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나홋카 항에 정박한 러시아 유조선 [로이터]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국제 유가가 연중 최고치를 돌파하면서 서방국의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가 이미 유명무실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지난 8월 러시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75%가 서방업체가 제공하는 보험 없이 운송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 봄 약 50%의 원유 수송량이 서방 보험 없이 운송된 것과 비교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FT는 “러시아가 가격 상한선을 우회해 국제 시장 가격에 근접한 가격에 더 많은 석유를 판매하는 데 능숙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지난 5월 러시아는 하루 약 300만배럴의 우랄산 원유와 에스포 원유를 해상으로 수출했지만 8월에는 그 양이 하루 250만배럴로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서방 보험에 가입한 선박이 운송하는 원유 양이 절반 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전체 원유 수출량은 줄었지만 러시아는 가격 상한제를 우회해 보다 높은 가격에 원유를 판매하면서 이득을 챙기고 있다.

주요 7개국(G7)이 시행 중인 가격 상한제에 따라 배럴당 60달러 이상의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선박은 서방 기업이 제공하는 보험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 G7은 서방 운송 서비스에 의존해 시장에 석유를 공급해 온 러시아가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행 초반 러시아산 원유는 배럴당 40달러까지 하락하며 국제 유가 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돼 제재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는 서방의 보험이나 기타 서비스 없이도 운항할 수 있는 유조선으로 구성된 이른바 ‘그림자 함대’를 구축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지난 7월 이후 러시아의 주요 수출 유종인 우랄유 평균 가격은 가격 상한제 기준인 배럴 당 60달러를 넘어섰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학(KSE)은 7월 이후 원유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러시아가 자국산 원유의 할인폭을 줄이는 데 성공함에 따라 올해 원유 판매 수입이 지난해보다 최소 150억달러(20조원)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는 나아가 최근 경유와 기타 연료의 수출을 중단하며 국제 석유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경유 판매국 중 하나다.

FT는 “이같은 변화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유 판매 수입을 제한하려는 서방의 노력에 타격을 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벤 힐겐스톡 KSE 교수는 “러시아가 원유를 운송하는 방식을 바꿨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가격 상한선이 의미 있게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가 더 많은 영향력을 가졌을 때 가격 상한제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