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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EPL 빅4’ 첼시FC, ‘회계 꼼수’까지 썼는데 성적이 왜이래 [투자뉴스 뒤풀이]

제 마음 속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의 영원한 팀은 박지성 선수가 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다만 팀 응원과 별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가 있었죠. 바로 드록바 선수입니다. 표준 표기법으로는 '드로그바'라고 써야하는데, 왠지 저는 '드록바'라고 해야 그 강렬하고 거칠고 당당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무튼 드록바 선수 덕분에 그의 소속팀 첼시를 사랑하게 됐죠.

그런 첼시가 무너지고 있네요. 물론 맨유가 더 일찍 더 가파르게 하락했지만, 남이 먼저 뺨을 맞았다고 해서 내가 지금 맞은 뺨이 덜 아프진 않겠죠.

첼시FC에서 전성기를 보내던 디디에 드로그바 [OSEN]

그런 첼시가 지난해 미국인 사업가 구단주를 새로 맞이하고 감독도 토트넘의 영광을 이끈 포체티노로 교체하면서 한껏 기대를 올렸습니다. 거침없이 선수들을 사들이면서 역시 빅클럽다운 면모도 과시했더랬죠. (아, 그렇습니다. 과거형입니다.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현재까지 4경기를 치른 23/24 시즌 첼시의 성적은 승점 1점으로 12위. 그 돈 다 어디간건지.

돈? 돈이라고 하면 투자·재무의 영역이죠. 마침 올해 초 첼시 때문에 UEFA가 부랴부랴 재무조항을 수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EPL도 관련 규정 정비에 착수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요. 대다수가 재미 없어하는 재무 이야기를, 대다수가 좋아하는 축구 팀 이야기로 한번 해볼까 합니다. (이런 걸 속된 말로 '어그로'라고 하죠)

▶지난 22/23시즌 겨울이적 시장 동안 첼시는 막대한 돈을 선수 영입에 썼습니다.

엔조 페르난데스는 1억2100만유로에 데려왔고, 미하일로 무드리크 영입에 7000만유로를 썼습니다. 브누와 바디아쉴, 노니 마우에케 등등 이들 모두를 사는데 3억2950만유로, 약 45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썼습니다. (이상 트랜스퍼마크 기준)

첼시를 인수한 미국인 사업가 토드 보엘리의 두둑한 지갑이 자동인출기마냥 열렸습니다.

첼시FC 역대 이적료 순위 [자료=트랜스퍼마크]

돈자랑이야 같은 EPL의 맨체스터시티나 프랑스 리그앙의 PSG가 이미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별로 특출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팀도 첼시처럼 이렇게 단기에 엄청난 자금을 퍼붓지는 못했습니다. 바로 UEFA가 규정한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때문입니다.

FFP는 부자구단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선수들을 싹쓸이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규정입니다. 구단은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지 않도록 해야 하죠.

이 규정을 충족하려면 당연히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입을 늘리는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하겠죠. 두 번째는 지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탐나는 선수가 있더라도 이적료(지출) 관리를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당장 수입을 크게 늘리긴 어려운 게 현실이죠. 자연히 많은 부자 구단들이 초호화 선수 쇼핑을 자제하면서 지출 통제를 실시합니다.

▶하지만 첼시, 정확히 말하면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맞는 미국인 사업가인 구단주는 달랐습니다. 실제 돈이 나가는 지출(expenditure)이 얼마든 장부(book)에 적는 비용(expense)은 조금 손을 볼 수 있으니까요.

올해 초 일이고, 여러 매체에서 보도가 된 사안이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첼시는 이들 선수와 계약을 7~8년씩 아주 길게 잡았습니다. 그리고 투입된 막대한 이적료를 이 기간에 걸쳐 천천히 나눠서 회계에 반영했습니다.

예를 들어, FFP 때문에 올해 수입 대비 쓸 수 있는 지출 총량이 1억유로라고 합시다. A선수를 영입하는데 이미 7000만유로를 썼다면 남아 있는 가용 가능한 이적료는 3000만유로뿐입니다. 하지만 만약 A선수에 들어간 비용을 7년에 걸쳐 매년 1000만유로씩 비용으로 장부에 반영하면 어떻게 될까요? 단숨에 올해 쓸 수 있는 지출 규모가 9000만유로로 껑충 뜁니다.

두 경우 모두 실제 쓴 돈, 즉 지출(expenditure)은 7000만유로로 같지만 회계상 비용(expense)을 따져보면 다릅니다. 만약 한꺼번에 이 비용을 장부에 반영할 경우 expense는 expenditure와 같은 7000만유로지만, 뒤의 경우는 expense가 1000만유로에 불과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는 사실 지구 종말을 앞둔 과학자보다는, 돈벌이에 혈안이 돼 회계 구멍을 찾는 사업가들에게 딱 적용되는 말입니다.

▶이제 축구 이야기는 그만하고, 재미가 좀 없는 재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첼시의 꼼수를 좀더 잘 이해하려면 회계에서 유무형의 자산을 상각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유형자산이라면 감가상각(depreciation), 무형자산이라면 무형자산 상각(amortization)으로, 부르는 이름은 좀 다르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흔히 '인재가 우리 회사의 최대 자산'이라는 사장님의 훈화말씀에 가슴뭉클(?)하지만, 사실 회계적으로 직원들은 유형은 물론 무형자산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이는 유무형 자산에 대한 분류 규정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유무형 자산이라고 하려면 첫째-미래 경제적 이익 창출이 가능해야 하고, 둘째-합리적으로 측정 가능해야 합니다. 두 조건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인적자원(=직원)은 두번째 조건을 충족하지 않습니다. 즉,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이 사람을 장부에 얼마로 적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프로축구팀의 선수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 선수를 데리고 오면서 쓴 이적료를 다릅니다. 막대한 이적료를 써서 이 선수를 데려왔으니, 앞으로 이 선수가 경기 잘 뛰면 팬들이 많아져 입장권 수익도 오르고 유니폼도 더 많이 팔고 해서 미래 경제적 이익이 창출될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측정은 딱 가능하죠. 계약서에 나오니까요.

그럼 이제 이 선수에 들어간 돈을 장부에 기록할 수 있습니다. 연예기획사의 스타연예인 영입도 같은 원리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유재석 씨를 영입할 때 40억원을 줬다는 걸 공시를 통해 알 수 있었죠. 때문에 엔터업체인 안테나 재무제표에 유재석 씨가 명시돼 있진 않지만 그를 데리고 올 때 쓴 40억원은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각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전에 먼저, 왜 유무형 자산의 상각을 하는지 아시나요? 실제로 가치가 막 떨어져서? 전혀 아닙니다. 장부상 상각은 실제 가치 증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는 손익계산서상 수익(매출)과 비용을 대응(matching)시켜야 한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즉, 어떤 공장(유형자산)에서 만든 물건을 팔아서 매출을 발생시켜 돈을 벌었다면, 그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데 들어간 비용 가운데 일정 부분을 그 매출에 '대응'시켜 손익계산서에 적으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좀더 상세한 내용은 앞서 [투자뉴스 뒤풀이] - 건물값 올랐는데 가치는 떨어졌다?…감가상각으로 이해하는 회계 기본(2022년 3월 31일)을 참조해주세요)

▶그런데 상각을 하는데 엄격한 법적 기준이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기업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하면 됩니다. 대부분은 '업계 관행', '관례'를 따릅니다. 실제 EPL 대다수 구단들은 선수라는 무형자산 상각을 5년에 걸쳐 해오곤 했습니다. 즉 이 선수를 데려오는데 쓴 이적료를 일반적으로 5년에 걸쳐 나눠서 장부에 비용으로 반영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첼시는 달랐던 것이죠. 7년, 8년 이렇게 길게 잡았습니다. 그 결과 FFP를 피해 똑같은 제약 하에서도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UEFA는 상각 기간이 5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습니다. 때문에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 모이세스 카이세도를 무려 1억1500만파운드에 영입하면서 계약기간은 5년으로 했습니다. 다만 이 규정은 소급적용을 하지는 못하죠. 결국 발빠른 첼시만 이득을 본 셈입니다.

▶그럼 이렇게 유무형 자산 상각을 다르게 하면 어떤 재무상 차이가 발생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기업이 물건을 만들어 팔려고 공장을 100억원 들여 지었다고 합시다. 그럼 재무상태표(balance sheet)상 현금은 100억원 감소하고, 유형자산(PPE)은 100억원 증가합니다.

이제 이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해 팔아서 매년 50억원씩 매출이 발생한다고 합시다. 만약 A기업이 5년에 걸쳐 감가상각을 한다면 비용은 20억원씩 대응해주면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5년 간 순이익은 30억원이 발생합니다. (이해편의를 위해 잔존가치(salvage value)는 없다고 가정하고, 상각 방법은 정액법(straight-line Depreciation)을 쓴다고 합시다)

만약 이 기업이 상각 기간을 10년으로 잡았다고 해보죠. 그러면 매년 대응해야 할 비용은 10억원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앞으로 10년 간 순이익은 매년 40억원이 됩니다.

상각 방법을 달리함으로써 장부상 순이익이 확 차이가 납니다. 명심할 것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장부상 숫자일 뿐 실제 공장을 짓는데 들어간 지출(expenditure) 100억원은 이미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깐 동일한 지출(expenditure)라도 상각 방법에 따른 비용(expense)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손익계산서(income statement)상 순이익만 달라지는 게 아니란 겁니다. 재무상태표상 주요 재무비율도 달라지게 됩니다.

비용을 짧은 기간 많이 반영해 처리하면 자산(asset)과 자기자본(equity)이, 긴 기간 조금씩 반영할 때보다 낮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부채비율(debt ratio)이 높아집니다. 실제 돈을 벌고 비용을 쓴 것은 똑같아도 재무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재무지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상각을 많이 할 경우(왼쪽) 자산과 자기자본이 상각을 적게 했을 경우보다 작다. 따라서 부채비율은 높아진다.

▶실제 지출과 상관없이 이렇게 재무적으로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경영자나 최고투자책임자(CFO)는 조금 유리하게 재무정보를 손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애널리스트, 투자자, 채권자, 신평사 등등 지켜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어떤 유무형의 자산을 상각해 가는 중간에 감가상각 기간이나 상각 방법 등을 변경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 유무형 자산을 취득했을 때 이를 좀더 빠르게 상각해 털어낼 수도 있고, 아주 천천히 비용으로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당장 올해 순이익이 좀 높아 보여야 한다면? 상각을 아주아주 천천히해서 비용을 적게 반영하면 됩니다. 첼시처럼요.

반대로 상각을 확확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지출(expenditure)를 한꺼번에 모두 비용(expense)로 처리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회계연도엔 비용이 엄청나게 잡히니 순이익이 뚝 떨어집니다. 언제 유리할까요?

만약 내가 어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첫 발을 내디뎠다 생각해 보죠. 가장 좋은 건 내가 경영하는 동안 회사가 사업을 잘해서 이익을 쑥쑥 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쉽나요. 그러면 일단 취임 첫 해 상각을 아주 팍팍 해 버리거나 몽땅 비용으로 반영해 버립니다.

이런 걸 '빅배스'(Big bath)라고 합니다. 목욕물을 한꺼번에 확 버리듯, 각종 비용들을 장부에서 확확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당장 해당연도에는 순이익이 팍 줄겠지만, 나의 취임과 함께 앞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거창한 구호에 묻힙니다. 그리고 다음해부턴 어떻게 될까요? 비용들을 다 털어냈으니 매출이 같더라도 순이익은 높아집니다.

일부 기업들이 가업승계를 하는 과정에서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예정이거나 이제 막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 받았을 때도 이 같은 '빅배스'가 종종 목격됩니다. 실제 경영 능력과는 상관없이 장부상 착시효과를 노리는 것이죠. 어차피 많은 사람들은 순이익이란 숫자만 보니까요. 더군다나 빅배스 때문에 전년도 순이익은 박살이 났을테니, '전년 대비 순이익 증가율'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새로운 경영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둔갑하기 딱 좋죠.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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