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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오스트리아 엄마한테 혼날래?” 소록도 두 천사 일대기
10월7일 故 마가렛 피사렉 님 장례미사
대한민국에서 한센병을 퇴치한 1등공신
소록도 아이들 학교에서도 기죽지 않아
노벨상추진 만류, “그곳, 참 행복했어요”
43년 봉사한 마리안느님 여생 편하시길..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너, 날 자꾸 못살게굴면, 우리 오스트리아 엄마한테 말할거야!”

오스트리아 출신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 슈퇴거(Marianne Stger·89)와 마가렛 피사렉(Margaritha pissarek,2023년 9월29일 오후3시 작고·향년 88세)은 40년 가량 한국 봉사를 하면서 나환자촌에서 고흥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굳건한 엄마 노릇도 했다.

2023년 10월 7일 오후3시30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요양원에서 장례식이 거행되는, 고인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가 생전에, 소록도에서의 39년 봉사를 추억하며 인터뷰하는 모습.
마가렛 생전에 인스부르크로 병문안을 간, 한살 언니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렛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면, 두 보호자는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들에게 흔한 엄마의 목소리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며 경고하곤 했다고 한다.

▶풀죽은 소록도 아이들 영웅을 가슴에 품다= 주지하다시피 한센병은 유전되지도, 전염되지도 않는 병이기 때문에, 소록도엔 정상적인 아이들이 훨씬 많았고, 아이들은 녹동 쪽 학교를 다녔다. 일제가 환자인 부모와 아이들 떼어놓고, 해방직후 정부가 출산을 금지시킨 것은 순전히 무지에 의한 과도한 조치였다.

두 천사가 오기 전, 소록도 아이들은 녹동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늘 풀이 죽어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안느-마가렛 간호사와 함께 생활한 이후, ‘영웅’을 가슴에 품은 아이들은 당찬 모습으로 탈바꿈했다고, 소록도성당을 이끌었던 김연준 신부는 전했다.

두 영웅을 가슴에 품은 소록도 아이는 억척엄마 같은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풀죽을 필요가 없었다.
엄마 미소를 보이고 있는 마리안느

43년간 소록도 봉사를 자처해 맨손으로 한센병 환자의 상처부위를 손을 만지고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며, 교육을 포함해 생활 전반까지 보살폈다. 단 한푼의 급여를 받지도 않고, 오히려 고국 오스트리아의 기부금과 약재를 받아 이들을 마침내 완치시킨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2005년 “그곳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섬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주민들의 신세를 지는 일이 많아 폐를 끼치고 싶지 않겠다고 느낀 것이다. 이미 한국이 한센병 완치국이라는 국제인증을 받은지 13년이나 지난 때이므로 더 이상 두 사람이 할 일이 없다는 생각도 한 듯 하다.

두 천사의 노력으로 완치된 주민은 어로와 농경으로 소득을 키워나갔고, 그때 그 아이들은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거나 육지로 나가 산업의 역군으로 일했다.

마가렛 간호사가 소록도 봉사는 마친 뒤, 생전에 살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여행갈 한국인이라면 들를만한 좋은 관광지이다. 한국을 위해 애써준 그녀의 흔적을 방문해 추모하는 것도 여행을 두툼하게 해준다.

▶탄식의 마당도 없앴다= 몸이 좋지 않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던 마가렛 피사렉이 지난 9월 29일 오후 3시에 하늘로 떠났다.

한 살 언니 마리안느 슈퇴거씨가 투병중이던 마가렛의 병문안을 가서 정담을 나누는 장면은 한국 TV에도 비쳐진 바 있다.

마가렛은 당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까지 마음 있지. (소록도에)에 마음 놔두고 왔어”라고 말해 고흥군민들은 물론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한국 추석날 하늘로 간 마가렛님의 장례미사는 7일 엄수된다.

마가렛 KBS 방송화면 캡쳐
마가렛 KBS 방송화면 캡쳐. 그녀의 표정에서 아직도 소록도를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이 역력하다.

전염성, 유전성 있다는 수백년 편견은 1962년 2월 마리안느가 오고나서야 깨졌다. 4년 뒤엔 마가렛이 입도했다. 여전히 오스트리아서 생활하고 있는 마리안느가 43년, 마가렛이 39년 소록도 봉사를 했다. 이들은 한센병 환자가 핍박받고 질시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을 과학적 치료를 통해 입증했다.

두 천사는 맨손으로 환부를 확인했고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가져온 치료용 오일을 등을 부은뒤 맨손으로 환우의 온몸을 만지며 청결 소독 치료에 임했다.

소록도에 세워진 마리안느, 마가렛 공적비

고름을 짜서 입으로 빨아내기 까지 했다. 지고지순한 모정으로 환우들을 대했던 것이다.

아울러 오스트리아 부인회 등 기부로 치료제를 들여와 수천명 환우를 하나둘씩 완치시키고 아이들을 길러냈다.

두 간호사의 노력과 설득끝에 감염병도 아니고 유전병도 아니라는 결론을 뒤늦게 내린 정부는 한달에 한번씩만 부모-자식 간 상봉토록 했던 곳, ‘탄식의 마당(수탄장)’을 없애는데 동의했다.

거금도에서 바라본 소록도의 아름다운 풍경
소록도 항공사진. 어린 사슴을 닮았다.

▶어린 사슴 닮은 소록도 지형, 멋진 관광지= 하늘에서 보면 어린 사슴을 닮은 소록도는 해수욕장에서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울창한 송림이 싱그럽기만 하다. 고통의 상징이던 감금실, 검시실, 생식기능을 없애던 단종대 방 등은 이제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환우들이 구워낸 붉은 벽돌의 옛건물 앞마당엔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수목들은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문화재가 된 핍박의 족적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거룩하고 지고지순한 봉사 정신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2017년 서울 롯데월드타워에서 시사회를 가졌고 여러 곳에서 상영됐다. 극장은 눈물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이후 고흥군과 가톨릭, 민간단체는 두 천사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진했지만, 본인들의 만류로 더 이상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포스터

폴란드 태생에 오스트리아 국적인 마가렛 간호사는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구호단체 다미안재단을 통해 1966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파견됐다. 마리안느 언니가 한국에 먼저 가 봉사를 시작한 지 4년 뒤였다.

이들은 공식 파견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아무 연고도 없던 소록도에 남아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한센인들을 돌봤다. 소록도 아이들을 지켜주는 ‘엄마’였던 이들은 수녀님으로 불리기도 하고, 나중엔 ‘할매’라고 불렸다고 한다. 주민들이 두 천사를 얼마나 친근하게 느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온국민 두 천사에 감사= 우리 정부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1972년 국민훈장, 1983년 대통령표창,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여했다. 2000년대 들어 이곳은 문화재가 되었고, 악명높은 흔적들, 치유에 기여한 병원, 두 천사가 살던 집은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은 2016년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들에 대한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과 함께 두 간호사를 모두 초청했다. 마리안느 간호사는 당시 소록도에 다시 올 수 있었지만, 마가렛은 건강상 이유로 오지 못하고 결국, 올해 추석날 운명하고 말았다.

소록도 성당 주임신부 시절 김연준 신부

소록도성당 주임 신부였던 김연준 신부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설립했다. 두 천사에겐 한국이름도 있다. 마리안느는 고지선, 마가렛은 백수선이다. 우리나라 명예국민이며, 대한간호협회 명예 회원이다.

마가렛 간호사 장례 미사는 고인이 생애 마지막 시간을 보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요양원 내 경당에서 현지 시간으로 7일 오후 3시 30분에 열린다. 대한민국 5100만 국민은 마가렛님의 숭고한 봉사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명복을 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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