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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장한 나치 유적 봐도 감탄사 안 나오게” 고민 흔적 곳곳에[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뉘른베르크편②]
‘독일 패망의 상징’ 장소도 유적으로
유적 복원 과정에 효율의 잣대 없어
역사학자들의 정치적 독립도 보장

지난달 19일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에 위치한 채플린 광장 내부. 나치가 만든 이 광장 내부는 높이 20m, 길이 370m의 웅장한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한다. 뉘른베르크=김빛나 기자

[헤럴드경제(뉘른베르크)=김빛나·박혜원 기자] “이곳의 문은 항상 닫혀 있어요. 건물 안이 굉장히 웅장해서 사람들이 내부를 보면 ‘우와~’하고 감탄사를 내뱉죠. 사실 그게 나치의 의도예요. 자신들을 감탄사가 나오는, 멋진 존재로 생각해 주길 바랐거든요.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장소를 이용하고 싶지 않아, 문을 닫아놓습니다.”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 시에서 나치 유적 복원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역사학자 마티아스 크라우스 브라운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19일 뉘른베르크에 위치한 채플린 광장 내부. 독일 나치당이 만든 이 광장 내부는 높이 20m, 길이 370m의 거대한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한다. 10년 동안 이 곳의 복원을 담당했던 브라운 박사는 채플린 광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렸던 장소’.

나치 문양 파괴로 '독일 패망' 상징돼
나치당 행사가 진행됐던 과거 채플린 광장의 모습 [독일 나치 기록연구소 제공]
채플린 광장 건물 밖 모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연합군은 광장 건물 가운데에 있던 나치 상징을 파괴했다. 나치 상징이 폭파되는 사진은 종전을 알리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남았다. 왼쪽은 현재 채플린 광장 모습, 오른쪽은 폭파 당시 사진. [독일 나치 기록연구소 제공]

채플린 광장은 원래 도시의 휴식공간이었다가1930년대 나치가 뉘른베르크를 점령하면서 ‘선동의 장소’가 됐다. 광장에는 도시의 중심인 뉘른베르크 성까지 보이는 위치에 성대한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 가운데에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卐) 조각상이 크게 놓였다. 건물 밖에는 레이저가 설치돼 행사가 있을 때 3㎞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레이저쇼를 열었다.

그러다 나치가 패망하자 뉘른베르크를 점령한 연합군은 채플린 광장의 나치 조각상부터 파괴했다. 브라운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알리는 유명한 사진 2장이 있다. 하나는 독일 채플린 광장 가운데에 있던 나치 상징이 파괴되는 사진, 다른 하나는 소련군이 동독 의회를 점령하는 사진이다”며 “두 사진 모두 독일이 전쟁에 졌다는 상징적인 사진이다”고 설명했다.

무한한 영광을 꿈꿨으나 초라하게 끝난 나치의 역사처럼 채플린 광장도 화려한 모습과 달리 여기저기 무너지고 있다. 지붕이 내려앉은 곳도 있고, 건물 외부는 부서지고 관리가 안 됐다. 지붕에서 비가 새, 비가 오면 내부는 습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뉘른베르크에서는 8만5000유로(한화 약 1억2000만 원)을 투입해 광장 전체를 복원하고 있다. 광장은 원래 목적에 맞게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질 전망이다.

광장 복원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나치 전당대회장과 달리 채플린 광장 복원에 필요한 예산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진 않았다. 브라운 박사는 “절반 정도는 독일 연방정부가 내고 바이에른 주가 25%를 내고, 나머지 25%를 뉘른베르크 시가 내고 있다”며 “예산을 뉘른베르크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 연방 정부와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적 보존 원칙’ 깨지지 않아
지난달 19일 독일 바이에른 주 뉘른베르크 채플린 광장에서 역사학자 마티아스 크라우스 브라운 박사가 전당대회장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뉘른베르크=박혜원 기자

“‘유적이 되면 복원해야 한다.’ 독일 헌법에 명시돼 있다. 강력한 법이라 정치인도 못 바꾼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의 영향력이 강하다. 우리(역사학자)들이 끊임없이 주장할 텐데 어떻게 바꿀 거냐.”

비용은 힘에 부치지만 유적 복원 과정에 효율의 잣대를 들이대진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문화재법 때문이다. 1976년에 독일에서 문화재법이 마련되면서 국가 혹은 지방정부, 개인이 소유한 유적은 모두 복원해야 한다는 명분이 마련됐다. 채플린 광장뿐만 아니라 뉘른베르크 시에 있는 모든 나치 유적이 모두 적용된다. 어두운 역사를 지닌 문화재든, 중세시대 유적이든 상관없다.

역사학자들의 정치적 독립이 보장된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브라운 박사를 제외하고 뉘른베르크시에서 나치 유적과 관련해 정치인과 소통하는 역사학자는 7명이다. 이들 모두 시 소속이 아니다. 브라운 박사는 “시에 소속돼 있으면 원하는 말을 제대로 못해서 독립된 상태로 정치인을 설득한다”며 “또 역사학자가 정치적 성향에 맞춰 말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라운 박사 역시 시에서 채플린 광장 복원을 담당하고 있지만 정식 직원이 아니라 임시로 근무하고 있다.

브라운 박사는 “나치 유적은 정치를 종교활동처럼 이용한 장소”라며 “앞으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장소로 되돌려놓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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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헤럴드경제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은 역사적 논쟁 속에 사라지는 한국 근현대사 유적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본 기획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 : 김빛나 기자
팀 구성원 : 김빛나·김영철·박지영·박혜원 기자
지원 :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전체 시리즈〉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인류역사의 수치를 공개하다

[2] 베를린편

-역사 전쟁없는 도시

〈국내편〉

[1] 근현대사 유적지도

[2] 당신이 모르는 6.25

[3] 잊힌 친일 문화잔재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binna@heraldcorp.com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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