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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액공제 받으려면 '공시'하라, 어째서 노조만?[김용훈의 먹고사니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0월 1일부터 시행 중인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노동조합과 산하 조직은 오는 11월 30일까지 2022년도 결산 결과를 시스템에 공시해야 조합원이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애써 만든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가 계획보다 석 달 이른 10월부터 시행됐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의 대상이 되는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노조는 총 673개인데, 이 중 82%가 넘는 553개(한국노총 303개·민주노총 249개) 노조가 이른바 양대노총 소속입니다.

조합비 세액공제는 15%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속한 노조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면 앞으로 세액공제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양대노총이 “노동법상 노조 회계 공개 대상은 노조원들인데도 외부 공개를 강제하는 건 자주성 침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은 노조원들이 납부한 조합비로 운영합니다. 조합비를 낸 노조 조합원에게는 당연히 회계장부를 공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정부가 만들어 둔 공간에 이를 게시할 이유는 없습니다. 현행 노조법에 노조의 회계공시 의무가 없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다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말고는 정부가 결정할 수 있죠. 그래서 제도 도입 당위성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노조 활동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이에 상응하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건 비단 노동조합 조합비 뿐만이 아닙니다. 교회나 절 등 종교 단체에 낸 헌금도 조합비와 동일한 ‘기부금’ 명목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줍니다. 종교를 가진 우리 국민은 작년 기준 49%에 달하지만, 종교 단체에 공시 의무를 부여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노조만 ‘세금에 상응하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갖가지 추측이 나옵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당시 윤석열 후보의 경쟁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개지지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다, 상반기 화물연대 파업을 저지한 후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을 지켜본 ‘학습 효과’로 노조를 옥죄는 것이다, 하는 정치적인 분석도 있습니다.

추측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등 노동개혁을 추진하려면 이들 양대노총 힘을 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 상반기 ‘주 최대 69시간제’를 도입하려던 정부는 극심한 반대 여론에 밀렸습니다. 조직 규모가 가장 큰 양대노총 반발이 무척 거셌습니다.

이들의 세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노조 회계공시제도라는 것입니다. 실제 노동계에선 연말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조합원이 늘면 상급단체에서 탈퇴하겠다는 각 단위 노조가 늘어 현재 14.2% 수준으로 추정되는 양대노총 조직률은 더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이런 추측이 사실인 건지, 정부가 무리해서 제도를 만든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는 국회가 아닌 정부가 ‘소득세법 시행령’을 손 봐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관계부처 중 하나인 법제처 심사를 건너뛰었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정황은 더 있습니다. 고용부는 지난 4월 시행령 개정에 앞서 취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습니다. 2850만명에 육박하는 취업자의 의견을 1000명에만 물어본 것도 문제지만, 더 심한 건 1000명 중 조합원 160명을 별도로 추려 ‘조합원의 여론’인 것처럼 발표한 것입니다.

16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설문엔 ‘노조가 조합비를 투명하게 운영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 포함됐습니다. 고용부는 이 중 48.1%는 “아니오”, 46.3%는 “예”라고 답했다며, 공식 보도자료에 “노조에서 조합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약간 높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세액공제 혜택의 대상자인 조합원들조차 노조 회계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더 많다고 답한 만큼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죠.

특히 고용부는 해당 질문에 대한 응답 비율만 공개하고 응답자 수는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는데, 사실 전체 응답자가 160명이란 것을 감안하면 “아니오(77명)”와 “예(74명)”의 응답자 수 차이는 단 3명뿐입니다. 이에 비해 2021년 기준 전국 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293만3000명에 달합니다.

293만3000명 중 단 0.002%가 전체 조합원의 ‘여론’을 대변한 셈입니다. ‘기만’에 가까운 설문결과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정부를 보면 앞으로 발표할 새로운 근로시간제도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집니다. 고용부는 새 개편안을 만들기 위해 6000명을 대상으로 한 대면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부쩍 “양대노총 조직률이 14% 남짓에 불과한데도 과도하게 노동계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 “청년·미조직근로자 등 86%의 의견을 수렴해 노동개혁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86%의 의견을 제대로만 반영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렇다면 정부는 과연 절대 다수인 86%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생각일까요.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고작 77명의 생각을 전체 293만3000명의 조합원의 여론인 듯 발표했던 것과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용훈의 먹고사니즘]은 김용훈 기자가 정책수용자 입장에서 고용노동·보건복지·환경정책에 대해 논하는 연재물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면 언제든 제보(fact0514@heraldcorp.com)해 주세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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