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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장형 기능코' 전문 성형외과 꿀팁 전수…보험사기 개인교사 된 SNS·유튜브 [실손이 봉이다 ④]
비염 수술과 코성형 수술을 같이하는 기능코 수술 관련 SNS 홍보 이미지. [인스타그램 캡처]
봉이 된 실손…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 해 수입보험료만 봐도 250조원 규모로, 전 세계 7~8위권이다. 특히 실손보험은 가입자 수만 3500만명에 이르며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돈이 몰리는 곳에 사기꾼도 몰린다지만 보험사기는 해도 너무한 정도다. 당국에 적발된 것만 1조원이고, 실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라는 말이 나온다.

보험사기가 판칠 수 있는 배경에는 보험을 잘 아는 설계사는 물론이고 의료계, 브로커, 여기에 가입자들까지 공범이 돼 힘을 보태는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꾼’들의 주 놀이터가 된 실손의료보험의 현주소를 짚고 보험사기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헤럴드경제=강승연·서정은 기자] # 20대 여성 A씨는 코 성형 상담을 위해 성형외과를 찾았다가 비밸브재건술을 받았다. A씨의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병원이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며 권유한 탓이다. A씨는 수술 후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젊은 여성의 성형외과 내원을 의심한 보험사는 수술 전 시행한 검사에 대해 의료자문을 시행했다. 그 결과, 의무기록에 기재된 비밸브 협착, 비중격만곡, 코선반 비대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

#. B씨는 피부건조증(진단코드 L853), 상세불명 접촉피부염(L259) 진단을 받고 경기 동탄시의 한 피부과에서 ‘키오머3’ 시술을 받았다며 실손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가 의무기록을 확인한 결과, ‘울쎄라600샷(목주름·심부볼·이중 턱만)+키오머3or리쥬에이드’로 기재돼 있었다. 키오머3 치료를 받았다면서 주름 개선 목적의 울쎄라 시술까지 보험금을 청구한 것이다.

보험사기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평범한 사람 누구나 언제든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을 통해 전파되는 ‘꿀팁’이 보험사기 범행에 가담하게 만드는 덫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용 부담 없이 예뻐져요” 꿀팁으로 둔갑한 보험사기

헤럴드경제가 포털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살펴본 결과, 성형외과·피부과에서 이뤄지는 시술·수술에도 실손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알리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실손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보험금을 청구하고, 성형수술을 겸하면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실손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이비인후과·유방외과 등 다른 과목의 전문의와 협진을 진행하고 치료 목적의 소견서를 작성해주는 병원 정보를 주고받는 글도 많았다.

실손보험과 묶여 주로 거론되는 성형수술로는 코 수술과 가슴 수술, 지방흡입 수술 등이 있었다. 코 수술의 경우, 비중격만곡증, 비밸브협착증 등으로 인한 비염, 코막힘을 해결하면서 외모 개선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는, 이른바 ‘기능코+미용코’ 수술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었다. 원활한 보험금 청구를 지원하는 ‘공장형’ 기능코 전문 성형외과에 대한 관심이 컸다.

가슴 수술도 비슷했다. 가슴 확대·거상 수술 시 양성종양 제거를 위한 맘모톰 수술이나 부유방 유선조직 제거 수술을 같이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이 ‘노하우’처럼 통하고 있었다. 지방흡입 수술은 병원 상담 시 초음파검사를 통해 실손보험이 적용되는 유선조직 제거 수술을 같이 진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피부과 시술도 만만치 않았다. 히라셀, 키오머3, 리쥬에이드 등 피부재생 시술이 이른바 ‘스킨부스터’라는 명칭으로 피부미용·보습을 위해 사용되면서도 실손보험을 적용받았다는 후기와 광고글이 SNS에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보험사들이 리쥬에이드 시술에 대한 보험금 지급심사를 강화한 영향으로 최근엔 히라셀 시술과 관련한 글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실손보험이 적용되는 시술과 관련한 후기를 적은 블로그 화면. [포털사이트 캡처]

그러나 이러한 피부 창상피복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사항(▷건조피부 ▷파괴된 피부장벽 회복 ▷상처 오염 방지)에 한해 사용이 승인돼 있는 치료 재료다. SNS 홍보 내용과 달리 접촉성 피부염은 히라셀 식약처 허가 사항에 해당되지 않으며, 단순 피부재생이나 주름개선 목적의 스킨부스터는 피부치료로 보기도 어렵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수술·시술이 치료 목적을 앞세우지만 미용 목적이 더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실손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그 과정에서 외모 개선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보험사기 가담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경우 구조적인 부분(비중격)을 치료한다며 ‘기능코’ 성형수술 대상으로 광고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알레르기 원인물질(항원)을 피하기 어렵기에 회피요법과 동반한 적절한 약물치료로 증상을 조절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또한 인터넷, SNS를 통해 실손보험을 악용하는 노하우가 퍼지면서 ‘의료쇼핑’행위가 만연해지고, 보험사기가 될 수 있다는 의식 없이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의사에게 먼저 치료 목적 소견서나 진료비 페이백 혜택 등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유발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의료기관에서 실손보험금을 받기 위해 미용 목적의 수술·시술을 질환이 있는 것처럼 허위 청구하는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은 미용 수술·시술을 보험 처리했다’는 사례 등에 혹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요구했다.

실손보험이 적용되는 시술과 관련한 후기를 적은 블로그 화면. [포털사이트 캡처]

“보험사에 협조 말라” 지급심사 협조 거부가 똑똑한 소비자?

보험업계에서는 보험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채질하는 콘텐츠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험금 지급심사를 위한 보험사의 요청에 일절 협조하지 말라는 내용에 반복 노출된 실손보험 가입자가 콘텐츠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튜브만 보더라도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심사를 위해 의료자문 실시를 위한 동의를 요청하거나 추가 서류 제출을 요구할 경우 절대 협조해서는 안 된다는 영상이 수두룩했다. 해당 영상들은 보험사의 이런 요청 자체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린 ‘꼼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심사 과정에서 제3의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제도다.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청구가 과도하게 이뤄졌거나 치료가 정말 필요한지 확인하고자 할 때 활용된다. 최근 백내장 등 비급여 항목을 노린 보험사기가 급증하면서 의료자문 이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사들이 실시한 의료자문은 총 5만8855건으로, 2021년(4만2274건)에 비해 39.2% 늘었다. 덩달아 의료자문을 통한 보험금 부지급 건수도 1666건에서 4989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보험업계는 보험사기와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 자문심사 활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험사의 지급심사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는 콘텐츠 때문에 소비자들의 반발이 커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 비용 증가로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들만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관련 유튜브 채널과 일부 병·의원이 소비자들에게 ‘보험사 직원이 오면 협조하지 말고 의료자문 동의서에도 서명하지 않아야 보험금을 잘 받을 수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가 만연해지면 보험사기 대응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일반 가입자에게도 손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pa@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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