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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년후견 10년]6배 늘어난 후견사건…“초고령화사회서 어려워도 가야 할 길”
성년후견 제도 시행 10주년 맞이
서울가정법원, ‘제2회 한국후견대회' 이틀간 개최
전문가들 “아직 제대로 정착했다고 보긴 어렵다”
일본은 한국보다 13년 더 빨리 후견제도 시행
9월 12~13일 이틀간 제2회 한국후견대회가 열렸다. [서울가정법원 제공]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발달장애가 있는 A(33)씨에겐 후견인 ‘선생님’이 있다. 9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맺은 인연이다. 선생님은 A씨가 이사할 때, 돈 관리가 필요할 때 도움을 준다. A씨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며 독립해 생활하고 있다. A씨는 “선생님 덕분에 동생한테 용돈도 준다”고 말했다.

#80대 기초생활수급자 B씨는 홀로 지낸다. 자녀 2명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은 뒤엔 최근에 만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이웃한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는 문제가 반복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B씨의 후견인이 이웃한테 사정을 알리고, 생활비를 관리해 주고 있다.

성년후견 제도가 올해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성년후견제는 발달장애, 치매 등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아 사회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다. 법원이 선임한 ‘제2의 어버이’가 생기는 셈이다. 후견인은 가정법원의 관리 하에 이들의 의사결정을 돕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서울가정법원은 한국후견협회와 12~13일 이틀간 '제2회 한국후견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번 대회는 지난 10년 간 운영 성과를 평가하고, 전망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엔 최호식 서울가정법원장,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소순무 한국후견협회장 등이 참가했다.

이날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후견사건은 시행 첫해인 2013년엔 1833건에 불과했지만 2022년엔 1만1473건으로 시행 첫해보다 6배 이상 급증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매년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 중인 우리나라에서 후견제도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루”라고 밝혔다.

후견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서울가정법원 51단독 재판부의 최근 1년(2022.7~2023.6) 진행 사건 통계를 보면, 청구 목적은 재산보호가 246건 중 223건(약 91%)으로 가장 많았다. 신상 보호는 23건(약 9%)으로 저조했다. 재산보호의 구체적인 유형은 부동산 관리가 80건(약 36%)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예금 관리가 30건(약 13%), 보험금 수령이 24건(약 11%), 상속 관련(약 9%)이 21건으로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 “성년후견, 아직 제대로 정착했다고 보긴 어려워”

일선 법관·로스쿨 교수·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성년후견 제도가 우리나라에 아직 제대로 정착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공통으로 평가했다.

박인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정법원에서 성년후견을 개시할 때 본인(피후견인)의 의사에 반해 후견이 개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동혁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도 “실무적인 여건 부족으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본인에 대한 대면 심문이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후견 청구의 목적이 재산 보호에 집중된 것도 문제라고 했다. 정혜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보호 대상을 재산적 법률행위로 제한함으로써 복리에 관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후견제도가 신청인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이념으로 도입된 것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사건은 급증했는데, 후견감독 전담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도 지적됐다.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후견감독 전담 인원은 총 5명이었다. 1인당 1233명 이상을 감독해야 하는 셈이다. 정동혁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후견 감독 전담 인력 배치와 지속적인 교육·연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13년 더 빠르다…제3자후견인 비중 높아

전문가들은 “다가오고 있는 초고령화사회에서 성년후견제도의 필요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2025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노인을 부양하던 전통 대가족모델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다. 결국 후견인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취지다.

이 문제를 우리보다 앞서 고민한 일본은 23년 전부터 후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보다 13년 더 빠르다. 누적 약 23만건의 법정후견이 이뤄졌으며, 특히 한국과 대조적으로 변호사 등 제3자후견인의 비중이 높다. 한국은 후견인 중 친족이 약 85%를 차지하지만 일본은 72%가 제3자후견인이다.

김근진 법무법인 유스트 변호사는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될수록 전문직후견인 등 제3자후견인의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전문직후견인 양성, 법원과 상호 연계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충희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사무총장도 “친족후견인은 전문성 부족으로 후견 사무의 원활한 처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또한 “가족관계라 재산 횡령 등 범죄에 대한 경각심도 떨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변호사·법무사 등 전문직후견인의 선임 확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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