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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이 ‘유로’ 만들었듯 우리도”…브릭스 새 결제통화 논의 가속화 [디브리핑]
내년 회의 전 역내 수출결제통화 도입 논의 계획
UAE, 신개발은행에 대규모 자본 투자 예정
제15차 브릭스 정상회담이 열린 남아프리키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나렌드라 모디(왼쪽) 인도 총리와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나란히 걷고 있다.[로이터]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우리는 달러로 거래할 필요가 없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회원국들의 통화로 거래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유로를 창안했듯 우리도 뭔가를 창조해야 한다. 이것은 브라질과 브라질 경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유튜브로 중계된 주간 ‘대통령과 대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재무장관들이 다음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전에 수출결제통화를 만드는 데 합의할 수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 1년 동안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브릭스 제15차 정상회의가 끝나고 발표한 성명은 “재무장관 또는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브릭스 통화 협력, 지불 수단 및 플랫폼을 연구하고 다음 정상 회담 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브릭스 회원국이 15차 회의를 통해 11국으로 늘면서 이들의 탈달러 움직임도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브릭스 기존 5개국만해도 세계 인구의 42%, 국내총생산(GDP)의 23%, 교역량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6개국이 합류하면 브릭스 역내에서 통용되는 화폐 양도 크게 늘게 된다.

브릭스 역내 새 수출결제통화 도입 추진 움직임 속에 특히 달러의 글로벌 석유 결제통화(페트로달러) 지위에 대한 도전이 거세다.

지난 14일 인도 최대 정유업체인 인도석유공사(India Oil Corp)는 아랍에미레이트(UAE)에 100만 배럴의 석유 구매 대금을 인도 루피로 지불했다. 이는 양국이 지난 7월 ‘국경 간 거래를 위한 현지 통화 활성화를 위한 틀을 마련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나온 첫 성과다.

이어진 25일 인도에서 열린 G20 무역투자 장관회의에서 하딥 싱 푸리 인도 석유·가스 장관은 CNBC와 만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것을 루피로 거래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앞으로 국제 석유 시장에서 달러는 선택 통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푸리 장관은 “나는 또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하기에 달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완전한 ‘탈달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도 브릭스가 달러에 걸맞는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수년, 어쩌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기에 당장 달러의 지배력이 와해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본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 능력을 갖춘 사우디아라비아가 다른 브릭스 회원국들로부터 자국 통화로 석유 대금을 지불받기 시작하면 탈달러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브릭스가 세운 독자적 금융 협력체제인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NDB)도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NDB는 다극화된 국제 금융 시스템을 추진하기 위해 회원국의 현지 통화로 대출을 시작한다.

15차 브릭스 정상회의 개막 이틀 전 브라질 대통령 출신인 지우마 호세프 NDB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올해 80억달러에서 100억달러의 대출을 회원국에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이중 약 30%를 현지 통화로 빌려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의 통화인 위안화로 일부 대출을 시행하고 있는 것을 넘어 남아공에는 현지통화인 랜드화로, 브라질과 인도에는 각각 헤알화와 루피화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 브릭스에 가입할 국가들도 일찍부터 NDB 참여 의사를 내비쳤다.

압둘라 빈 투크 알 마리 아랍에미레이트(UAE) 경제부 장관은 28일 블룸버그통신에 UAE가 회원국 자격을 무역 발전의 기회로 삼고 있으며 NDB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확한 액수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더 많은 것을 추진할 것이며 은행에 자본을 투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UAE는 달러를 여전히 기축통화로 인정하면서도 역내 무역통화를 이용해 남반구 저개발국가들과 상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UAE는 자국 통화와 달러화의 고정 환율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아부다비 외곽의 공군 기지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마리 장관은 “우리는 계속해서 서구와의 관계에도 집중할 것”이라며 “평화와 번영에 따라 경제와 무역도 따라온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달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평가한다.

영국 가디언지는 사설을 통해 “미국과 서구 동맹국들을 주축으로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창설된 이래로 모든 IMF 총재가 유럽인이고 세계은행 총재가 모두 미국인이었다”며 “덕분에 이들은 주요 개발도상국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외교전문매체인 포린어페어스는 31일자 ‘남반구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브릭스 등 남반구 연대는 이상주의보다는 국가적 이익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며 “연대함으로써 강대국의 행동을 제약하고 적어도 그들이 남반구의 요구 일부에 응답하도록 자극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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