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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춰진 역사 속 위대한 레이스를 공유하고 싶었다”
영화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마라톤 전설 세 인물 승리 실화
특정인물 일대기보다 더 매력적
침체된 韓영화, 中·日 협업 필요
강제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특정 선수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였다면 아마 끌리지 않았을 겁니다. 성격과 서사가 다른 세 인물이 하나의 목표로 협업하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많이 알려진 손기정 선수 외에 감춰진 역사를 끄집어내서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죠.”

강제규 감독은 지난 15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1947 보스톤’을 연출하게 된 계기를 이같이 말했다.

▶실화라 조심스럽게 접근...배우들 건강도 변수=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1947 보스톤’은 1947년 태극마크를 달고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서윤복의 실화를 그린다. 서윤복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의 주역 손기정과 남승룡의 지도를 받았다. 당시 손기정은 올림픽 시상대에서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육상을 강제로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일제 치하를 벗어나자 마라톤 후배 육성에 본격 나섰다.

강 감독은 역사적인 인물이 있는 실화를 영화로 다루는 만큼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실제 이야기를 왜곡 없이 전달하되 영화적 재미도 더해야 하는 것이 과제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방대한 인물 자료를 검토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등 고증에 힘썼다.

“영화의 속성상 역사적인 사실만 가지고 영화를 구현할 순 없기 때문에 인물을 어디까지 조명하고 어디까지 창작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실화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보폭이 작은데 유족들의 요구 사항도 있어서 이를 절충하기 쉽지 않았죠. 그래도 그 입장을 알게 되면서 더 공부하게 됐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단연 보스턴 마라톤 대회 장면이다. 실제 촬영은 보스턴이 아닌 호주 멜버른에서 이뤄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찍어야 하는 탓에 고생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배우들이 촬영 도중 탈진하거나 다칠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외국인 배우들의 경우에도 마라톤 경험이 있는 배우들을 중심으로 보내달라고 했죠. 그래도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임시완 배우는 오히려 수 개월 간 몸을 만들고 와서 잘 버틴 것 같아요”

영화는 해방 직후 공식적인 국가 정부도 수립하지 않았던 시기의 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라톤 선수들의 위대한 승리가 가져다주는 감동도 극적으로 그린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성취했던 위대한 승리가 관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강 감독은 바랐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승리의 역사 한 페이지가 잘 전달되고 용기를 줬으면 좋겠어요. ‘1947 보스톤’은 거대한 벽을 뚫고 위대한 도전을 해낸 역사의 기록입니다”

▶‘韓 영화 르네상스’ 이끈 강제규... “영화계 기반 굳건해야”=강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판타지 멜로의 장을 열었고, 3년 뒤 ‘쉬리’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꽃 피우게 했다. 그리고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두 번째 천만 영화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9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성장기에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불신받던 한국 영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죠. 그때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한국 영화의 도약은 없었을 겁니다”줄곧 승승장구하던 강 감독은 2006년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 감독 최초로 미국 최대 엔터테인먼트·스포츠 기획사인 CAA에 소속되면서다. 그러나 CAA에 몸 담은 동안 딱히 내놓은 작품은 없었다. 당시 오랜 기간 준비했던 SF(Science Fiction)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으나 CAA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반대로 CAA가 제안했던 수십여 편의 작품은 강 감독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준비하고 있던 SF 영화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CAA는 답답해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중심을 잡아주고 조언해줄 프로듀서가 옆에 있었다면 맘이 움직였을 것 같아요. 당시 혼자 고집을 많이 피웠죠”

큰 소득 없이 만 4년 만에 귀국한 강 감독은 2011년 전쟁 블록버스터 ‘마이웨이’로 관객들을 다시 찾았다. 이후 중국과 함께 판타지 SF 대작 제작에도 나섰다. 그러나 한한령이 터지면서 하루 아침에 무산됐다. 그렇게 그의 SF의 꿈은 두 번이나 좌절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SF 도전을 꿈꾼다.

“영화의 동력은 상상인데, 가장 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SF에요. 언젠가는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근미래를 다룬 SF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한국 영화가 다양한 실험을 해왔지만 여전히 SF는 취약하거든요”

강 감독이 연출에 입문한 지 올해로 30년. 영화계에선 대선배나 다름없다. 그런 만큼 그는 후배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영화계의 기반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어요. 때문에 건강한 환경과 토양을 만드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어요. 이와 관련해 제가 일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강 감독은 침체된 영화계가 다시 살아나려면 시선을 국내가 아닌 외부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 국가처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 협업해 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시아 펀드 등을 결성해서 주변국들과 영화를 공동 기획·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선택지가 많으면 위기가 닥쳤을 때 타개하기 더 수월하거든요. 다만 국제 정세가 현재 경직돼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겁니다. 국제 관계가 개선된다면 국내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폭을 좀 더 넓게 가져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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