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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요의 제주 ‘일멍쉬멍’ 워케이션 성지로
가파도 앞에 둔 해식애 송악산
10월엔 황금빛 억새물결 장관
제주 전설의 메카 신화역사공원
빙떡·조배기...메밀로 만든 미식
가파도와 마라도를 오가는 연락선의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산방산과 형제섬이 한눈에 성큼 다가온다. 제주 서귀포시 송악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초가을 정취를 느끼며 탐방로를 걷고 있다.

바다와 맞닿아있는 해식애(해안 절벽) 봉우리, 제주 송악산에 오르니 이른 가을 바람에 옷깃이 흔들린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오가는 연락선의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북쪽 해안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모슬봉이 미소 짓는다. 산신령이 제주도 세찬 바람에 단잠을 깨자 한라산 꼭대기를 발로 차 백록담을 만들고, 떨어진 꼭대기가 이곳까지 날아와 산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문득 떠오른다. 하지만 지질학적으로는 산방산이 한라산의 100만년 이상 선배다.

송악산 정상에서 산방산·형제섬·가파도 한눈에

송악산 동북쪽엔 군산오름과 대평포구가 제주도 남서쪽 수호신으로 버티고 섰고, 가까이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형제섬이 보인다. 조수간만에 따라 3형제 혹은 8형제다. 화순해변에서는 한 몸 처럼 보여, 백령도에 있는 ‘심청이 타고온 잠수함’을 닮았다.

송악산의 동편언덕은 정상(해발 104m) 못지 않게 전망 좋은 곳이다. 바다로 뻗어나온 높은 절벽이 물길을 돌린, ‘물 잡은 목’이다. 산정 가는 길옆 69m 깊이의 오목한 가메창 분화구가 볼록한 정상 못지 않게 우람하다.

“능, 썽, 쌈 치즈~”, “샤신 토리마스요. 김치~”, “이, 얼, 싼!”

외국인들도 부쩍 늘었다. 그들은 나라 마다 다른 ‘세이 치즈, 큐 사인(cue sign)’를 하며, 저마다의 포즈로 초가을 송악산을 앵글에 담고 있었다. 해녀의 대형 현무암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서 동편 언덕까지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하니 워케이션 중인 직원들도 가볍게 다녀갈 수 있다.

꼬불꼬불 해식애 언덕길을 내려가 남쪽 완만한 구릉지에 이르면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가파도에서 보면 송악산 남쪽은 승천 직전 몸을 움츠린 용(龍) 같은 자태다. 그도 그럴 것이 본섬 쪽은 육상 화산, 남동해안은 바다 속에서 솟아난 수성화산, 즉 ‘이중 화산체’여서 목과 상체를 바다 쪽으로 길게 빼고 웅크린 뒷다리로 엉덩이를 치켜 든 모양새이다.

10월 억새 물결과 파도의 조화 ‘환상적’

이제 곧 10월이 되면, 송악산의 파란만장 지형엔 억새가 물결치면서 파도와 밀당을 벌인다.

억새하면, 애월 어음리와 새별오름을 빼놓을 수 없다. 길고 긴 제주도 서쪽 중산간을 넓게 뒤덮은 어음리 억새들은 다섯 개의 풍력 발전기를 배경으로 은빛-황금빛 물결을 일렁일 것이다. 제주 억새는 시시각각 색깔이 달라진다. 은빛, 황금빛을 번갈아 보이다가 해질녘엔 주홍빛이 된다. 갈대의 흔들림도, 억새의 변색도 무죄다.

또 다른 제주의 가을 아이콘은 여성, 예술, 메밀이다. 제주도는 할망(할머니)과 어머니의 고을이다. 최근 제주그림책연구회가 제주 할망들의 신화와 역사를 담은 ‘초록주멩기(주머니)’를 펴냈다. 그리스·로마 보다 많은 1만8000여 신들 중에서 여성이 80~90%이다.

‘초록주멩기’는 제주의 신비한 자연, 청정 생태, 문명의 순수성이 대대로 전해지는 과정을 그렸다. 즉 ▷창조의 설문대할망 ▷풍요의 영등할망 ▷출산의 삼승할망 ▷고난을 이겨내고 선행의 주술로 제주를 이롭게 한 백주또 ▷농경신 자청비 ▷부엌 살림을 돌보는 조왕할망 ▷백방의 노력으로 환생해 지혜의 여신이 된 가믄장아기 등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오감으로 제주 신화를 느끼는 신화역사공원

제주 신화를 모두 이야기하면 끝도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제주신화월드 근처에 신화역사공원을 거니는 것이다. 2㎞ 가량의 곶자왈 청정 숲을 걸으면서 설문대할망 등 숱한 신화 속 이야기를 안내문과 예술 조형물로 접하는 곳이다. 워케이션 출장 와서 숙소에서 일하다 할머니 옛날이야기 속을 산책하며 기분전환 하기에 참 좋다.

할망들의 뜻을 이어 생활 경제와 공동체 사회를 이끈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다. 그녀들의 지혜가 담긴 갈옷(삼베에 떫은 감즙을 칠해 보온과 의류 보존 모두를 도모)은 최근 문화재청의 미래 무형유산 육성대상에 선정됐고, 제주여민회는 오는 13~17일 CGV제주점에서 토스카 루비 감독의 다큐멘터리 ‘강력한 여성 지도자’를 개막작으로 하는 세계여성영화제를 연다.

제주도 여성은 그 이후에도 일제 치하 시절 독립운동까지 주도했지만, 해방 이후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일례로 건국 이후 배출한 제주도지사 39명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번 영화제에는 40여 작품, 16개국이 참여하는데, 제주도의 정치적 성평등 현주소가 부끄러울 정도다.

지나친 겸양은 때론 잘난 척 하는 자들의 독식이라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올해는 제주도 살림을 수천년 주도한 여성이 제대로 된 지위를 스스로 챙겼으면 좋겠다.

유동룡 미술관서 이타미 준의 ‘제주 사랑’ 엿봐

제주시 한림읍 소재 유동룡 미술관은 다소 생소하다. 유동룡은 세계적인 건축 예술가 이타미 준의 한국 이름이다. 제주와 사랑에 빠진 그는 최근 신화역사공원과 저지리 예술마을 사이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 이름을 유동룡 미술관으로 바꿨다.

유동룡 작가는 제주 풍광을 담아낸 바람의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다. 생의 후반, 일본보다 제주에서 더 많이 활동했다. 제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산방산이 내려다 보이는 포도호텔, 서귀포 방주교회, 수풍석미술관, 두손미술관 등 독자적인 건축 작품을 만들어냈다.

유동룡미술관은 전시를 통해 영감을 받고 조용히 사유하며 즐기는 공간으로 기획됐다.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2층은 ‘듣는 전시실’이다. 양방언의 피아노 연주를 배경 음악으로, 작품을 읽어주듯 소개하는 오디오 도슨트를 통해 흥미로운 건축학개론을 전한다.

신화역사공원 정남쪽 서귀포 안덕의 아띠스떼21에서는 수채화, 아크릴화, 유화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그림을 배워 볼 수 있다. 오는 11월에는 저지리 등을 중심으로 제주비엔날레가 열린다.

드넓게 펼쳐진 제주 메밀밭은 또 다른 볼거리

국내 메밀밭의 70%가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신화역사공원 동편 동광리와 제주시 오라동, 동북의 와흘, 표선의 보롬왓에서 드넓게 핀다.

녹색 대롱 위에 소박하게 핀 흰 꽃들의 물결은 백지같은 내 마음에 초록의 청량감을 색칠한다. 안구정화에 기여했던 메밀은 다시 먹음직스러운 식재료가 돼 제주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빙떡, 메밀조배기, 메밀묵과 몸국, 육개장, 접짝뼈국 등 제주미식에 널리 활용된다.

고려 때도 외국인 부문의 과거에 응시했고, 기원 이후에도 1000여년 간 별개의 국가였던 제주는 외국 부럽지 않은 볼거리, 먹거리 천국이다.

제주도 사절단이 최근 서울로 진출해 100여개 수도권 기업들에게 워케이션 설명회를 열었다. 일멍 쉬멍(일하면서 쉬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휴가지 원격근무 명소로 제주 만큼 좋은 곳도 없는 듯 하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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