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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양주사로만 1억원 떼먹은 부부…꾼들의 먹잇감이 된 실손 [실손이 봉이다②]
[사진=게티이미지]
봉이 된 실손…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 해 수입보험료만 봐도 250조원 규모로, 전 세계 7~8위권이다. 특히 실손보험은 가입자 수만 3500만명에 이르며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돈이 몰리는 곳에 사기꾼도 몰린다지만 보험사기는 해도 너무한 정도다. 당국에 적발된 것만 1조원이고, 실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라는 말이 나온다.

보험사기가 판칠 수 있는 배경에는 보험을 잘 아는 설계사는 물론이고 의료계, 브로커, 여기에 가입자들까지 공범이 돼 힘을 보태는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꾼’들의 주 놀이터가 된 실손의료보험의 현주소를 짚고 보험사기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헤럴드경제=강승연·서정은 기자] # 60대 A씨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한 병원에서 총 169일간 당일입원하며 영양제로만 740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그의 남편도 117일 입원하며 영양제로 쓴 금액이 5100만원이나 됐다. 부부가 1억원이 넘는 보험금을 받아간 명목은 이명, 구내염, 섬유근통 등이다. 별다른 치료는 이뤄지지 않고 영양제만 반복 처방받았다. 해당 병원은 성분명이 불분명한 세포면역주사제를 회당 23만원에 번번이 투여했으나 보험사의 성분 확인 요청을 거부해 보험사기 조사도 이뤄질 수 없었다.

보험사기 적발 규모가 연 1조원대로 커지는 사이 4000만명이 가입한 ‘국민보험’ 실손의료보험은 이처럼 보험사기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으면서 의료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비급여 항목이 주된 타깃이다.

병·의원은 돈이 되고, 환자는 비용 부담 없이 의료쇼핑처럼 이용할 수 있어 이를 겨냥한 보험사기가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보험을 잘 아는 설계사와 병원, 브로커가 낀 ‘기업형’ 보험사기가 늘면서 보험사와 당국을 비웃듯 조직적으로 비급여 항목들을 갈아타며 실손보험을 좀먹고 있는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도수치료가 계속해서 비급여 항목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영양제, 비타민제 등 비급여약제와 관련한 보험금 지급이 급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도수치료에 대한 지급 보험금이 2021년 1조1300억원에서 2022년 1조1430억원으로 1.2% 늘어나는 사이, 비급여약제 관련 보험금은 3498억원에서 4104억원으로 17.3%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실손보험은 상해·질병 치료 목적에 한해 주사치료를 보상한다. 약제의 치료 효과가 입증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사항이 아닌 단순 피로해소나 미용 등 목적으로 투여되는 영양제, 비타민제 등의 주사는 보상 대상이 아닌 것이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여유증(여성형 유방증), 전립선비대증 관련 보험사기 의심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권유하거나 수술한 것처럼 꾸며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가는 사례들이다. 한 보험사의 경우 지난해 여유증 관련 보험금 지급액이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고 한다.

앞서 하지정맥류 수술, 하이푸 시술 등 여성 환자 대상의 보험사기도 기승을 부렸었다. 지난해 하지정맥류 수술과 하이푸 시술과 관련한 보험금 지급액은 각각 1075억원, 567억원으로 추정된다.

하지정맥류 수술은 혈액 역류가 없는 외모 개선 목적의 초음파검사를 수술로 둔갑시키거나 하지정맥류에 대한 비급여비용을 일부러 높여 보험금을 과잉 청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폐경기여성 등 수술 비권고 대상에 대해 하이푸 수술을 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질 성형, 요실금 수술을 하이푸 수술로 허위 청구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B보험사에 따르면, 10년 전 폐경된 C(58)씨는 아랫배 통증, 잦은 소변 등 방광염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초음파검사에서 1.8㎝ 크기의 자궁근종이 발견됐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진료지침에 따르면 출혈, 빈혈, 통증 등 증상을 동반하는 자궁근종을 가진 폐경 전 환자에게만 하이푸 시술이 권고되나 병원은 하이푸 시술을 진행했고 보험금으로 1190만원을 청구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설계사, 병·의원, 브로커들이 낀 조직형 보험사기로 진화하면서 새로운 문제 비급여 항목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다”며 “비급여 항목에 대해 연구하면서 타깃을 갈아타며 보험사기 트렌드를 계속해서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비급여 항목의 과잉 진료 및 보험사기 증가의 문제는 결국 실손보험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29개 생·손보사의 실손보험 위험손해율은 117.2%로 집계됐다. 위험손해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지급한 보험금이 많다는 의미다. 손해율에 사업비율까지 더한 합산비율마저 111.6%로, 적자 상황이 명확했다. 보험연구원은 실손보험 누적 적자가 2031년까지 11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spa@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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