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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미집’ 송강호 “그래 이게 영화지…극장의 매력 다시 느껴”[인터뷰]
광기 어린 영화 감독으로 변신
“카타르시스·희열 함축된 영화”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김지운 감독님은 영화적인 장르의 변주를 통해서 새로운 영화를 찍으시는 분이에요. 작업할 때마다 영화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어서 늘 설렙니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해요. 감독님이 어떻게 또 사람을 괴롭힐까 하는 두려움이 있죠.”

‘칸의 남자’ 송강호는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김지운 감독과 다시 작업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김 감독의 신작 ‘거미집’에서 김열 감독으로 분했다.

‘거미집’은 1970년대 걸작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이 배우들과 결말 장면을 다시 찍으면서 겪는 좌충우돌을 그린다. 영화 ‘놈놈놈’, ‘달콤한 인생’ 등 굵직한 작품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이 약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송강호와는 ‘밀정’ 이후 7년 만에 의기투합한 다섯 번째 작품이다. ‘거미집’은 지난 5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송강호가 맡은 김열 감독은 싸구려 치정극 감독이라고 멸시 받지만, 반드시 걸작을 만들고 말겠다는 열정과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송강호는 이번 역할을 통해 감독이라는 직업의 무거운 부담감을 체험했다고 털어놨다.

“감독들은 카메라 뒤에서 배우들을 지켜보니 편할 거라고 피상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고뇌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일개 배우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어마어마한 세계라는 걸 간접적으로 느꼈죠.”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김열이 극 중에서 찍는 스릴러 영화는 흑백으로 나온다. 흑백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70년대 특유의 발성과 말투를 그대로 재현한다. 송강호는 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흥미진진했어요. 흑백이다 보니 되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들어가서 연기를 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배우들의 열정과 광기 어린 연기가 보기 좋았어요.”

그는 김열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참고한 실제 감독은 없었다. 다만 김열과 김지운 감독의 열정만큼은 상당히 일치한다고 귀띔했다.

“혼돈 속에서 영화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놈놈놈’ 촬영 현장을 떠올리게 했어요. 중국 둔황 사막에서 100일 동안 촬영하는데, 내일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 속에서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이 있지만 다 찍진 못하는, 열정이 넘치는 광기의 도가니 속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오버랩 되더라고요.”

‘거미집’의 볼거리는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영화 현장에서 각기 다른 욕심을 가진 배우들이 주고 받는 티키타카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송강호는 이러한 배우들의 앙상블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였던 2000년대 전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고 전했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을 찍었던 약 25년 전의 현장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혼자 혹은 둘이서 하는 연기는 많이 했는데 이렇게 5~6명이 한 공간에서 앙상블을 맞춰가면서 밀도감 높게 작업한 건 오랜만이었거든요.”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여러 배우들의 합과 티키타카가 생명인 만큼 영화에서 리듬감 유지는 우선 순위로 여겨졌다.

“리듬감 없이 영화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시간들이 0.5초, 1초가 쌓이다 보면 영화가 지루해지거든요. 그런 시간을 없애기 위해 최대한 리듬감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죠.”

이러한 작업은 곧 영화의 매력을 다시 느끼게 해줬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다른 매체가 아닌, 영화만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온전히 담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거미집’을 찍으면서 ‘그래, 이게 영화지’ 늘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2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선 모든 에너지가 함축되거든요. 카타르시스와 희열이 꽉 차 있어요. 그것이 폭발했을 때 영화만의 매력이 느껴지죠. 영화가 다시 극장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울고 웃는 그 공간과 메커니즘 자체가 그리웠어요.”

‘거미집’의 볼거리 중 하나는 정우성, 강태구, 염혜란 등 유명 배우들의 특별 출연이다. 특히 정우성의 활약은 돋보인다. 정우성은 김열의 스승인 신 감독으로 등장해 좌절감을 느끼는 김열을 위로하고 그의 광기를 더욱 자극한다.

“우성이가 ‘거미집’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새로웠어요. 광기가 튀어나오는 게 너무 놀라웠죠. 그때 우성이가 지방에서 ‘서울의 봄’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했죠. 하하. 이틀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찍어줬는데, 마음과 정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동료 배우로서 참 감동적이었고 맘이 찡했죠.”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거미집’은 ‘칸의 남자’인 그를 다시 칸에 입성하게 해줬다. 올해로 8번째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남우주연상 수상자의 자격으로 시상자로서 무대에 섰다. 칸이 익숙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긴장된다는 게 그의 속내다.

“영화제의 동선과 절차엔 익숙하지만 매번 긴장되는 게 사실이에요. 맘은 익숙하지 않거든요. 늘 새로운 작품으로 새로운 분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되겠어요. 경쟁과 비경쟁을 떠나서 항상 떨리는 건 똑같아요.”

30년 이상의 배우 생활 동안 그가 남긴 족적은 기록적이다. 칸 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유수 영화제나 비평가협회에서 받은 상만 9개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상을 휩쓴 것은 물론, 그의 주연작 4편이 천만 영화로 등극했다. 지난 2020년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배우 25인’ 중 한 명으로 뽑혔다. 그는 이러한 탄탄한 배우 생활의 원동력으로 한국 영화의 발전을 꼽았다.

“‘거미집’처럼 한국 영화가 항상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흥행이나 소통에 실패할지언정 이런 시도들이 없다면 정말 틀에 박혀있는 영화만 계속 볼 수 밖에 없거든요.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모습을 찾는 그런 작품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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