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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멸 목전 피란민 마을들…“부산 세계유산, 이대론 불가능”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6·25③]
부산, 피란수도 9곳 세계유산 추진하지만
피란민 마을은 정작 방치 속 소멸위기
“시늉만 내는 보존계획, 이대로는 등재 못해”
부산 아미동 소재 비석마을의 한 폐가. 박혜원 기자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국내편〉 [2] 당신이 모르는 6·25

[헤럴드경제(부산)=박혜원 기자] 부산이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피란수도 문화유산 9곳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세계유산) 등재가 관리 부실 및 개발 논리에 휩싸여 난항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세계유산 등재가 사실상 요원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일 문화재청과 부산시 등에 따르면 부산은 현재 피란민 마을인 우암동 소막마을·아미동 비석마을 등 피란수도 관련 유산 9곳(임시수도 대통령관저·임시수도 정부청사·국립중앙관상대·미국대사관·부산항 제1부두·하야리아 기지·유엔 묘지)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예비목록 개념인 잠정목록에 오른 상태로, 향후 유네스코 측이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세계유산 등재는 지자체에서 문화재청에 신청하면, 이를 문화재청이 심의해 유네스코에 다시 신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부산시가 세계유산 등재를 본격 추진한 것은 2016년부터로, 문화재청은 당시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잠정목록 대상 86곳을 선정했다. 이후 문화재청 심의 등을 거쳐 현재의 9곳으로 추려졌다.

세계유산 최종 등재를 위해선 유산 보존 및 관리가 핵심이다. 그러나 정작 등재 추진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특히 피란민 마을의 경우 마을 일대 노후화 및 거주민 고령화로 당장 소멸 위기가 닥친 상황이지만 이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막마을 주택 복원, 비석마을 박물관 조성 등 일부 보존 작업도 있었지만 실질적 성과를 이루진 못했다는 지적이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주민들의 생활 불편을 당장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산 우암동 소재 소막마을 골목. 박혜원 기자

앞서 문화재청은 부산시가 신청한 세계유산 신청 목록을 2017년 ‘조건부’ 잠정목록으로 선정하고, 종합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하라고 부산시에 요구했다. 특히 소멸 위기에 놓여있는 피란민 마을들 대한 관리 필요성이 거론됐다. 일례로 지난 2020년 부산시가 작성한 ‘세계유산 등재 마스터플랜’ 문서에선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소막마을 주택1동 외 일대에 대해 “주변 블록이 매우 열악한 주거환경을 이루고 있어 피란주거지 생활경관의 보존관리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피란민 마을의 소멸을 방지하려면 우선 거주민들에 대한 지원금 방식의 대책부터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는 “현재의 거주민들이 떠나지 않도록 하려면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에 대한 보상 개념으로 지원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향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부산 아미동 소재 비석마을. 박혜원 기자

지자체 개입으로 옛 생활 흔적이 남은 유산을 보존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의 가나자와마을이 꼽힌다. 수백년간 전쟁이나 지진 피해를 비교적 덜 받아 일본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가나자와마을 역시 대부분 주택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2000년대까지 주택 2200여곳이 훼손되기도 했다. 거주민이 고령화하면서 인구가 줄고 주택이 폐가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비석마을, 아미마을과 비슷한 위기를 겪은 것이다.

가나자와시가 마련한 지원 중 가장 실질적으로 꼽히는 것은 주민에 대한 직접 지원 성격인 ‘보조금’ 사업이다. 가나자와시가 2000년대 초 제정한 고마치나미 보전조례에는 시에서 개축 및 수리비용을 최대 70%까지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년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도 정작 보존대책은 부실한 사이 유산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에게 식량을 보급하는 장소이자 비석마을 핵심 유산으로 분류됐던 은천교회는 지난 2021년 철거됐다. 교회가 있던 아미동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다. 당시 학계 반발이 컸지만 서구청 측은 은천교회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아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냈다. 강 교수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도 정작 보존계획은 시늉만 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세계유산 등재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작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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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헤럴드경제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은 역사적 논쟁 속에 사라지는 한국 근현대사 유적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본 기획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 : 김빛나 기자
팀 구성원 : 김빛나·김영철·박지영·박혜원 기자
지원 :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전체 시리즈〉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인류역사의 수치를 공개하다

[2] 베를린편

-역사 전쟁없는 도시

〈국내편〉

[1] 근현대사 유적지도

[2] 당신이 모르는 6·25

[3] 잊힌 친일문화 잔재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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