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대리인 “과로로 상당한 정신적·육체적 고통”
학교 측은 직업성 질병 ‘확인불가’로 조사서 제출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 추모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헌화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 |
[헤럴드경제=박혜원·박지영 기자]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서 지난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교사 A씨에 대한 순직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학교 측 조사서에 A씨의 우울증 진단 사실이 담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측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A씨의 우울증 진단 사실을 인지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추가로 유족 측에 요청하지 않았다. 학교 측이 우울증 진단 사실을 사망경위서에 포함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A씨의 순직 인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유가족 법률대리인 측은 과도한 업무 및 학교장과의 마찰 등으로 A씨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내용을 담아 군산교육지원청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11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재직한 초등학교가 지난 5일 군산교육지원청에 제출한 사망경위서에는 A씨의 우울증 진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유가족 측 변호인의 의견서에는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불과 10여일 전인 지난 8월 중순께 정신과에서 ‘혼합형 불안 및 우울 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견서에는 ‘A씨가 남긴 유서의 내용과 업무기록을 보면 과도한 업무 및 학교장과의 마찰로 상당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초등학교 측은 사망경위서를 제출하기 전에 A씨의 우울증 진단 내용을 파악했지만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이후 이어진 언론 보도를 통해서다. 산업재해 사건을 전문으로 맡는 정진섭 노무사는 “우울증 진단 사실이 조사서에서 빠진다면 과로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것”이라며 “우울증 진단 사실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러한 정황이 있다’ 정도라도 넣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만 정신과 진단 여부를 조사서에 포함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의무는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해당 초등학교 관계자는 유족에게 진단서 요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A씨 사망 후 언론 보도로 (우울증 진단 관련) 내용을 알긴 했으나 유족에게 직접 묻기는 민감한 사안이고,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요청할 수 없었다”고 했다. A씨의 우울증 진단 사실은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유족 측에 추가로 요청하기 전에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관계자 사이에선 정신과 등 질병 사실이 누락되기 쉬운 순직 신청 절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성원의 개인정보를 알기 어려운 직장(학교) 측이 순직 경위 조사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때문이다.
통상 교사 순직 신청을 위한 사망 경위 보고서는 학교가 전담한다. 그러나 A씨의 경우 유가족 요청에 따라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이 작성하게 됐다. A씨 사망 원인이 학교 내 잘못된 업무분장으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있다는 주장에서다. 이에 따라 교육지원청은 현재 유가족, 학교,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사망 원인 관련 문서를 맡아 취합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교사 순직 승인 신청은 청구인(유족)이 소속 기관(학교)을 통해 사망 경위 보고서 등 자료를 교육지원청에 제출하면 공무원연금공단, 인사혁신처가 차례대로 자료를 검토해 재해보상심의회에서 결정한다. 이 과정의 첫 번째 단계인 보고서 작성을 학교가 맡을 경우, 학교의 책임을 따져묻는 과정이 축소되기 쉽다. 보고서는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이 작성할 수도 있지만 A씨처럼 별도 요청이 있지 않을 경우 일반적으로 학교가 맡는다.
이와 관련해 고봉찬 A씨 유족 법률대리인 변호사는 “각종 자료를 직접 열람할 권한이 없는 학교 측에선 객관적인 데이터만 내고 의견을 내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재석 전북교사노조 위원장 역시 “학교가 사망 경위 조사를 전담한다면 사망과 학교 측 문제 사이의 인과성을 축소해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 업무량을 과로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 주체 간 의견이 갈리고 있다. A씨의 초과근무시간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시스템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대리인 측 의견서에 따르면 A씨는 4·6학년 복식학급을 담당해 주당 29시간의 수업을 진행했다. 전북 지역 초등교사 평균 수업시수는 20.8시간이다.
이 밖에 A씨는 정보·체험학습·생활·방과 후 등 행정 업무도 맡아 지난 3월 전입 후부터 사망 전까지 164건의 일반문서와 58건의 재정문서를 생산했다. 이는 해당 초등학교 소속 교사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정 위원장은 “문서량을 봤을 때 수업을 하지 않거나 문서 생산만 맡았어야 할 정도의 업무량”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교 측에 기록된 초과근무시간은 4~5월 총 15시간에 불과하다. 학교 에 따르면 이는 각각 학생들과 동행한 지역행사 및 학교 내 야영캠핑 관련이다.
법률대리인 측은 기록으로 남지 않은 초과근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고 변호사는 교육지원청에 인터넷 접속기록 및 메신저 내용 등을 정보공개청구했으나 최근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A씨 유족 측에 따르면 A씨는 최근 불거진 체험학습용 ‘노란버스(어린이 통학버스)’와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재택근무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학교 측은 통화에서 “전교 교사 수 자체가 3명이라 불가피하게 업무량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학기 초에 집중됐고 이후로는 줄어드는 추세였다”고 반박했다.
정 위원장은 “고인이 돌봄전담사 관리, 방과후강사 관리, 돌봄교실 간식 구입 등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업무를 과도하게 떠맡았는지 진상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지원청이 순직 신청 사유에 ‘잘못된 업무분장’에 대해서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lee@heraldcorp.compark.jiye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