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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파 배우 김재화 “‘진짜’가 돼야 캐릭터가 산다” [이현정의 프리즘]
데뷔 약 20년… 감칠맛 더하는 배우
합창·탁구·물질 등 전문 훈련 ‘OK’
배우 김재화가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어딜 가든 글귀나 문장을 꼭 봐요. 음료수를 마시더라도 상표 글을 유심히 보죠. 무언가를 봤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캐릭터를 만들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데뷔한 지 20년이 지난 배우 김재화는 카멜레온처럼 색다른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한다. 그는 승부욕 강한 중국 탁구 선수로 분했다가 젊은 로스쿨 학생으로 변신하고, 순박한 해녀로 물질하다가도 좌절감에 빠진 엄마로 바뀐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개성 있는 그의 연기는 작품의 감칠맛을 살린다. 최근 서울 헤럴드스퀘어에서 그를 단독으로 만나 연기 인생을 되돌아봤다.

김재화에게 예술은 일상이었다. 할아버지는 조각을 취미로 하는 의사였고, 다른 가족들은 시와 미술을 업으로 삼았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셈이다. 두 여동생도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화, 김승화다.

배우 김재화가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그러나 그가 어릴 때 키운 꿈은 연기자가 아닌 국악인이었다. 당시 영화 ‘서편제’에서 나온 판소리를 곧잘 따라하는 모습에 학교 선생님은 김재화를 국악고에 추천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국악 선언에 당황한 부모가 이를 말렸고, 그는 차선책으로 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됐다.

그는 “처음엔 연출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카메라를 만져보니 낯설더라”며 “그래서 연극으로 옮겼는데, 연극은 그냥 어릴 때부터 하던 놀이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연기에 입문한 김재화는 극단 생활과 동시에 국악 뮤지컬과 단편 영화계에서 활동하며 보폭을 넓혔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발을 들인 건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오디션을 통해 뽑힌 영화 ‘하모니’를 통해서다. 그는 교도소에 꾸려진 합창단에서 트러블메이커로 통하는 권달녀로 분한다. 김재화는 ‘하모니’가 그의 터닝 포인트이자 ‘첫사랑 같은 존재’라고 했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 이름을 쓸 때 장난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김재화’라고 쓰곤 했어요. 영화제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봐요. 어느 순간 ‘영화를 안 찍는데 영화제를 어떻게 가지? 영화를 찍어야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프로필 사진도 찍고 오디션도 봤어요.”

합창, 탁구 이어 물질까지…고강도 훈련 전문 배우

영화 '코리아' 스틸'
영화 '밀수'에 출연한 김재화(오른쪽) [NEW 제공]

김재화가 대중에게 크게 각인된 영화는 ‘코리아’다. 그는 당시 중국 탁구 선수 덩야핑을 모티브로 한 덩야령 역할을 맡았다. 극중에서 그는 프로 선수에 버금가는 탁구 실력을 보이며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혔다. 당시 받은 탁구 훈련 기간만 4개월에 달한다.

그는 유독 강도 높은 훈련을 필요하는 영화에 자주 출연했다. 합창단 노래 연습을 했던 ‘하모니’와 탁구 연습에 매진했던 ‘코리아’는 물론, 올해 개봉한 ‘밀수’에서도 해녀로 분하기 위해 수개월간 수중 훈련을 받았다.

이러한 훈련이 부담되진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더 재밌고 감사한 일”이라며 “작품 들어가기 전에 배우들과 미리 호흡을 맞출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유독 코미디 장르가 많다. 최근 주연을 맡았던 ‘익스트림 페스티발’을 포함해 ‘롤러코스터’, ‘액션 히어로’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그에게 감춰져 있는 코미디 욕심이 발현된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웃기게 해주고 싶은 맘이 맘 속에 깔려 있었어요. 사람들이 저로 인해 감정적인 변화를 느끼는 게 하는 게 좋았죠. 그래서 코미디언들을 동경해요.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했던 것도 개그우먼팀을 실물로 보고 싶어서 간 거였어요. 그분들의 재치와 연기력이 존경스러워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여러 색채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경엔 “가장 재있는 건 몸으로 캐릭터를 창작하는 작업”이라며 “혼자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 때 더 재밌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배우라는 직업은 어쩌면 그에게 천직인 셈이다.

아들 젖먹이다 촬영장 달려가…돌아오는 건 미안함
배우 김재화가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김재화가 출연한 연극, 영화, 드라마만 약 90여 편에 이른다. 그는 특히 ‘코리아’ 이후 쉼 없이 달려왔다. 그 와중에 두 연년생 아들도 낳았다.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일과 육아의 병행은 인생 최대 난제였다. 출산 직후 몸 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촬영장에 나가기도 했다.

그는 “당시 ‘지금 작품을 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캐스팅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촬영을 마치고 그를 맞는 건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아니라 죄책감과 미안함 뿐이었다. 양가 가족들이 자녀들을 봐줄 형편이 안돼 부부가 육아를 오롯이 맡았고, 남편이 결국 일을 그만두고 내조와 육아에 전념했지만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때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만 할 수 있는 배역을 찾기도 했다.

그는 “아이를 낳으면 주변에서 도와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우리만 동떨어진 채 외딴 섬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1년 전 가족들과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 간 것도 이런 미안함에서 비롯됐다. 배우 생활에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가족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덕분에 서울과 양양을 오가는 시외 고속버스는 이제 일상이 됐다.

그는 “원래 2주만 일을 쉬어도 근질근질한 편인데 어느 순간 가족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일 바빴는데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크다”고 토로했다.

올해만 작품 다섯 편…“살아있는 캐릭터가 최우선”
배우 김재화가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그가 출연한 작품은 올해에만 다섯 편에 달한다. 영화 ‘길복순’, ‘밀수’, ‘익스트림 페스티발’에 이어 영화 ‘화사한 그녀’와 ‘그녀에게’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익스트림 페스티발’과 ‘그녀에게’는 그의 주연작이다. 발달 장애 자녀를 키우는 여성 기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녀에게’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그는 “양양에 갔던 시점에 제의를 받은 작품”이라며 “육아로 고민하던 시점이라 이 인물에게 좀 배워야겠다는 자세로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다양한 색채의 연기를 했지만, 연기에 대한 원칙은 한결 같다. 그의 시선을 늘 캐릭터에 두는 것이다.

“예전엔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감독의 연출 방향이나 작가의 대사 한 줄에 ‘진짜’로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요. 제가 생각했던 대로 끌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독과 작가들이 구상했던 인물과 제가 생각한 인물을 잘 매치해야 캐릭터가 살아나거든요.”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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