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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체인저로 부상하는 북극권 [박세환의 빡센경제]
북극의 빙원을 항해하는 화물선(3D 랜더링)

북극은 인류 역사에서 오랜 시간 미지의 땅이었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북극에 대한 탐험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북극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그 가치와 잠재력이 부각됐지만 지금도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다. 해빙(海氷)으로 뒤덮여 있는 ‘북극해 항로(NSR)’ 중 일부가 러시아의 국내 항로로 이용됐을 뿐 관심 밖의 항로였다.

하지만 최근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 해빙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에즈운하(지중해와 홍해·인도양을 잇는 운하)의 대체 항로로 NSR이 급부상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혜택’이라는 역설적인 말로 표현되는 NSR 개발은 북극의 미개발 부존자원과 아시아~유럽 간 단거리 무역로를 무기로 새로운 시대의 ‘게임체인저(game-changer)’가 될 전망이다.

지금 전 세계는 식량 안보에 이어 에너지 안보, 자원 안보에 이르기까지 3대 안보의 가위눌림에 처해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자원의 보고인 북극을 선점하려는 각국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특히 NSR이 열리면 주요국의 해상물류 운송거리가 크게 단축될 뿐 아니라 군사작전의 범위가 대폭 넓어지기 때문이다.

녹아내리는 북극 해빙...‘콜드 러시’ 가속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해 해빙이 10년에 약 13%씩 빠른 속도로 감소되면서 북극해 석유자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 속도대로라면 내년쯤에는 여름철 북극해 해빙이 크게 줄고, NSR 이용과 자원 개발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얼음바다 북극은 자원의 ‘보물창고’다. 두꺼운 얼음 밑에 엄청난 지하자원과 생물자원이 묻혀 있다. 미국 지질자원 조사국(USGS)에 따르면 북극 해저에 매장된 석유는 약 899억9000만배럴로, 전 세계 매장량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천연가스는 약 47조㎥로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30%에 달하며, 액화천연가스 440억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타는 얼음’이라 불리는 미래 에너지자원 메탄하이드레이트도 막대할 뿐 아니라 망간·니켈·금·구리 같은 금속광물도 엄청나다. 특히 스마트폰, 전기자동차, 첨단 무기 등을 만들 때 필요한 이트륨·스칸듐·란탄 등의 희토류가 많이 묻혀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은 북극의 급격한 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와 천연자원 수송을 위한 NSR 개발,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는 북극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아낌 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 ‘골드 러시(gold rush)’에 빗대어 ‘콜드 러시(cold rush)’라고 부른다.

북극에 진출하려면 북극의 영유권을 가진 나라들의 옵서버 자격을 얻어야 한다. 남극은 어느 국가의 땅도 아닌 ‘자유의 땅’이지만 북극은 미국(알래스카)과 러시아, 덴마크(그린란드 자치령),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캐나다 등 8개국이 영유권을 갖고 있는 ‘남의 땅’이다. 이 8개 국가는 1996년 ‘오타와 선언’을 계기로 북극권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발전, 북극 주변 거주민 보호 등을 목적으로 한 협의체인 ‘북극이사회’를 설립했다. 이들 외에 북극이사회의 정식 옵서버 자격을 얻어 북극 항로와 자원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나라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13개국이 추가로 지정돼 있다.

북극은 지정학적 가치 면에서도 뛰어나다. 북극해를 중심으로 그린란드 등의 섬과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린란드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간에 있는 요충지다.

하지만 그동안 그린란드 북쪽, 캐나다 북쪽 지역은 빙하로 뒤덮여 있었고 캐나다와 북극 사이도 바다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이 영구 동토층마저 녹아내리고 있어 닫혀 있던 곳이 수년 내로 길처럼 열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에서 캐나다 북부 해역,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항로가 새로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바닷길이 열려 선박들이 북극 연안을 활용하면 파나마운하나 수에즈운하처럼 물류거리를 단축시키게 된다. 이는 곧 운송기간을 단축시키고, 물류비용 또한 줄여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와 캐나다, 미국이 북극 영해 범위를 두고 다투는 이유는 이처럼 지정학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NSR 중 ‘북동 항로(NEP·Northern East Passage)’는 대부분의 항로가 러시아 연안을 통과하고 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북유럽 연안국인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그리고 이 항로의 최고 혜택을 기대하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콜드러시의 금맥을 찾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물론 북극 항로의 다른 쪽인 ‘북서 항로(NWP·Northern West Passage)’에 있는 미국과 캐나다 역시 많은 관심을 두고 있으나 환경 중심의 국가 정책, 해상 항로의 거리 단축 효과가 낮은 이유 등으로 현재 NSR의 주요 관심 대상은 우리나라와 연결되는 북동 항로다.

우리나라도 NSR을 통해 경제적 기회를 얻을 수 있다. NSR을 이용해서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운항거리는 기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항로에 비해 약 7000㎞(32%), 운항일 수 기준으로는 10일 정도 단축된다. 현재 NSR은 1년에 4개월가량만 안정적으로 운항이 가능하지만 기후 변화로 2030년이면 연중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NSR 개발에 올인

러시아가 19세기 중국을 압박해 유라시아 대륙 맨 끝의 블라디보스토크(최근 중국에 사용권을 부여함)를 차지했었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면에는 안정적인 부동항 확보가 있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해의 자연적인 개방은 러시아가 그동안 갈구했던 부동항을 다수 확보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 서방 해양강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국제 해운 항로를 확보한다는 것을 뜻한다.

러시아는 북극권 절반을 차지하는 국가다. 노르웨이와 접하는 바렌츠해부터 미국 알래스카와 가까운 베링해협까지 북극권의 러시아 영토 경계선이 전체 북극해 해안선의 53%인 3만7653㎞에 이른다. 러시아는 수십년 전부터 5600㎞에 달하는 NSR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2019년 국영 에너지회사 로사톰은 ‘북극해 운송회랑(NTC) 프로젝트’를 추진해 2030년까지 무르만스크지역에서 캄차카까지의 수송로를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는 2026년 NTC 경유 유럽과 아시아 간 교역이 연간 5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분)가 운송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로사톰은 2030년까지 북극 항로 일대에 해상 부유형 원전 4기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NSR 개발과 자원 확보 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핵추진 쇄빙선(ice breaker·얼음을 깨고 나가는 배)’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최근 30년간 슈토크마놉스코, 루사놉스코, 레닌그라드스코 등 23개 유전을 발굴했는데 이는 북극 유전의 46%에 달한다.

NSR을 향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관심과 집착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란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관측이다. 러시아의 지정학적·군사적·경제적 이익이 모두 걸려 있는 ‘전략적 탈출구’라는 점에서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의 원유 수입을 제재하자 러시아는 NSR로 방향을 틀어 원유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특히 군사적 영향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수개월 동안 폭격기의 북극해 정찰을 늘렸고 북극해 남쪽까지 감시 범위를 넓히고 있다. 노르웨이 정보당국은 러시아에 전략무기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재래식 병력이 약화하자 핵무기를 탑재한 흑해함대 잠수함 등 전략무기의 위협을 강화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또 캄차카반도에 있는 태평양함대에 곧 최신 쇄빙선을 추가로 배치할 예정이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마즈 조선소에서 건조된 배수량 4000t급 이상인 이 쇄빙선은 길이 82m, 폭 19m로 최대 1.5m 두께의 얼음을 부수며 항해할 수 있다. 또 필요에 따라 대공포도 설치할 수 있다. 이 쇄빙선은 러시아 북동부 군 관할 해역에서 군함 안내와 군 보급품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할 방침이다.

미-중, 북극해서도 패권 갈등

대만해협을 비롯한 남중국해, 남태평양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이 이번에는 북극해를 두고도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북극권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쇄빙선 ‘쉐룽호’에 이어 북극 탐험과 개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쇄빙선도 건조했다. 또 7월 자국 해운회사인 신신해운을 통해 ‘신신티엔1호’와 ‘신신폴라베어호’ 등 5척의 내빙 컨테이너 선박을 NSR에 투입해 유럽과 러시아로 운송했다.

중국은 2030년 ‘북극 강대국’ 구상에 따라 미국 잠수함을 감시할 수 있는 정찰활동도 늘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전면 견제에 나선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과 함께 북극권에 대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는 중이다.

미국은 또 대만해협에서 중국의 군사 위협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주요 세력의 도전을 겨냥한 해상 작전을 뜻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북극해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때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주요국이 협력했던 북극 일대가 점점 분쟁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미국이 북극해 쟁탈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추격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이 남중국해의 암초에 군사기지를 건설해 사실상 영토 확장에 나선 것처럼 북극해에서도 바위섬 등에 군사시설을 설치해 전략거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쇄빙선, 위성, 무인기(드론), 무인선박 등을 통해 북극해에서 중국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식량·에너지·자원부족 한국, 북극에 주목해야

올해로 우리나라가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에 가입한 지 10년이 됐다. 한국은 2008년 북극이사회에 옵서버 가입 지원서를 제출했고, 세 번째 도전 끝에 2013년 정식 옵서버가 됐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극지활동 진흥 기본계획(2023~2027)’을 수립해 NSR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이 계획을 통해 정부는 NSR 운항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북극에서 컨테이너 운송이 가능한 ‘친환경 쇄빙 컨테이너선’을 개발해 국적 선사들이 NSR에서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북극점을 포함해 고위도 바다를 탐사할 수 있는 두 번째 첨단 쇄빙연구선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북극권 국가들과의 협력도 강화해가고 있다.

식량·에너지·자원 3축으로 세계 경제 판도가 요동치는 이때 그 소용돌이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다. 지금의 불안정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우리가 앞으로 북극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너지와 자원 외교 또한 식량 외교처럼 적극적으로 철저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식량, 에너지, 자원 등 세 가지 핵심 요소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구비한 것이 없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바로 안정적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점이다.

식량, 에너지, 자원은 국가를 성장시키는 핵심 견인차로, 추호도 소홀해서는 안 될 확보 대상이다. 이는 정부의 최우선 시책 의제이기도 하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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