹 편] - 열정의 탐험가(레디메이드·개념미술) (2023. 6. 10.)

6)“외간여성과 시속 120km 광란의 음주질주” 즉사한 男정체 보니[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미국의 신화(액션페인팅) (2023. 7. 15.)

7)시뻘건 내 피와 교감해보겠나…울든, 기절하든 그대 마음[후암동 미술관-마크 로스코 편] -교감의 마술사(추상표현주의) (2023. 6. 17.)

8)“나나 네 엄마나 죽느냐 사느냐한다” 190㎝ 키다리 아저씨, 딸에게 한 고백[후암동 미술관-김환기 편] -붓을 든 시인(추상표현주의 특별편) (2023. 8. 19.)

9)“관음男-노출女가 만났네요” 조롱…둘은 ‘환상의 짝꿍’이었다[후암동 미술관-살바도르 달리 편] - 위대한 쇼맨(초현실주의) (2023. 7. 8.)

10)“여자랑 사느니 맹수랑 살겠다” 아내앞서 폭언…‘전쟁같은 사랑’을 한 부부[후암동 미술관-에드워드 호퍼 편] 고독의 화가(불모지) (2023. 8. 5.)

11)“난 고깃덩어리, 죽으면 시궁창에 던져버려” 폭탄발언…그는 ‘인간중독’이었다[후암동 미술관-프랜시스 베이컨 편] 고통의 화가(외딴섬) (2023. 7. 29.)

12)“죽일거야” 그녀가 쏜 3번째 총알이 몸 관통…죽다 살아났지만[후암동 미술관- 앤디 워홀 편] - 위대한 악동(팝아트) (2023. 6. 3.)

13)“흑인의 삶 어때?” 무례한 공격들…마돈나도 반한 27살男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장 미쉘 바스키아 편] - 자유의 반군(신표현주의) (2023. 5. 27.)

14)“엄마가 사라졌다, 속이 시원했다”던 그녀도 실종…1년뒤 ‘뜻밖’의 발견[후암동 미술관-아그네스 마틴 편] - 홀로 선 은둔자(미니멀리즘) (2023. 8. 12.)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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