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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환자도 관절염 환자도...대한민국은 ‘맨발’로 걷는다
중장년에 불고 있는 ‘어싱 바람’
대모산 둘레길 5명 중 4명 맨발 산행
“꿀잠” “지병 완치” 예찬 줄이어
맨발걷기 지원 조례 지정하는 지자체들
전국에 맨발걷기 열풍이 불면서 지자체들도 앞다퉈 맨발걷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맨발걷기 길 12곳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의 주민들이 맨발로 산책하는 모습. [서초구 제공]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흙을 밟자 발바닥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푹신한 땅, 축축한 한기,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단단한 돌멩이들의 감촉이 고스란히 발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흙을 마주했을 때 자유롭다는 느낌도 들었다.

대한민국은 ‘맨발 걷기’ 열풍이다. 운동 목적으로 맨발 걷기에 나선 사람부터 치유를 이유로 신발을 벗는 사람까지, 이유는 다양하다. 기자도 직접 맨발 걷기에 나서봤다.

수서역 6번 출구에서 100m쯤 걸어가면 대모산 둘레길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부터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들이 보였다. 한 손에 신발을 쥐고 산행을 하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맨발로 땅을 온전히 느끼는, 이른바 ‘어싱(Earthing)족’이다. 어싱이란 땅(지면)을 뜻하는 어스(Earth)의 진행형으로, 신체 일부분을 지표면에 직접 접촉하는 ‘접지(接地)’ 행위를 뜻한다. 지구에너지와 몸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의미다.

실외에서 운동화를 벗으니 처음에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걸을수록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곳곳에서 맨발로 흙을 느끼고 있는 시민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낯선 발바닥의 감촉도 어느새 편안하게 느껴졌다. 둘레길 입구에서 300m 정도 걸어 올라가자 산행하는 시민 5명 중 4명은 신발을 벗고 있었다.

대모산 둘레길 초입에서 만난 최모(70) 씨는 지팡이를 들고 익숙한 듯이 신발을 벗었다. 최씨는 “허리협착증 때문에 다리 저림이 있었는데 보름 동안 하루 2~3시간 맨발로 걸었더니 저린 게 아예 느껴지지도 않는다”며 “내가 직접 몸으로 매일 효과를 느끼다 보니 ‘이거 외에 다른 운동은 없다’는 마음으로 걷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 맨발 걷기를 즐기는 시민도 있었다. 둘레길 쉼터에서 만난 조복선(67·여) 씨는 맨발 걷기를 1년째 하고 있다고 했다. 조씨는 “맨발 걷기를 하고 난 이후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아지고 혈액순환도 잘 된다”며 “특히 잠을 잘 자게 돼 너무 감사하다”며 맨발 걷기로 젊음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조씨의 동갑내기 친구 2명 또한 조씨 권유로 맨발 걷기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만난 김명희(72·여) 씨도 두 달 전 유튜브로 맨발 걷기를 접하고 어싱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김씨는 “불면증이 심했는데 걷기를 하고 나서는 ‘꿀잠’을 잔다”며 “하루 한 시간씩 매일 땅의 기운을 몸으로 느끼니까 건강이 좋아진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기자 또한 1시간의 맨발 걷기를 하고 나서 오랜만에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맨발 걷기로 지병이 호전됐다는 어싱족도 많다. 박성태(74) 씨는 맨발 걷기를 통해 2개월 만에 전립선암을 치유했다고 한다. 지난해 1월 말 박씨는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암이 전이돼 흉추 9·10번까지 썩게 했으며 의사는 방법이 없다고 했단다. 그러다 딸이 사다준 맨발 걷기 관련책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루에 6시간씩 맨발로 경기도 남양주 와부 금대산을 걸었다. 그렇게 2개월, 박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의사도 나를 포기했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맨발 걷기밖에 없었다”며 “걷기를 하면서 내가 아픈 곳에 집중하는 명상을 병행했기 때문에 효과가 커진 것 같다”고 했다.

홍형열(70) 씨는 2020년 12월 급성패혈증으로 쓰러져 양쪽 폐 중 하나를 쓰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병원에서 호흡기를 차고, 의식을 잃은 뒤 45일 만에 깨어나기도 했다. 의사는 몸에 산소가 돌지 못하면서 오른쪽 팔과 다리가 썩어 이를 잘라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낙담에 빠져 휠체어생활을 하다 2년 전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하루에 1시간씩, 하루 3번을 걸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타고 네 발로 걷다가 두 발로 걷게 됐고, 걸을 수 있는 거리도 10m에서 100m로 늘었다. 밤에 잘 때는 접지기구를 직접 만들어 끼고 자기도 했다. 홍씨는 “2년 전 걷기를 시작하면서 몸이 80%는 회복됐다”며 “류머티스성 관절염도 진단받았는데 지금은 완치된 상태”라며 맨발걷기가 자신을 살렸다고 강조했다.

이강일(82) 인천 나사렛국제병원 이사장 또한 맨발 걷기로 파킨슨병이 호전됐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7년 전 파킨슨병을 진단받아 몸에 균형이 잡히지 않아 눕거나 앉는 것이 불편해 부축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11개월 동안 하루 1번 매일 2시간에서 2시간30분을 걷고, 겨울에도 양말에 구멍을 뚫어 꾸준히 걸었더니 몸에 균형이 잡히고 굽었던 허리가 펴져 지팡이를 짚고 걷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중장년 사이 맨발 걷기 열풍이 불면서 맨발 걷기 지원을 위한 조례를 지정한 지자체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7월 ‘서울특별시 맨발 걷기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했다. 서울시는 조례가 제정됨에 따라 사업 지원을 요청하는 지자체에 지원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달에는 전남 목포시에서 관련 조례가 통과됐다. 올해 초에는 전북 전주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한 바 있다. 경기도의회 또한 맨발 걷기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 등을 만드는 지자체도 여럿이다. 성남시는 율동공원과 위례공원 등 6곳에 각각 740m, 520m 황톳길을 조성했다. 서초구도 지역 내 총 4㎞ 규모로 맨발 걷기길 12곳을 만들었다. 강원 춘천시는 2024년까지 7.4㎞ 규모의 맨발 걷기 코스를 만들기도 했다. 박지영 기자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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