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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는 자연의 적?…숲보다 도시에 다양한 생물이 사는 이유[북적book적]
벤 윌슨의 신간 ‘어반 정글’
도시에 의외로 생물 다양성 풍부
도시 생태계 보호·양육 필요
[123rf]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1945년 미국의 천재적인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개발한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다. 수만 명의 목숨과 함께 자연이 대거 사라졌다. 피폭된 도시는 죽음의 땅처럼 여겨졌다. 최소 75년 동안 식물의 흔적은 찾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그러나 폭발 중심지엔 결명자가 벽돌과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을 뚫고 올라왔다. 몇 달 뒤엔 방사선으로 오염된 땅 덩어리에서 협죽도가 꽃을 피웠고, 불에 탄 녹나무들은 싹을 틔웠다. 현지 목격자들은 “사방에 삼백초, 검상잎유카, 명아주, 나팔꽃, 왕원추리, 털복숭이 콜, 쇠비름, 우엉, 참깨, 피, 피버퓨가 피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1666년 영국 런던에서 대화재가 발생했을 땐 향신료 허브인 시심브리움 이리오가 재투성이 폐허를 뒤덮었다. 1942년 독일군이 런던을 침공한 했을 땐 검게 그을린 건축물 사이사이에 분홍바늘꽃, 관동화, 개쑥갓 등이 자랐다. 이후 이곳에서 3년 간 발견된 식물종만 157종에 달한다.

뉴욕엔 요세미티 국립공원보다 더 많은 생물종이 살고 있고, 영국 에식스주 캔비아일랜드에 있는 버려진 정유 공장엔 ‘영국의 열대 우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희귀한 식물과 곤충이 풍부하다.

사람들은 도시와 자연, 혹은 도시와 시골이 양립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 사회학자 루이스 워스가 “인류가 대도시 특유의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유기적인 자연과는 가장 멀리 떨어지게 됐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신간 ‘어반 정글’의 저자 벤 윌슨은 전쟁이나 재난 등으로 출현한 도시 생태계에서 자연의 순수한 역동성이 자라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현 시대의 생물 다양성의 핵심이 농지나 자연 보호구역보다 오히려 도시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덧붙인다.

송골매는 도시의 생물 다양성의 대표적인 사례다. 1983년 송골매 한 쌍이 뉴욕으로 이주한 뒤 40년이 지난 지금 뉴욕은 세계에서 송골매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됐다. 송골매는 미생물, 곤충, 새 등의 먹이 사슬에 의존하는 최상위 포식자다. 송골매의 번식은 곧 생물 다양성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 새 뉴욕의 송골매들은 케이프타운, 베를린, 런던 등 수십 개의 대도시로 이주했다.

그는 생태계의 교란이 생물 다양성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자연 재해나 인재가 발생한 뒤 몇 년이 지나면 식물과 곤충들이 땅과 돌무더기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종 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그리고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생태 천이가 발생한다. 키가 크고 가지가 우거진 몇몇 종이 그 지역을 지배하면서 작은 식물들을 몰아내면 생물 다양성이 감소한다. 폭격 지역이나 건설 부지에 야생 생물이 놀랍도록 풍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도시 공원의 태생 자체가 야생 생물의 자발성과 지저분함이 억제되는 곳이자 인간의 지배 충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라고 말한다. 고대 시대부터 현대 사회까지 삭막한 도시에 녹지 공간을 만들려는 의도는 대도시에 자연을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통제하는 더 나은 자연을 창조하려는 욕심이라는 설명이다. 사람들은 도시의 미관을 위해 도시 공원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자연은 오히려 제멋대로 번성하며 사람들이 원치 않고 경멸하는 자연 그대로의 형태로 계속 살아남았다. 그리고 조용히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도시 생태계의 이러한 숨은 역동성은 기후위기 시대에서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도시 자체로도 우리가 보호하고 양육할 가치가 있는 생태계라고 주장한다. 그는 도시에 잠재되거나 숨겨져 있는 생물 다양성의 확대와 도시 주변 숲을 보전해야 한다고 봤다. 이와 함께 습지와 강, 농장 등에서 생태 발자국을 대폭 줄여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 기후 위기에 대한 노력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국의 역사학도 출신의 작가인 윌슨은 6000년간 인류 문명을 꽃피웠던 26개 도시를 탐험한 ‘메트로폴리스’를 비롯해 서머싯 모음 상을 받은 ‘자유의 가치’, 선데이 타임즈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심해의 제국’을 썼다. 영국의 ‘타임스’,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에 기고문도 정기적으로 싣고 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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