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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는 보험사 위에 나는 사기꾼”
27년차 특별조사관의 한숨
범죄 갈수록 대담·만성사기 늘어
병원-설계사-브로커 조직 대형화

“보험사기 트렌드가 달라졌어요. 한번은 교통사고로 인한 허위 입원 의심 제보가 들어와 조사해 보니 아동학대가 숨어있었습니다. 계모가 아이를 다리미, 끓는 물 등으로 화상을 입히고, 골절을 만들었습니다. 파고들다 보니 범행이 드러나더라고요. 지금은 대담성이 두드러집니다. 예전엔 실손 보험금을 과다 청구하는 수준이었는데 이젠 영수증, 진단서 등 서류를 위·변조하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과감해지고 지능적으로 가고 있는 거죠.”

27년째 보험사기 특별조사관(SIU)으로 활약 중인 함용호 삼성화재 장기보험조사TF장의 진단이다. 참고로 함 TF장은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길 극구 꺼려했다. 말 그대로 사기꾼을 잡아야하는데, 신상이 알려질 경우 사기꾼들이 이를 피할 수 있어서다. 함 TF장은 국내에 보험범죄 조사관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1997년부터 보험사기 조사를 전담해 오며 잔뼈가 굵어진 베테랑이다.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난 그는 진화를 거듭하며 갈수록 대범해지고 있는 보험사기의 심각성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병원과 설계사, 브로커 조직이 공모하는 형태의 보험사기 유형이 늘어나고 브로커 조직도 대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손보험을 잘 아는 설계사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 “보험사기범은 날아다니는데 우리는 기어다니고 있다”는 자조적 농담에서 이런 위기의식이 크게 느껴졌다.

“요실금, 맘모톰, 하지정맥류 등 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항목들을 연구하고, 설계사들이 직접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유행처럼 항목들이 바뀌고 있죠. 특정 항목을 휩쓸고 나면 다음 타깃을 뭘로 할 지 연구하는 거예요. 또 가입 후 1년 이내에는 보험금을 50% 정도 감액 지급하는 것을 고려해 1년 전부터 준비하기도 합니다. 단기적, 즉흥적인 것보다는 계획적으로 준비하는 거죠.”

만성화하는 보험사기에 대한 우려도 컸다. 함 TF장은 “예전엔 보험사기를 경성(고의적 사고 유발)과 연성(보험금 과다청구 등)으로만 나눴는데, 최근엔 경미한 보험사고를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만성사기’가 늘고 있다”며 “일반적인 보상 담당 직원들은 개별 청구건으로 볼 때 만성사기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총괄적으로 분석하는 SIU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교해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려면 SIU의 조사 역량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도 중요해진 상황이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이 금융당국이 관계기관에 보험사기 조사를 위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했지만, 보험사의 SIU 실무자들에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보험사기를 신속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보험사들 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함 TF장은 “보험사기 조사는 ‘데이터 싸움’인데, 개인정보 관련 규제 때문에 당사 자료만 분석한 후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자체 데이터 분석 후 유관협회·당국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에 처벌 강화, 자료제출 요청권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겼고 환영할 일임은 분명하다. 다만 보험사기 조사를 진행하는 단계에 대해서도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며 “특사경(특별사법경찰)처럼 보험사 SIU가 활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고 타사의 정보나 주요 계약사항을 볼 수 있게 한다면, 보험사기 분석 및 수사의뢰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 TF장은 보험사기 대응 강화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해외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은 연방수사국(FBI)과 공조해 조사를 하기도 하고 처벌도 강력하다”며 “인명피해가 발생된 보험사기는 수사당국이 직접 개입하되, 다빈도 허위과다청구는 제3의 기구를 통해 보험금 지급기준이나 조사기준을 마련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보험사기 여부를 조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보험사기 조사 강화를 위한 개인정보 관련 규제 완화 등 법적 논의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SIU 역할 강화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정부와 국회에서 먼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SIU가 더 조사하고 싶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보는데, 그 선에 대해서는 사회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승연·서정은 기자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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