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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개장터 옆, 아무도 모르는 위령비 하나…70명 희생된 학도병 최초 전투지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6·25①]
화개장터 옆, 70명 학생 전사·실종 6·25 전투지
민간에서 발굴해 추모비 세우고 기념식 열어
유해 발굴 지지부진…참전군인 인정 유해 1구뿐
지난 8월 15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전투지 위령비 앞에서 정복을 갖춘 참전자 고병현(94) 옹이 고개를 숙인 채 위령비를 매만지고 있다. 박혜원 기자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국내편〉 [2] 당신이 모르는 6·25

[헤럴드경제(경남)=박혜원 기자] “화개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조건 가라니까 갔지…. 그날 내가 식사당번이었어. 30명분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데 총소리가 나데. 멀리서 연대장이 하는 말이 ‘밥 버리고 뛰라’고. 허겁지겁 뛰어올라가니 쓰러져 있는 학생이랑 군인이 어림잡아 40명쯤….” 지난 8월 15일,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고병현(94) 옹이 화개전투 위령비 앞에서 수십년 전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화개장터’란 노래로 잘 알려진 경남 하동 인근. 평일 오전부터 인근 지역주민으로 북적이는 화개장터 입구로부터 불과 700여m 떨어진 곳에 위령비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지난 1950년 7월 25일, 6·25 당시 전남지역 학생 183명으로 편성된 국내 최초의 학도병 중대가 치른 ‘화개전투’ 장소다. 화개전투지에는 위령비와 함께 추모공원이 조성돼 있지만 이곳을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도로 한복판에 있는 데다 좁은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야 하는 탓이다.

학도병 70명 전사·실종 화개전투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전투 추모공원 앞 위령비. 도로 한복판에 있어 인적이 극히 드물다. 박혜원 기자
화개전투 추모공원으로 향하는 계단. 계단을 따라 5분 남짓 올라가면 추모공원과 추모비, 가묘 등이 있다. 박혜원 기자

70여 년 전 18세였던 고옹은 이곳에서 전투를 치렀다. 1950년 7월 13일 순천역 인근의 한 파이프공장에서 9일간 무기도 없이 기초훈련만을 받은 뒤였다. “출동한 다음에 남원에서야 소총을 받아 ‘구리스(윤활유)’를 손수건으로 내가 다 닦아냈어.” 고옹의 회상에선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전쟁에 투입됐던 당시 학도병들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고옹을 포함한 학도병들은 전주로 향했으나 이미 그곳은 함락 상태였다. “중대장이 이렇게 후퇴할 수는 없다고, 포로를 세워두고 ‘쏘라’고 했는데 도저히 못 쏘겠데.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기에 ‘이게 전쟁이구나’ 깨달았네. 와중에 7명이 총을 쐈는데 실탄이 있던 총은 하나밖에 없었어”라고 고옹이 덧붙였다. 이후 학도병 중대는 여수 율촌까지 후퇴했다가 다시 구례구를 거쳐 경남 하동까지 이동해 이곳에서 북한군과 화개전투를 치르게 된다.

화개전투는 북한군 진로를 일주일 이상 지연시키면서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 점령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희생은 컸다. 불과 3시간 남짓 치러진 전투에서 180여명의 학도병 중 70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이 중 26명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지만 대부분이 90대 이상 고령이다.

무관심 속 방치…참전자 사비 들여 기념식
화개전투 추모공원에 놓인 학도병 충혼탑. 박혜원 기자

이렇듯 희생이 컸던 장소지만 화개전투지는 최근까지 사실상 방치돼왔다. 화개전투가 세상에 알려진 것 역시 민간을 통해서였다. 월남전 참전자 출신인 고효주 6·25 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장(당시 월남전참전자회 여수지회장)은 2014년 사비를 들여 기념식을 처음으로 열었다. 고 회장은 “월남전 참전자 사이에서 6·25 참전자들을 먼저 예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비 400여만원을 들여 2014년에야 첫 기념식을 열었다”고 말했다.

매년 7월 25일마다 진행하는 추모제 역시 1990년대부터 참전자들의 사비로 열리다 2013년부터 국가보훈처가 보조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추모공원으로 향하는 계단 중턱에 있는 추모비도 참전자들이 사비를 모아 세웠다. 추모공원은 지난 2021년에야 경상남도 도비로 조성됐다.

두 번에 그친 유해 발굴…잊혀가는 유적
고효주 6·25 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장이 화개전투 위령비 인근을 정돈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화개전투에 대한 무관심에서 드러나듯, 지금까지도 학도병에 대해서는 유산관리는 물론 관련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해 발굴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화개전투지 유해 발굴은 10구를 발굴한 지난 2007년이 마지막이다. 2017년에도 발굴이 진행됐으나 탄피 몇 점을 발굴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10구 중 1구만의 신원이 확인돼 나머지 9구는 참전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조성훈 전 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장은 “학도병의 경우 전쟁 초기에 결성되면서 작전일지 등 자료가 소실돼 연구 자체가 어려워 사회적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학도병 핵심 유적 중 하나인 화개전투지는 산등성에 있어 참전자나 유가족 외엔 현장을 방문하기 쉽지 않아 후세에선 조금씩 잊히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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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헤럴드경제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은 역사적 논쟁 속에 사라지는 한국 근현대사 유적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본 기획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 : 김빛나 기자
팀 구성원 : 김빛나·김영철·박지영·박혜원 기자
지원 :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전체 시리즈〉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2] 베를린편

〈국내편〉

[1] 근현대사 유적지도

[2] 당신이 모르는 6·25

[3] 잊힌 친일문화 잔재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klee@heraldcorp.com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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