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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던 박서보 추모 행렬
미술계 거장 타계...향년 92세
단색화 발전·진화 이끈 선구자
“한국 미술사 영원한 가치” 애도
14일 별세한 ‘단색화 거장’박서보 화백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아흔이 넘은 ‘단색화 거장’은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온라인을 통해 담담히 전했다. 불과 3주 전엔 계절의 변화를 맞으며 가을을 체감했다. “하루 사이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가을인가. 바닷 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오전 타계했다. 향년 92세.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엔 미술계 인사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5일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기도한 후 유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온라인에도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박서보 화백을 중심으로 한 단색화를 해외 미술계에 알리는 데 앞장선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회장은 “고인은 단색화의 거장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었다.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고 애도했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대의 암흑기’에 유년시절을 보내며 굴곡진 우리 현대사 속에서 추상미술을 꽃 피웠다.

묘법 시리즈가 태동한 것은 1960년대였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그렸다. 다섯 살이었던 둘째 아들이 글씨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흉내낸 것이 ‘첫 묘법’이었다. 고인은 “체념의 몸짓을 시도해본 작품”이라고 했다. 첫 묘법이 세상에 나온 것은 친구 이우환의 주선으로 나가게 된 1973년 도쿄 무라마쓰 화랑에서였다.

지난 50여년간 뚝심을 가지고 이어온 고인의 ‘묘법’이 온전히 평가를 받은 것은 불과 10여년 전이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고인을 비롯한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등이 참여한 ‘한국의 단색화’ 전이 열리면서다. 2015년엔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의 병렬전시로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에서 연 ‘단색화’ 전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였다.

그의 1979년작 ‘묘법 NO. 10-79-83’은 2017년 5월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026만 홍콩달러, 당시 한화 기준으로 약 14억7400만원(수수료 포함)에 거래됐고, 이후 수많은 경매에서 현재까지 고인의 작품은 ‘베스트셀러’다. 1975년 ‘묘법 No. 37-75-76′은 지난 10월 5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60만달러(약 35억원)에 팔렸다.

2019년부턴 후진 양성을 위한 재원을 기탁해 ‘기지재단’을 설립했다. 연희동 주택가에 전시 공간을 겸해 설립한 이곳에서 자신의 화업을 정리하고, 청년 작가들을 후원하는 전시를 열었다. 기지재단을 찾는 이들에게 고인은 언제나 짱짱하고 강건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화단의 거장인 그의 이름 옆엔 무수히 많은 영예들이 남았다. 국민훈장 석류장(1984년)과 옥관문화훈장(1994), 은관문화훈장(2011), 대한민국 예술원상(2019)을, 2020년 제40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2020), 금관문화훈장(2021)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화가인 부인 윤명숙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7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 파크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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