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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예권 “애정과 애착으로 완성한 투혼의 시간”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년 기념 앨범
오는 23일부터 11회 리사이틀 투어
“모든 것 쏟아냈지만, 가슴 아픈 앨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3년 만에 데카에서 발매한 신보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Rachmaninoff, A Reflection)으로 돌아왔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투혼의 시간’이었다. “극한에 몰렸을 때 특별함이 나온다”며 뒤늦게 ‘긍정 회로’를 돌렸지만,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신력’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육체의 고통 앞에선 멘탈도 바스라졌다. 부비동염에 편도선염, 고열까지.... 녹음과 동시에 예비군 훈련에도 다녀오며 엉망진창이 된 몸 상태로 지난 6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새 앨범을 녹음했다. 3년 만에 데카에서 발매한 신보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Rachmaninoff, A Reflection)이다.

최근 새 앨범으로 돌아온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녹음 당시를 떠올리며 “조금은 가슴 아픈 앨범”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쏟아냈지만, 아쉬움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는 컨디션이 100%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는 “아픈 상황을 잘 견디는 편이지만, 스스로 관리를 못했다”며 자책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사력을 다했다. 녹음 첫날엔 수액을 맞으러 병원에 들르기도 했다. 이틀 간의 녹음을 마친 뒤엔 아침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그는 “녹음을 마친 이후엔 빨리 듣고 피드백을 보냈어야 했는데, 꽤 오랜 시간 잠수를 타버렸다”며 “소속사에선 제가 죽은 줄 알고 베를린으로 가야하나 고민을 했다더라”며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녹음 버전 확인이 늦어진 것은 그만큼 이번 앨범의 작업 과정이 순탄치 않아서다.

“앨범을 들으면 그때의 상황들이 떠올라 복잡한 생각이 들까봐 다시 듣기가 어려웠어요. 몇 주가 지나버려 (주변에) 불편을 많이 끼치게 됐어요. 완성된 버전을 들어보니 재료(녹음 원본)를 잘 다듬어주셔서 만족스러운 앨범이 나왔어요.”

앨범의 제목은 ‘리플렉션’. 완성된 앨범으로 손에 들고 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담게 됐다. 선우예권은 “어두운 밤바다의 잔잔한 물결에 반영된 달빛을 좋아한다”며 “통영에서 녹음을 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밤바다와 꽉 찬 달을 봤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고 말했다.

앨범엔 그 마음이 온전히 담겼다. 무수히 많은 국제 무대에 서고, 한국인 피아니스트 중 최다(8회) 콩쿠르 우승이라는 역사를 쓰며 자신의 이름을 꿋꿋하게 증명했던 그에게 이번 녹음 과정에서 ‘변수’는 있었지만, 그 결과물은 ‘애정과 애착’으로 완성됐다.

“ ‘리플렉션’은 여러 가지 뜻이 있어요. 이 앨범이 저를 투영하기도 하고, 앨범을 보면서 저를 점검하겠다는 의미도 담았어요. 거울을 바라보듯 어떤 때는 보기 싫기도 하지만, 그 또한 내 모습이기에 본연의 모습을 직면하고 싶었어요. 앨범의 타이틀처럼 (녹음 당시의) 제 모습도 회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앨범 같아요.”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다. 선우예권에게 2017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의 우승 트로피를 안겨준 곡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현대 피아노를 너무 잘 아는 작곡가예요. 물감을 가지고 다양하게 색칠하고, (연주자가 해석할) 재료를 남겨뒀어요. 그만큼 고충을 겪을 수밖에 없기도 하죠.”

이번 앨범엔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두 개의 변주곡인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을 담았다. 또 첼로 소나타의 피아노 편곡 버전 3악장과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편곡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 전주곡 작품번호 3번 중 2번, 23번 중 5번 등 총 6곡으로 구성했다.

선우예권은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들으면 넓은 바다를 저공 비행 하는 느낌이 든다”며 “길게, 길게 호흡하는 부분이 곡선을 이루는 게 아니라, 선율 안에서 힘의 완급 조절이 이뤄지는 게 특징적이다. 그 힘의 밸런스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 음반을 내며 변주곡을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변주곡은 작곡가들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담아 꾸리는 장르”라며 “라흐마니노프라는 작가를 더 잘 들려드리기 위해 메인 곡으로 두 변주곡을 골랐다”고 했다.

특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선우예권에게 유독 각별한 곡이다. 이 곡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17세 즈음이었다. 그는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몰랐던 시절, 스스로는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끼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처음 배웠던 곡”이라며 “라흐마니노프가 내 감정을 들끓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애정이 깊은 곡인 만큼 선우예권 만의 색채를 만날 수 있는 음악으로 완성됐다. 그는 “(이 곡은) 거리감, 외로움, 그리움, 소망 등을 담고 있다”며 “이 모든 감정이 도입부 주제부터 마지막까지 한 호흡으로 움직이는 등 라흐마니노프의 확고한 형식을 통해 전달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리듬을 구축하는 방식은 복잡하지만 짜릿한 전율을 준다”고도 했다. 다른 곡들 역시 라흐마니노프를 생각했을 때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작품으로 선택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선우예권은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23일부터 내달 20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진행한다.

그는 “(음악을 통해) 힘과 위로가 되고 싶다고는 하지 않겠다”며 “무슨 감정을 느끼든 그게 정답이고, 제 바람은 이 음악이 그저 한 분 한 분의 마음과 함께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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