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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팝 ‘외토벤’의 시대…“스톡홀름에만 K-팝 작곡가 수십 명” [인터뷰]
예스퍼 토르손 엑스포트 뮤직 스웨덴 대표
조용필부터 뉴진스까지…10여년 넘게 협업
‘킬링 포인트’ 될 멜로디, 완벽주의 성향 닮아
스웨덴 음악가들의 국외 진출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엑스포트 뮤직 스웨덴을 이끌고 있는 예스퍼 토르손 대표는 “2010년대부터 북유럽 작곡가들과 K-팝의 결합이 좋은 결과를 냈고, 그것이 상당히 오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일바 딤버그(뉴진스), 안드레아스 오베르그(샤이니, 엑소, 레드벨벳, NCT127, 더보이즈, 오마이걸), 루이스 프리크 스벤(방탄소년단 정국, 트와이스), 마리아 마르쿠스(조용필, 레드벨벳)….

10여년 전부터 K-팝 업계에서 두각을 보이는 ‘낯선 이름들’이 있다. K-팝 팬덤은 이들을 ‘외토벤’이라고 부른다. 외국인과 베토벤의 합성어. 외국인 작곡가를 부르는 ‘별칭’이다. 그 중에서도 북유럽 작곡가와 K-팝의 궁합이 좋다. 가왕 조용필부터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까지, 2세대 걸그룹 소녀시대부터 4세대 뉴진스까지, 무수히 많은 히트곡의 크레딧에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작곡가들의 이름이 길게 자리잡고 있다.

“2010년대부터 북유럽 작곡가들과 K-팝의 결합이 좋은 결과를 냈고, 그것이 상당히 오래 유지되고 있어요.”

아시아 최대 뮤직 마켓인 뮤직, 엔터테인먼트 페어 ‘뮤콘 2023’ 참석차 한국을 찾은 예스퍼 토르손 대표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스웨덴 음악가들의 국외 진출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엑스포트 뮤직 스웨덴을 이끌고 있다.

‘좋은 시너지’의 비결은 서로의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도에서 나온다. 예스퍼 토르손 대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은 이후 K-팝에 대한 국제 무대에서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현재의 K-팝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다. 랩, 댄스, 멜로디 등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를 담고 있고, 힙합,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고 말했다.

뉴진스 [어도어 제공]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의 음악은 과거부터 한국 대중음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본질’과 닮았다. 토르손 대표는 “스웨덴 음악과 한국 음악이 딱 맞는 접점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멜로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K-팝은 탈장르를 추구하며, 다양하게 혼합된 ‘믹스 팝’의 형태를 띄고 있으면서도, 이 안에 대중의 귀를 단박에 사로잡을 멜로디를 숨겨둔다. 1980년대 가왕이 등장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던 시절부터 발라드, 댄스음악이 강세를 이루던 1990년대, 보컬그룹이 대거 등장한 2000년대,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K-팝이 장악한 시대에도 한국 대중음악엔 소위 말하는 ‘꽂히는 멜로디’를 놓지 않았다. 한국 제작자들에게 뿌리 깊이 박힌 ‘멜로디 우선주의’가 K-팝에 있어선 한국과 북유럽 감성의 ‘킬링 포인트’로 담겨, 세계 무대를 사로잡는 것이다. 게다가 일렉트로닉 뮤직이 강세인 스웨덴 음악의 특성상 K-팝의 멜로디와 최고 수준의 사운드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일조했다. 토르손 대표는 이를 “음악의 결이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작곡가의 큰 장점은 열린 마음이다. 사실 전 세계에서 K-팝 제작자들은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여러 차례의 곡 수정을 요구하며 ‘완벽’을 요구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북유럽 작곡가들이 이러한 요구를 잘 받아들여주는 것은 물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 완벽주의 문화가 닮아 K-팝과의 시너지가 있다”고 본다. 반면 미국의 경우 한 번 만들면 대체로 수정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

토르손 대표는 “매력적인 멜로디를 쓰면서 K-팝 제작자들의 니즈를 충족하고, 그러한 경험치가 쌓여 노하우를 알아가게 됐다”며 “특히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원하는 멜로디와 랩이 어떤 느낌과 어떤 구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데, 오랜 교류를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스웨덴 음악 창작자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국가 톱5 중 하나다.

스웨덴 음악가들의 국외 진출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엑스포트 뮤직 스웨덴을 이끌고 있는 예스퍼 토르손 대표는 “2010년대부터 북유럽 작곡가들과 K-팝의 결합이 좋은 결과를 냈고, 그것이 상당히 오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스웨덴에선 K-팝 창작자만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도 보고 듣는 음악으로서 K-팝의 인기가 상당하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스포티파이는 ‘스트리밍 시대’를 이끈 것은 물론 ‘초국경 음악’ 시대를 불러왔다. 토르손 대표는 “스트리밍 시대가 되며 K-팝에 대한 접근이 높이 높아졌다”며 “20년 전만 해도 영미 팝이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 스웨덴의 20대를 상징하는 음악은 미국 팝과 K-팝이다”라고 말했다.

내수시장이 작은 스웨덴의 음악 창작자들이 전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조기 교육’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한 때는 미국 팝을 장악했던 스웨덴 작곡가들은 이제는 K-팝에서 세를 넓혀가고 있다. 토르손 대표는 “5~10세 사이의 아이들이 악기, 작곡 등을 배우는 음악 교육 시스템이 구축돼있어 어린 나이부터 뮤지션을 발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며 “최근 몇 년 사이엔 K-팝의 영향으로 작곡 학원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K-팝 전문 작곡가들이 스톡홀름에만 수십 명에 달한다.

“과거의 스웨덴은 음악 장르가 획일화돼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스트리밍 시대가 되며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됐고, 그러면서 장르 자체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지고, 두려움이 사라지며 스웨덴 음악가들이 미국, 한국에서도 두각을 보이게 됐다고 봅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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