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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로마 황제 넘본 히틀러의 ‘부끄러운 흔적’ 전시…“이건 독일의 의무”[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뉘른베르크편③]
로마제국 계승하려 했던 히틀러
역사 깊은 뉘른베르크 ‘정치요새’로
지역의 어두운 역사, 과감하게 드러내
“당시 나치와 독일시민, 분리 못해”
유적 파괴하려했던 과거도 ‘반성 계기’
지난달 18일 오전 독일 뉘른베르크시에 있는 ‘나치 전당대회 역사기록관’에서 관람객들이 나치 관련 전시를 보고 있다. 전시에서는 바이마르공화국부터 현재까지 나치 역사의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당시 나치가 독일 사회를 어떻게 지배했는지를 다루고 있었다. 독일 뉘른베르크=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뉘른베르크)=김빛나·박혜원 기자]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년)가 사랑한 도시.’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에 남아 있는 오랜 수식어다. 히틀러는 이 도시에 로마 콜로세움의 1.5배 크기의 나치 전당대회장을 만들고자 했고, 거대 광장을 만들어 나치당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히틀러의 행보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히틀러는 도시의 역사를 이용해 자신이 “로마제국을 계승한다”며 독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뉘른베르크는 과거 신성로마제국 시절 황제가 살던 도시였다. 황제를 꿈꾼 히틀러는 중세 시대에 지어진 뉘른베르크성 안에서 황제의 침실을 사용하며 ‘로마 황제의 재림’을 꿈꾸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탓에 뉘른베르크시민으로서 나치 유적은 다른 독일 시민과는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유적은 도시 역사가 히틀러에 이용당한 ‘흑역사’의 흔적이자 독재자를 강력 지지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악의 증거’다.

‘나치만 나빴나? 당시 시민은?’ 도발적 질문
‘나치 전당대회장 역사기록관’ 전시장에 걸린 거대 포스터. 한쪽에서 바라보면 나치의 선동문구가 가득한 내용이, 다른 쪽에서 보면 고통받는 시민 모습이 담겨 나치당 시절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었다. [독일 나치 전당대회장 역사기록관 제공]

최근 뉘른베르크시는 이 악의 증거들을 활용해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기로 했다. 지난달 18일 오전 10시께 방문한 독일 뉘른베르크시에 있는 ‘나치 전당대회 역사기록관’. 이른 아침부터 나치 역사를 알기 위해 독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시민으로 역사기록관이 가득 찼다.

피부색도, 나이도 다른 시민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전시 설명을 읽고 있었다. 이 역사기록관은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해마다 30만명이 방문할 만큼 널리 알려진 장소다. 역사기록관을 유지하기 위해 독일연방정부,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시에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일부 구역이 복원 중이라 장소가 축소됐음에도 전시는 바이마르공화국 시절부터 현재까지 주요 나치 역사 전반을 빠지지 않고 다루고 있었다. 전시장에 걸린 거대 포스터에는 한쪽에서 바라보면 나치의 선동문구가 가득한 내용이, 다른 쪽 시선에선 고통받는 시민의 모습이 담겨 나치당 시절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었다.

전시를 보러 미국에서 왔다는 쿠르트 라데마허 씨는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라 전쟁역사에 관심이 많다”며 “독일 나치가 등장했던 시대가 현재 미국 상황과 비슷해 놀랍다”고 말했다. 나치 역사를 전시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더 많은 전시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획을 전시한 독일 나치 역사전문가 전시큐레이터 마티나 크리스트 마이어 박사는 “현재의 시선으로 나치 역사를 잘 해석하고, 다음 세대에게 남기고 역사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 독일인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2000년부터 나치 전시 관련 일을 하는 그는 2025년도에 역사기록관에서 새롭게 선보일 대형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마이어 박사는 “왜 우리가 이런 역사기록관을 보존하고 재건하는지 알려주고 싶다”며 “옛날에 있던 전시를 닫고 새롭게 변하려 한다”고 말했다.

‘유적 파괴→복원’ 독일 태도 바뀌어
지난달 18일 독일 뉘른베르크시에 있는 ‘나치 전당대회 역사기록관’ 안에서 독일 나치 역사 전문가인 전시큐레이터 닥터 마티나 크리스트마이어 씨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독일 뉘른베르크=박혜원 기자

과거 뉘른베르크시민이 역사 유적을 파괴한 것에 대해 마이어 박사는 “1960년대 나치 유적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건 당시 독일 시민이 역사의식이 없었던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1973년에 문화재로 보호하자는 움직임 덕에 유적이 보존됐다”고 설명했다.

나치 행보를 과감히 드러내는 역사기록관 전시에는 놀랍게도 히틀러 사진이 없다. 히틀러를 고발하는 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어 박사는 “이전 전시에는 나치가 시민을 선동해 모두 나치를 따르는 분위기였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앞으로는 다르다”며 “당시 독일인, 정치인이 나치당에 가입하고, 나치 사상에 동조한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순진한 시민이 나치에 선동당했다’는 전제에서 탈피한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뉘른베르크가 좋은 도시였고 나치와 당시 시민은 다르다’는 의견이 주류였는데 지금 역사학자들은 사실 ‘나치와 시민을 분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당시 사회분위기부터 시작해 나치에 동조하는 방식 등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보려 한다”고 말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붕괴된 나치 전당대회장 벽을 전시하고 있다. [나치 전당대회 역사기록관 제공]
지난달 18일 방문한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 역사기록관’. 뉘른베르크=박혜원 기자

역사기록관 전시 후반부에는 가로 1m가 넘는 돌이 놓여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뉘른베르크시민이 파괴한 ‘나치 전당대회장’의 벽 일부다. 독일 시민이 나치 흔적을 지우려 했던 행동도 어두운 역사가 돼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마이어 박사는 “이 돌을 전시하는 이유는 과거 독일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며 “과거에는 나치 역사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 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라면 현재는 유적을 보존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미래 세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남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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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헤럴드경제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은 역사적 논쟁 속에 사라지는 한국 근현대사 유적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본 기획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 : 김빛나 기자
팀 구성원 : 김빛나·김영철·박지영·박혜원 기자
지원 :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전체 시리즈〉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인류역사의 수치를 공개하다

[2] 베를린편

-역사 전쟁없는 도시

〈국내편〉

[0] 근현대사 유적지도

[1] 당신이 모르는 6·25

[2] 잊힌 친일 문화 잔재

[3]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4]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binna@heraldcorp.com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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